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이사회에 참석했지만 중도에 퇴장한 남윤인순, 이기욱, 이지영 이사는 8일 KBS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영방송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며 “절차와 내용을 무시한 KBS 이사회의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안 가결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조치”라고 반발했다.
변호사인 이기욱 이사는 “통합방송법에서 대통령이 KBS 사장을 ‘임명한다’로 바꾼 건 공영방송인 KBS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사회가 현행 방송법을 무시하고 상정하는 것에 반대하고 이사회장을 나왔다”며 “이사회의 위상과 권위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감사원이 정 사장의 비위가 현저하다고 하는데 개인비리나 부패가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KBS 이사회가 감사원의 위법 안건을 상정한건 언론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역시 회의 중 퇴장한 한국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공동대표는 “공권력이 투입된 가운데 이사회가 진행됐다”며 “안건 상정 자체가 부당하고 공영방송과 민주주의의 역사에 치욕적인 일이라고 주장했지만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3층 이사회장은 경찰에 봉쇄되다시피 했는데 경찰이 이사회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이라며 “안건도 부당한데 무리하게 이사회를 열면 충돌이 생긴다고 철회를 요구했지만 유재천 이사장은 이사회를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공인회계사인 이지영 이사는 “안건이 정해지면 절차상으로도 회사에 서면으로 통보하게 돼 있는데 이같은 절차가 안 지켜졌고 안건 내용에 대해서도 국민이 판단할 수 있도록 논의하자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의사 진행에 동의할 수 없어서 퇴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해임안이 가결된 것에 대해 “이사회에 남아있던 6명의 이사들은 양심에 거스르는 행동을 한 것”이라며 “민주주의 사수와 공영방송 사수에 한계를 느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KBS 이사회는 이날 오전 10시10분부터 여의도 KBS 본관 제1회의실에서 임시이사회를 열고 감사원의 해임 요구에 따른 정 사장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정 사장의 해임은 해임권을 둘러싼 법적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명박 대통령의 해임 절차만 남겨놓게 됐다.
◆ 與 “정연주 혹 떼어내” vs 野 “공영방송 타살”
정치권은 KBS 이사회가 감사원의 해임요구에 따라 정연주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안을 통과시킴에 따라 야권이 강력 반발하면서 정국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 등 우파 정당들은 ‘사필귀정’이라는 반응을 보인 반면 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등 좌파진영은 ‘계엄선포’ ‘공영방송 타살’ 등의 격한 어휘들을 동원해가며 강력 반발했다.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사필귀정”이라며 “정연주라는 좋지 않은 혹을 떼어낸 KBS의 창창한 앞날이 기대된다. BBC와 같은 진짜 국민의 방송으로 재탄생할 것”이라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차 대변인은 “좌파들이 정연주 사장을 극렬 비호하는 모습을 보니 KBS 이사회가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더 든다”며 “국민의 방송을 좌파코드 방송으로 악용하는 자들이 KBS 카메라를 조종하도록 놔둬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자유선진당 박영선 대변인도 “‘노무현의 옥동자’로서 ‘아무리 느슨한 잣대를 들이대도 명백한 편파방송’을 했던 KBS 정연주 사장은 더 이상 국론분열과 사회혼란을 야기하지 말고, 하루빨리 스스로 사퇴하기 바란다”며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행정법원에 ‘해임요구무효’ 소송까지 제기한 정연주 사장은 더 이상 궤변을 늘어놓으며 아전인수와 견강부회를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8월 8일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에 조종이 울린 날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면서 “사복경찰의 호위속에 양심을 팔아 해임안을 가결시킨 6명의 KBS 이사를 국민은 똑똑히 기억하고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김 대변인은 “경제살리기에 총동원돼도 모자랄 국가기관들이 공영방송 죽이기에 무차별 투입되고 있다”면서 “실정을 가리고 난국을 타개하려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에 대해 법적 조치를 포함한 모든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MBC 사장 출신인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우리나라 언론사상 가장 치욕적인 날”이라며 “경찰이 대거 투입돼서 이사회를 강행하고 억지로 사장 퇴진 결정을 내린 것은 언론 역사상 수치이고 국제적으로도 야만성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민노당 박승흡 대변인은 “차라리 계엄을 선포하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정연주 사장 거세는 공영방송을 관영화해 정권홍보방송, 정권의 나팔수로 만들려는 작태”라며 “언론자유 말살, 언론장악의 본격 개막을 뜻한다. 이 칼날은 곧 MBC와 EBS로 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노조위원장 출신인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KBS 동료들과 언론운동을 한 사람으로써 KBS 구성원들은 이명박 정부에 맞서 제일 먼저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KBS 구성원들은 국민이 밀어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KBS 앞에서 열린 ‘방송장악저지 야3당 규탄대회’에서 “한때 50% 가까운 지지를 받아 탄생한 정부가 18%의 지지로 떨어지다보니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면서 “도덕성과 전문성이 결여된 정권이다보니 힘으로 지배하려고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