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盧의 남자들 “나, 떨고 있니?”

김부삼 기자  2008.10.10 12:10:10

기사프린트

전방위적인 비리, 사정 차원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정관경제계 인사들이 언제 닥칠지 모를 소환에 불안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시절 고위직을 맡았거나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의 몇몇 거물들이 사정당국의 촉수에 속속 걸려들고 실명이 드러나자 여의도 정가와 경제계에까지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분위기에 휩싸였다. 사정 수사는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 듯 하다가 지난주 검찰이 노 대통령이 자료반출 지시를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제부터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따라 국감에 여념이 없는 정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선 사정대상 리스트도 떠돌아 정치?경제인들을 긴장시키고 있는데 지금까지 나온 단발성 사건이 전 정권 게이트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의 분위기는 뭔가 확실한 건이 걸려들기만 하면 언제든 ‘그 쪽(전 정권 핵심 수사)’으로 급물살을 탈 태세다.
이와 관련 최근 국회 김태환 의원실에서 만든 노 전 대통령 핵심 측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토지매입 특혜의혹을 제기하는 세밀한 자료가 배포돼 눈길을 끌었다. 전 정권 실세인사들에 대한 사정설이 현실화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했던 대목이다. 후속타가 나올 것으로 기대됐으나 ‘표적 사정’ 반발을 의식해서인지 아직 잠잠하다.
내용은 “박 회장이 회사자금을 횡령해 김해시 외동 1264번지 7만 4470㎡를 343억에 구입하면서 차명으로 구입했으며,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토지공사가 적극 협조한 의혹이 있다”는 것. 액면 그대로라면 전 정권 핵심세력과 공기업을 뒤흔들 파괴력을 지닌 건이다.
한편, 한나라당 집행부는 소속 의원들에게 이번 국정감사에서 참여정부의 실세들의 실명이 적힌 권력형 비리의혹 15개를 주요 공격이슈로 선정한 ‘국정감사 주요 공격이슈’ 문건을 배포했다. 사정당국이 내사하고 있거나 수사 중인 참여정부 실세 연루 사건들을 공개질의를 통해 쟁점화 한다는 것이었다. 사정수사를 가속화하고 정국의 흐름까지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획이다.
그간 참여정부 인사로서 소환조사를 받았거나 수사대상으로 거론된 인사를 나열해 보면, 토지공사 수주 외압설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그의 부산상고 후배인 홍경태 전 청와대 총무행정관, KTF 조영주 전 사장의 납품비리 및 인사청탁설의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한보철강 인수 당시 로비와 관련한 금품 수수협의를 받은 김현미 전 의원,
제주도 외국계 영리병원 인허가 로비 관련 김재윤 의원, 농협자회사 휴캠스 헐값매각 의혹 사건과 관련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강원랜드 비자금 조성 관련설의 참여정부 핵심실세 지역구 L모 의원, 프라임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과 전 정권 고위실세 L, K씨 등이다. 최근엔 이해찬 한명숙 총리 주변에 대한 수사설도 불쑥 튀어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노 정권 시절 러시아 유전 게이트의 주역으로 꼽혔던 전대월(46)씨도 9월말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전씨의 경우 구 정권 때인 05년에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까지 있었던 만큼 파급효과가 핵폭탄급으로 분류된다.
또, 단국대 이전사업관련 청탁 1억원 수수혐의로 충북 진천음성 지역구 김종률의원, 강원랜드 하청 공사 청탁 수수혐의로 무소속 최욱철 의원, 조일현 전 민주당 의원 등도 있다.
하이라이트는 지난 2일 민주당 개성공단 방문단의 일원으로 휴전선을 넘으려던 김민석 최고위원이 출국금지가 내려진 상태인줄 몰랐다가 발길을 돌리게 됐던 해프닝이다. 김 의원은 모 기업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잡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내사 중이었다.
