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국회가 여야의 극한 대치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김형오 국회의장이 중대한 선택의 순간에 직면했다.
한나라당은 28일 야당이 반대하는 은행법 개정안 등을 포함, 85개 쟁점법안의 연내처리 방침을 분명히 하면서 김 의장에게 질서 유지권 발동과 직권상정을 요구했다. ‘힘’에 의한 강행처리의 수순 밟기에 착수한 것이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야당이 협의에 응할 경우 집시법과 사이버모욕죄 등 사회개혁법안을 연말까지 처리하자고 하지 않겠다”면서 “경제살리기·일몰·위헌·예산부수법안은 연말까지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야당에 대화를 제의하면서 ‘마지막’이라는 용어를 썼다. 민주당이 끝내 협상에 응하지 않는다면 강행 처리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최후통첩이다.
이에 민주당은 이날 당원, 당직자 총동원령을 내려 본회의장과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를 비롯한 3개 상임위의 점거를 이어가는 한편 영등포 당사에서 결의대회를 갖고 ‘MB악법 결사저지’를 재확인했다.
원혜영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한나라당이 끝내 ‘MB 악법’ 강행처리를 고집한다면 결사항전해 기필코 막아낼 것”이라며 “이번 임시국회는 여야 합의가 가능한 민생법안만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휴대전화도청법과 방송장악법, 재벌은행법 등 MB표 반민주·친재벌 악법을 즉각 철회하라”며 “이들 악법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제 관심은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이라는 칼을 언제 어떻게 빼들 것인지에 모아진다. 당장 이번 임시국회가 내년 1월 8일까지인데 지금껏 여야가 대화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강행처리를 한다면 그 비난 화살이 국회의장 정치력으로 향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여기에다 강행처리 과정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거칠게 저항한다면 국회의장에 대한 정치적 반감까지 높아질 것이라는 점도 부담이다.
이에 따라 김 의장은 당장 질서유지권 등을 발동해 최악의 여야 충돌 사태를 감수하기보다는 이번주중 최대한 양측 간 협상을 중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국회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한편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도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나라당이 쟁점법안의 연내 일괄처리 강행시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민주당은 본회의장을 점검해 결사항쟁을 부르짖고 있고, 한나라당이 이런 시점에서 강행처리를 감행하면 결국 마주 달려오는 열차가 충돌하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선진당은 이날 ▲민생, 경제, 지방살리기 법안의 연내 우선 처리 ▲미디어관련 7법과 헌법재판소 위헌 불합치 규정 등의 내년중 조속 협의처리 등을 골자로 한 2차 중재안을 제시한 뒤 권선택 원내대표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와 각각 접촉했으나 민주당 측이 강경입장을 밝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