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진-예슬양 사건'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산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은 우리내 주변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취약하고 안전하지 못한 지역인지를 단편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강력범죄는 과거부터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범죄자들의 정신병력과 묻지마 범죄시도 등이 겹치면서 사실상 '브레이크'가 없다해도 무방할 정도로 잔혹해지고 있는 실상이다. 특히 안양 초등생 살해사건에 이어 일산 10세 여아 납치 사건 역시 동종 범죄 전과자여서 사회 곳곳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단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를 하는 것을 넘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실제 일산 초등생 납치 미수 피의자 이 모씨는 1995년 12월에도 대낮에 아파트 내에서 5~9세 여아를 범행 대상으로 총 5건의 강간 및 강간미수 범죄를 저질렀다. 그는 이 일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2년을 감형 받아 10년을 선고받았고 출소 후 2년이 채 되지 않아 또 범행에 나선 것이다. 가히 '아동 성폭력 중독증'이라 할 만하다. 이에 따라 <시사뉴스>는 '어린이 대상 성범죄 실태와 대책'을 특집편을 통해 진단해봤다.
◆브레이크 없는 아동 성폭력 증가추세
경찰이 집계한 13세 미만 어린이 대상 성폭력 범죄 증가수치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4일 경찰청에 따르면 2005년 738건이던 아동 성폭력은 2006년 980건으로 1년만에 33%가량 늘었고 지난해는 1081건으로 다시 10% 증가했다.
성인 피해자를 포함한 전체 성폭력 건수는 2006년 1만5326건에서 2007년 1만5325건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지만 유독 아동 성폭력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일부는 이씨와 같이 동종전과를 이미 갖고 있는 경우로 우리내 경찰력이나 사회가 이들의 재범을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하고 있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최근 분석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분석 대상이 된 904명의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중 11%(101명)가 성범죄에 대한 동종 전과를 이미 갖고 있었다.
이같은 동종 성범죄를 저지른 전과자 101명 중 죄명이 특정된 93명에 대해 재분석을 한 결과 성범죄 중 가장 죄벌이 무거운 강간 및 강제추행 비율이 60.2%(56명)에 달했다. 실례로 경북 안동에 사는 이 모씨(53)는 지난해 5월 안동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13세 미만의 여아를 성추행한 후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으나 이틀이 지나지 않아 같은 운동장 벤치에서 또다시 20대 여성을 성추행하다 잡혔다. 이씨는 "나도 참고 싶은데 저절로 손이 가 어쩔 수 없었다"며 "누가 나 좀 말려 달라"고 자탄했다. 병적인 성욕 앞에서 이성은 이미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던 셈이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는 "연쇄 살인범이 살인 중독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것과 같이 연쇄 성폭행범도 강렬한 중독성에서 발을 빼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며 "일단 가학적 성폭행 사이클에 빠지면 자기 의지로는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성폭행 중독증에 빠진 범죄자들을 확실히 교화시키든지 아니면 반영구적으로 사회에서 격리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수년씩 복역하고 나와도 재범이 계속되는 것은 교정이 제대로 안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미국 등에서는 심리교정치료 등을 통해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재발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올 1월부터 시행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에 대해서도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일선 경찰서에 단말기가 보급돼 관할지역 내 성범죄자의 데이터베이스(DB)를 시민들이 조회해 볼 수 있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아 사실상 찾아볼 정보는 전무하다.
◆개선점은 어떻게?
관할지구대 근무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뒷짐만 지고 있는 경찰조직의 늑장대응.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것을 개혁해야할지 고민해보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민이 체감하는 치안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하루 빨리 자치경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치경찰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경찰로 중앙정부가 아닌 자기 지역 주민의 치안을 위해 활동하기 때문에 주민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실제로 이번 일산 어린이 납치 미수 사건에서 보듯 최고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경찰서를 방문한 직후 범인을 검거한 것은 경찰조직이 시민을 보지 않고 중앙의 인사권자만 보고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 때문에 전국시도지사협의회는 지난 2005년 이미 자치경찰 관련 법안을 의원입법 형식으로 국회에 발의했다. 이명박 정부도 자치경찰제 필요성을 인정해 인수위 시절 "시군구 단위의 기초단체에서부터 단계적으로 자치경찰제를 실시하겠다"고 기본 방침을 밝혀 자치경찰이 현실화될지 주목된다. 또 경찰을 시민의 민주적 통제하에 두기 위한 관계 법령 개선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시민과 지역 대표들이 참여하는 '지역경찰위원회' 등을 만들어 이들 위원회가 경찰의 인사권, 예산 심의권 등을 가질 경우 주민을 섬기는 경찰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찰 운용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경찰위원회 등이 운영되고는 있지만 실질적인 권한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경찰활동을 상시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각계 명망가 등으로 구성된 옴부즈맨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 감시 업무를 맡고 있지만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서는 조사조차 할 수 없는 등 법적 한계가 많다. 조사 인원도 수십 명에 불과해 실질적인 감시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주간시사뉴스 창간20주년 328호 특집<우리 아이들이 위협받고 있다!>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