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월 임시국회 최대 쟁점 법안이었던 미디어관련법을 25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전체회의에서 기습 상정했다. 법안 상정까지 걸린 시간은 단 15초에 불과했다.
이에 허를 찔린 민주당 등 야당은 “상정은 무효”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정국경색이 한층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 소속인 고흥길 위원장은 이날 오후 3시 45분쯤 전체회의 도중 “3당 간사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법 77조에 의해 방송법 등 22개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법을 일괄 상정할 수밖에 없다. 상정합니다”고 선언하며 의사봉을 ‘탕 탕 탕’ 세 차례 내려친 뒤 산회를 선포했다.
이에 대해 여야 의원들은 법안 상정 성립 여부를 놓고 논란을 벌였다. 전병헌 민주당 간사는 “고 위원장이 구체적인 법안명을 밝히지 않은 채 의사봉을 두드렸기 때문에 법안 상정 자체가 원천 무효”라며 “강력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이에 나경원 한나라당 간사는 “미디어관련법이라는 이름을 통해 모든 법안을 통칭하기로 이전 회의에서 이미 약속한 바 있다”며 “법적인 하자가 없다”고 맞섰다.
기습적인 직권상정에 뒤늦게 위원장석으로 몰려든 야당 의원들은 고성과 함께 위원장의 멱살을 붙잡으며 “날치기를 하려는 것이냐, 무효다”라고 거세게 항의했고, 한나라당 의원들은 “위원장에게 뭐하는 짓이냐”라며 맞서 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으나 고 위원장은 산회를 선포한 뒤 득의에 찬 표정으로 곧바로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이번 직권상정에 따라 임시국회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간 대치가 다시한번 극한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문방위 여야 간사간 의사일정 합의가 전혀 없었고, 상정 당시 문방위원들은 의안을 배부받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고흥길 문방위원장이 배부하려고 준비한 의안의 대표 법률과 다른 명칭을 사용했다는 점을 들어 무효를 선언했다.
민주당 조정식 대변인은 이날 “22개 법안 중 미디어법이라는 법안 명칭은 없다”며 “대표 명칭은 저작권법 일부 개정법률안으로 고흥길 위원장은 급한 나머지 있지도 않은 명칭을 사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고 위원장의 신문방송악법 날치기 상정 시도는 고흥길 위원장의 실수로 미수에 그친 사건”이라며 “국회법 절차의 기본조차 지키지 못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도 “이것이 한나라당이 말하는 합의의 정신이냐. 직권상정이라는 탈을 쓴 폭력,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매우 옹색하고 석연치 못한 상정 과정에 대해 고 위원장은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국회법에 따른 의사진행”이라며 “상정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김정권 원내 대변인은 “속기록을 보면 고 위원장이 ‘미디어법 등 22개 법안을 상정한다’고 한 말이 기록돼 있다”면서 “법안 상정 건수가 많을 때는 법안 명칭을 전부 열거하지 않고 통상적으로 이렇게 해왔다는 것을 민주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정 절차에 대한 공연한 시비를 걸며 국회를 마비시킬 궁리를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며 “당장 내일부터라도 미디어 관련 산업법에 대해 치열한 대체토론을 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고 민주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사실상 남은 국회일정을 전면 보이콧할 태세여서 향후 정국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