‘몰카’ 공포에 빠진 대한민국…공중화장실·지하철 등 ‘몰카 범죄’ 기승
“규제나 처벌 감시수준 등 범죄억제력 강화 필요”
[시사뉴스 이상미 기자]최근 ‘워터파크 몰카’ 사건을 비롯한 몰래카메라(몰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는 행위)범죄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전북 고창의 한 고교에서는 수업시간에 학생이 질문하는 척하며 교사를 가까이 오게 한 뒤 휴대전화를 이용해 교사의 치마 속을 촬영한 사건이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언제 어느 곳에서 찍혔는지도 모른 채 개인의 은밀한 사생활이 만천하에 공개될 수 있다는 생각에 국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진화하는 ‘도촬장비’… ‘몰카’ 공포 SNS 확산
ICT(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카메라가 고성능화, 소형화하면서 이를 생활 속 다양한 소품에 숨긴 몰카가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볼펜, 안경, 모자, 담뱃갑, 라이터, 자동차 키, 휴대폰 보조 배터리, 탁상시계, 화재경보기 등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상상하기 힘든 것들 속에도 몰카가 숨어든다. 그것도 풀HD급 초고화질, 소리감지 기능, 적외선 촬영 기능 등 최첨단 기능으로 무장했다.
도촬 장소도 과거 러브호텔 룸이나 집에서 여성용 공중화장실, 지하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 탈의실, 샤워장까지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렇게 촬영된 영상은 웹하드 사이트나 성인사이트 등에서 유료로 다운로드된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다시 무차별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여성들 사이에는 공중화장실 이용을 피하거나 헬스클럽에서 운동한 뒤 씻지도 않은 채 집으로 직행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다중이용시설 사업주 중에는 고객 불안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전문업체까지 불러 몰카 탐지에 나서는 등 사회·경제적 비용도 급증하고 있다.
모든 문명의 이기(利器)는 ‘선’한 이유에서 만들어진다. 몰래카메라도 애초 범죄를 막거나 비위 현장을 고발하겠다는 목표로 개발됐다. 하지만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몰카에도 적용된 것일까. 인간의 탐욕이 몰카의 초점을 마구 흩트려놓고 있다. 어찌해야 몰카를 초기 상태로 리셋할 수 있을까. 몰카의 모든 것을 들여다보면 해답이 있을지도 모른다.
◆‘금남(禁男)의 성역(聖域)’도 뚫렸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던 최모(여·26)씨는 채팅으로 만난 강모(33)씨로부터 건당 30만~60만원을 받고 몰카를 찍기로 했다.
최씨는 지난해 7월16일부터 8월7일 사이에 경기, 강원 등지의 유명 워터파크 3곳과 수영장 1곳 등 총 4곳을 돌며, 샤워실과 탈의실에서 휴대폰 케이스형 몰카로 여성들이 샤워하거나 옷을 갈아입는 장면 등을 몰래 찍었다.
이 여성이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 피해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벗은 몸을 렌즈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말았다.
강씨에게 넘어간 해당 영상은 올여름 해외에 서버를 둔 웹하드 사이트나 성인 사이트를 통해 ‘XXXX 몰카’ 등의 제목으로 급속히 유포됐고,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확산했다.
경찰은 지난달 17일“인터넷에 떠도는 여자 샤워실 동영상이 캐리비안베이로 의심되고 있다. 해당 동영상이 유포되지 않도록 조치해 달라”는 경기 용인시 에버랜드 캐리비안 베이의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섰다.
해당 몰카 영상들을 확보한 경찰은 경기도와 강원도 워터파크에서 찍힌 영상에 모두 등장한 초록색 비키니 상의에 긴 갈래머리를 한 여성을 용의자로 특정, 공개수사에 나서 8월26일 전남 곡성에서 최씨를 검거했다.
경찰은 최씨로부터 휴대폰 앱 채팅으로 만난 남성으로부터 돈을 받기로 하고 휴대폰 케이스형 몰카를 받아 촬영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강씨를 추적해 같은 달 27일 전남 장성에서 그를 체포했다.
강씨는 인천의 한 몰카 판매업체에서 50만원을 주고 이 몰카를 산 뒤 최씨에게 맡겨 영상을 촬영하게 했다. 그는 “동영상을 촬영하긴 했지만, 유포하지 않았다. 컴퓨터가 해킹됐거나 중고로 내다 판 노트북에서 유출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수사 결과 그는 음란사이트에서 알게 된 사람에게 이 영상을 120만원에 판매한 사실이 드러나 경찰이 유포자를 추적 중이다. 현재 최씨와 강씨 모두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워터파크 몰카 동영상 원본은 모두 185분 분량으로 피해자가 2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10대 소녀들까지 무방비로 노출된 것으로 알려져 더욱 공분을 사고 있다.
