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이명박-박근혜의 전쟁' 은 끝난 줄 알았다. 이명박은 대권을 잡았고, 박근혜 는 그저 그런 당내 소수 계파의 수장으로 명맥만 유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공천 내홍을 겪으면서 박 전 대표는 다시 한번 전쟁을 선택했다.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박 전 대표가 내뱉은 말은 사실상 당내 친이명박계와의 전면전 선포와 다름없었다."대선후보 경선에서 지면 끝이란 점을 일깨워줬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항변 속엔 '이명박-박근혜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이제부터 다시 시작' 이라는 것이다. 지난 대선이 '李-朴 전쟁'의 제1라운드였다면, 공천 내홍 속에서 치러지는 4.9 총선 이 제2라운드다. 총선 다음은 7월 전당대회가 친이-친박의 전장(戰場)이고, 그 후 무수히 벌어질 소소한 국지전과 함께 5년 후 대권이 마지막 전쟁터가 될 전망이다.
'형님공천' 논란으로 사퇴압박을 받은 이상득 국회 부의장과 친이계내 권력투쟁을 촉발시킨 이재오 의원이 지난 25일 총선출마를 결정하면서 이제는 총선 후 짜여질 권력구도 재편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공천파동 이후 펼쳐진 이상득-이재오 두 실세간의 권력충돌과 봉합은 여권의 권력지형에 적지 않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이 전쟁터에서 누가 살아남을 것이냐, 한나라당이 과연 과반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냐에 따라 권력구도 밑그림이 크게 달라진다.
◆친박계 생환시 '총선실패 책임론' 대두
'영남권 대학살'로 인해 대거 숙청당한 친박계가 외도를 택한 마당에 공천파동 이후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조금씩 싸늘해지면서 현재 영남권과 수도권에서 이들의 약진이 눈에 띄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의 '복당불허' 방침에도 불구하고 서청원 전 대표와 이규택 의원이 이끄는 친박성향의 '친박연대'가 수도권에서 교두보를 마련하고 친박계 좌장 김무성 의원이 이끄는 무소속 연대가 영남에서 승전할 경우 한나라당으로 귀환할 것이 분명한 사실. 강재섭 대표 지역구에 출마를 선언한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이 자신의 생환과 더불어 수도권에서만 15~20명선의 당선을 자신하고 있는데다 이렇게 될 경우 엄호성 의원의 언급처럼 "한나라당과의 당대당 통합"도 친박연대 측에서는 기대해 볼만한 카드다.
박 전 대표가 '총선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마당에 한나라당이 과반의석에 실패하고 친박계가 대거 생환한다면 후유증을 감수하면서까지 대학살을 단행한 친이계 실세들의 입지는 응당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사기를 잃은 상황에서 직면할 '총선실패 책임론'과 '대학살 참극 반성론'은 7월 당권경쟁에서 친이계를 궁지로 몰아넣을 것이 분명하다. 친이계는 향후 5년간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자신들의 전리품을 지금보다 많이 박 전 대표를 비롯한 그 친위부대에게 양보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시나리오는 친박계의 약진이 기대에 못 미치고 친이계가 자력으로 마지노선인 160석 이상을 획득할 경우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친이계 단독으로 과반 확보할땐 구주류 몰락
전문가들은 "친이계가 자력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한다면 박 전 대표를 비롯한 구주류와의 단절이 완결된다는 의미를 갖는다"며 "이같은 총선결과는 신주류와 구주류간 길고 길었던 권력투쟁을 정리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즉 공천파동에 따른 후유증을 감수하면서까지 친박계를 숙청한 친이계의 대학살극이 자력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할 경우 명분을 얻을 것이라는 것. 포스커뮤니케이션 이경헌 대표는 이같이 말한 뒤 "자력으로 과반의석을 확보한다는 것은 이후 친박계의 소멸 및 약화와 더불어 권력의 파이가 급격하게 친이계 쪽으로 옮겨가면서 대대적 지분나누기의 서막이 시작되는 것을 의미한다"며 관전 포인트를 집었다.
즉 이상득 부의장의 사퇴압박으로 돌출된 친이계내 권력투쟁 양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고 과반의석을 자력으로 이룬 이후에 있을 친이계 내 실세들의 암투는 향후 5년간 살아있는 권력과의 동반자 자리를 놓고 사즉생의 승부가 될 것이라는 것.
총선 불출마라는 악수를 자초하며 총선을 이끈 강재섭 대표는 신흥 주류로 부각될 것이 뻔하고, 지역구를 떠나 당의 요청에 따라 수도권에서 통합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 후보와 붙은 정몽준 최고위원도 승리할 경우 일약 당내 핵심으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다 형님공천 논란에도 불구하고 출마한 이상득 부의장과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밀리는 악조건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이재오 의원도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각각 논란 종식과 수도권 득표전략에 공헌했다는 명분을 얻게 된다.
여기다 이 의원과 손잡고 노장파 숙청을 시도한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 그룹이 세력재편을 꾀하고 있는 것도 예의주시 대상이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창간20주년 327호 커버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