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고향인 충청도를 위해 헌신하다 지난 20일 74세의 일기로 별세한 고(故) 김용래 충청향후회 중앙회 총재를 애도하는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
충청향우회 총재단은 24일 고 김 총재를 추모하며 쓴 추도문에서 “불과 보름전만 해도 충청향우회 신년교례회장에서 향우들의 단합을 외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며 “그날 저녁 그리 갑자기 떠나실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슬퍼했다.
총재단은 “어찌 충청인의 단합만 외치셨겠느냐”며 “전국을 순행하면서 국민통합을 역설할때는 그 몸짓과 패기 하나만으로도 시종일관 장내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고, 언제나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용기와 힘을 불어넣어 주는 희망의 전도사 역을 기꺼이 자청하셨다”고 고인을 떠올렸다.
총재단은 그러면서 “정작 가신 날은 아예 집무실에 들르지도 못하셨다”며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마지막 한순간까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셨다”고 회상했다.
총재단은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 곳의 행사장을 순행하며 축사와 격려사를 감당할 정도로 시간이 모자랐던 분”이라고 고인의 열정을 높이 사면서 “소탈하고 당당한 그 걸음을 우리가 다시 볼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이내 총재단은 내무부 공무원으로서 35년간 국가에 몸 바친 고인의 애국심과 새마을 운동에서부터, 한우의 경쟁력을 위한 육종개량, 5년여의 최장기 중앙공무원 교육원장, 경기도지사를 거쳐 서울시장으로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 총무처 장관에 오르기까지 고 김 총재의 업적을 기렸다.
총재단은 “공직을 떠난 후에도 서울시 환경미화원 후원회를 맡아 봉사하는 제2의 삶에 웃음을 잃지 않으셨다”며 “또 후학들을 위해 지난해까지 매주 대학강단에 설 정도로 교육에 대한 열정이 크셨다”고 평가했다.
이어 “공직생활 중 한번도 고향땅에서 일한적이 없는 것을 마음의 빚으로 생각해 맡은 일이 ‘충청향우회의 대동단합’이었다”며 “사분오열된 향우단체를 하나로 묶기까지 그 짐이 그리 무거운 줄 저희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고개숙였다.
총재단은 “충청장학문화재단을 설립하고 2만여권의 장서를 아산시에 기증한 것도 이렇게 갑자기 떠날 때를 미리 대비한 듯해 더욱 고개가 숙여진다”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으로 두달여 짧은 기간에도 모든 경륜을 다해 최고 국학기관의 위상을 정립하는 일에 매달렸다”고 썼다.
총재단은 이를 “평소 교육을 통해 국격을 높여야 국가브랜드가 높아진다는 신념을 행동으로 신천해 보인 것”이라며 “이제 인자한 미소와 친근한 웃음소리를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님께서 남기신 그 뜨거운 고향사랑과 나라사랑의 못다한 뜻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총재단은 “떠나신 후 노란 개나리가 피어날 때면 더욱 그리워질 것”이라며 “부디 먼 길 편히 가시고 멀리서나마 지켜봐 달라”고 갈음했다.
앞서 21일 서울환경미화원 30여명은 서울삼성병원 빈소를 찾아 조문에 감사하다는 뜻을 전하는 상주에게 “환경미화원에게는 아버지 같은 분이었다”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주진위 노조위원장은 “새벽에 불쑥 나타나 ‘밥은 먹었어?’라며 식사를 챙기고 늘 ‘고생 많다. 힘내라’며 어깨를 다독여 줬다”고 고인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