◆‘워터파크 몰카 사건’ 후폭풍
사건 이후 후폭풍이 만만찮다. 가장 먼저 공공장소에서 옷 벗기를 꺼리는 여성들이 급증했다. 회사원 최모(29)씨는 운동하러 집(서울 대치동) 근처 피트니스 센터에 다닌다. 운동한 지 벌써 1년이나 됐다. 한참 땀을 흘린 뒤 샤워를 하면 모든 피로가 날아가는 듯해서 좋았다. 그러나 몇 달 전부터 땀에 흠뻑 젖어 기분이 찝찝해도 그냥 집에 가서 씻는다.
처음에는 친구들로부터 ‘강남 헬스클럽 몰카’라는 동영상이 떠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왠지 불안했다. 그런데 이번에 워터파크 몰카 사건이 터지면서 강남 헬스클럽 몰카도 존재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불안해졌다.
최씨는 “물론 내가 다니는 헬스클럽이 나올 것이라고도, 내가 영상에 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제 누가 나를 몰래 촬영해 인터넷에 올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전이 보장될 때까지 최대한 위험해지는 일은 피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여성들이 이처럼 불안해하는 것은 이번 사건에서 같은 여성이 직접 불특정다수 여성의 나신을 향해 몰카를 들이댔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제껏 몰카 범죄는 남성에 의해 저질러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모텔에서 남녀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모텔 직원이나 다른 손님이 몰래 촬영한 영상, 남녀가 성관계할 때 남성이 여성의 동의를 받지 않고 찍은 영상, 여성 화장실에 몰카를 숨겨놓거나 옆칸에서 칸막이 틈 사이로 휴대폰 등을 밀어 넣어 찍은 영상, 지하철이나 에스컬레이터 등에서 휴대폰 등을 이용해 찍은 여성의 치마 속을 촬영한 영상 등은 가해자가 모두 남성으로 추정됐다. 여성이 가해자로 밝혀진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곧 여성이 몰카를 촬영하는 사건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전에도 있었거나 후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음을 방증한다. 여성들만의 공간도 안전할 수 없고,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 탓이다.
대학생 이은영(23·경기 고양)씨는 “여자는 모두 잠재적인 피해자라는 생각만 했지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수영장이나 헬스클럽 등지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사용해도 깜짝 놀랄 것 같다. 나 자신도 핸드폰을 써야 할 때 주위 눈치를 봐야 할 듯하다”고 우려했다. 그렇다 보니 타격을 입는 곳이 헬스클럽, 찜질방 등 여성 고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실제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찜질방을 운영하는 박모(55)씨는 최근 전문 업체에 의뢰해 남녀 욕탕, 탈의실, 화장실 등 찜질방 곳곳에 걸쳐 대대적인 몰카 탐색 작업을 벌였다. 또 화재경보기, 비상구 안내등처럼 꼭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 벽에 설치한 모든 부착물을 제거했다. 탕 안에는 휴대폰을 들고 갈 수 없다는 안내문을 부착했고, 화장실에는 휴지통마저 치웠다.
박씨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와 여름 비수기를 거치며 가뜩이나 영업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뜻하지 않게 피 같은 돈을 들여야 하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몰카 탐지기로는 고정형 몰카만 잡을 수 있지 핸드폰 카메라나 휴대형 몰카를 잡을 수 없다고 해 더욱 고민스럽다”고 답답해했다.
경찰 관계자는“현행법으로는 몰카를 촬영하거나 유포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지만, 다운로드받는 것은 처벌받지 않는다”며 “수요가 있으니 공급이 있는 것인 만큼 관련 법 개정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 (몰카 촬영)일시와 장소를 공표하지 않은 것은 피해자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면서 “만일 장소와 일시를 원하는 분이 있다면 절차에 따라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규제나 처벌, 감시 수준 등 범죄 억제력 강화 필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남춘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0년 1134건이었던 몰카 범죄는 지난해 6623건으로 5년 만에 6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18건씩 몰카 범죄가 발생한 셈이다. 연도별 발생 건수를 살펴보면 2010년 1134건, 2011년 1523건, 2012년 2400건, 2013년 4823건, 2014년 6623건으로 6카 범죄는 꾸준히 늘고 있다. 검거 건수 역시 2010년 1039건, 2011년 1332건, 2012년 2042건, 2013년 4380건, 2014년 6361건으로 증가 추세다.
이런 급증세에 불과하고 관련 규제나 처벌은 여전히 미미하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는 ‘카메라나 그 밖에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갖춘 기계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제공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 촬영에 그치지 않고 영리 목적으로 그 촬영물을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유포하는 경우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에 대해 건국대 경찰학과 이웅혁 교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초소형·고성능 몰카를 이용해 촬영을 하다 보니 걸리지 않겠다는 확신이 드는 것”이라며 “과거의 단순한 ‘훔쳐보기’와 범죄 양상이 엄연히 다르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인터넷을 통해 몰카 사진이나 영상 등이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고, 이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도 몰카 범죄를 증가시키는 요인”이라며 “촬영 당하는 사람들이 실제 본인이 찍혔는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실제 몰카 건수는 발생·검거 건수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이어 “규제나 처벌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며 “또한 왜곡된 성의식을 가진 피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공장소에 탐지기를 설치하거나 CCTV를 늘리는 등 감시 수준을 높여 범죄 억지력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음란사이트 단속을 강화해 수요를 줄이는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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