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재 기자 2020.09.04 07:57:40
[시사뉴스 강민재 기자] 미국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재를 놓고 유럽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들어 얼어붙은 서구 동맹 관계에 또 다른 악재가 더해졌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담당 고위대표는 3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미국이 발표한 제재는 ICC의 수사와 사법 절차를 방해하는 용납할 수 없는 전례 없는 조치"라고 밝혔다.
그는 "ICC는 외부 간섭 없이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운영돼야 한다. 미국은 입장을 재고하고 취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EU는 로마규정(ICC 설립 규정)의 보편성과 재판소를 확고히 지지한다"며 "우리는 정의의 절차를 방해하고 국제 형사 사법 제도를 훼손하는 시도로부터 단호하게 이를 방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FP에 따르면 장 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2일 발표된 조치는 재판소와 로마 협약 서명국들에 대한 심각한 공격"이라며 "다자주의와 사법 독립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밝혔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조치는 세계 최악의 범죄 피해자들을 지독하게 묵살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국무부는 전날 ICC의 파투 벤수다 검사장과 파키소 모초초코 사법권 보상·협력 위원장 등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미국 국민에 불법으로 ICC 관할권을 적용하려 했다는 이유다.
ICC는 지난 3월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과 정보당국 관계자들, 아프간군, 현지 무장반군 탈레반의 전쟁 범죄 혐의에 대한 소속 검찰의 조사를 허용해 미국의 반발을 샀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ICC는 전쟁·반인륜 범죄를 저질렀지만 처벌할 방도가 없는 가해자들을 기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2002년 설립됐다. ICC는 123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가입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국제기구와 협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면서 전통적 서구 동맹인 유럽과 얼굴을 붉혀 왔다.
그가 취임한 후 미국은 파리 기후변화 협정, 이란 핵협정, 유엔인권이사회(UNHRC) 등에서 잇따라 이탈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부실 대응을 이유로 세계보건기구(WHO) 탈퇴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