정치생명이 걸린 전 정권 실세들이 줄줄이 걸려들고 있는 사정수사에 대해 야권의 반발도 거세다. DJ정부 실세였다가 참여정부 때 곤욕을 치렀던 박주선 민주당 최고위원은 거의 알레르기 반응이다. 박 최고위원측은 “대통령 친인척(사촌처형)인 김옥희씨 사건이나 한나라당 의원들이 관련된 뉴타운 사건을 보면 봐주기와 무혐의 처분으로 일관하면서 민주당 인사나 시민단체가 과거 정권과 조금이라도 인연이 있으면 무차별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단 압수수색부터 하고 아니면 마는 식의 수사는 명백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 경찰 금감원 감사원 등이 참여하는 합동수사본부는 신공안정국을 조성하겠다는 의도이므로 즉각 해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 대통령의 386비서 출신인 민주당 백원우 의원은 “최근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해 난리를 치며 수사했지만 아무것도 나온 게 없었다. 이번에도 사실관계는 나오지 않고 설만 보도되고 있다”며 정치적인 수사라고 지적했다.
백 의원은 “KTF 조 사장의 경우처럼 혐의가 특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저인망식으로 수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의 검찰의 태도가 과연 정치적으로 중립인지에 대해서는 국민들이 많이 우려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 실세로 2선에 성공한 이광재 의원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것인데 절제와 품격을 강조하신 검찰총장께서 공명정대한 수사를 해주기 바란다”고 말해 검찰의 수사방향에 대한 섭섭함을 표했다.
이 의원의 신규호 보좌관은 “이 순간 나라를 시끄럽게 할 여유가 있는가. 세계경제가 금융위기로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 한가롭게 전 정권 사정을 하고 있을 틈이 없다. 당국이 현명하게 처신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강원랜드 연루설에 대해서도 “떳떳하다. 검찰 수사결과로 모든 게 명백히 드러날 것“이라며 당당한 입장임을 밝혔다.
지난 9월 초에 설치된 민주당 공안탄압분쇄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영길 의원은 “표적을 정해 놓고 ‘뭐가 걸리나 보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검찰권 남용”이라고 강하게 어필했다. 민주당은 송 의원 외에 당 차원의 공식반응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여론의 역풍을 우려해서라는 것이다.
반면, 여당 정치인들의 시각은 냉정하다. 당연하다는 것이다. 법조인 출신이며 한나라당 제6정책조정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나경원 의원은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누구라도 철저히 수사하고, 이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건 법치주의 국가의 기본”이라는 견해를 표명했다. 설사 표적사정이라는 일부 오해를 받더라도 수사는 당연하다는 여당 의원들의 기본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현 정권 인물들은 ‘10년 좌파정권에 대한 전방위 사정’은 미국산 쇠고기 촛불시위, KBS 정연주 사장의 ‘버티기’에서 촉발됐다고 본다. 대선 때 MB캠프에서 언론 특보를 맡았던 한 정치권 인사는 “MB정부는 사회곳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노 정권의 세력을 놓아두고는 정권의 안정은커녕 존립조차도 위험해진다는 판단을 하지 않았겠느냐”고 말했다. 초기엔 부드러운 물갈이를 도모했으나 쇠고기 촛불시위라는 충격파를 맞고 나서는 180˚ 강경으로 선회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권의 존립위협까지 겪었던 현 정권은 ‘노 세력의 재결집과 정치전면 컴백 움직임’에 매우 예민하다. 여의도 정가의 한 정치 칼럼니스트는 “노무현의 민주주의 2.0 사이트 오픈,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녀의 충주 시그너스 골프장 결혼식에 노 정권 실세들 운집한 것 등이 긴장감을 유발했고, 이때부터 전방위 사정설이 정가의 주목을 받게 됐다”고 그간의 경과를 설명했다.
작금의 사정차원의 수사가 정치적 중립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건 사치스런 논쟁이다. 사정의 칼끝이 어디로 향하게 될 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단지 단서가 나오면 여야를 막론하고, 최고 권력자였던 사람이라도 피하지 못할 거라는 점은 누구나 느끼고 있다.
이런 분석들을 종합해 보면 ‘구 정권 사정작업’은 단발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행되며 그 대단원의 막은 아마도 봉하마을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미 대통령기록물 유출의 위법성에 대한 수사가 밀도있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검찰청 오세인 대변인은 6일 시사뉴스와의 통화에서 야권에서 제기하는 표적사정설에 대해 “검찰이 특정 정치권을 겨냥해 표적 수사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억측”이라며 “검찰은 드러난 수사 단서를 토대로 엄정하게 수사하고 있다”고 표적설을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