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와 옹녀
제 3강 뼈냐, 고기냐, 가죽주머니냐?
사내의 그것은 빳빳하고,
따뜻하고, 대가리는 크고, 길이는 길어야 하고, 속은 실해야 하며, 일을 할 때는 오래오래 끌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사내가 여자에게
줄 수 있는 여섯 가지 보배이다.
그러나 이 여섯 가지 보배를 두루 갖춘 사내의 그것도 세월이 가면 여자를 위해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빈 가죽 주머니로 변하고 만다.
속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텅 빈 가죽주머니에서 무엇을 꺼내어 여자에게 주겠는가. 그러니 그것의 주인이나 그것을 써야 할 쪽이나 다
같이 불만스러울 수밖에.
어떤 늙은이가 딸만 내리 셋을 두었다. 아들을 볼 욕심으로 계속 출산을 하다보니 이른바 딸, 딸, 딸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집안에 아버지를
빼고는 사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으니 딸들은 자연 사내의 그것에 대해서는 백지일 수밖에 없다.
이윽고 딸을 출가시킬 때가 되었다. 찢어지게 가난한 탓으로 딸을 출가시키기도 이만저만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나 그 어려운 살림에도 그러나
맏딸만은 이럭저럭 마땅한 총각을 얻어서 짝을 지어 주었다. 맏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집안 살림이 말이 아니었다.
둘 째 딸을 시집보내야 할 때가 되자 여기저기 매파를 놓았으나 가난한 집에 장가들겠다는 총각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혼담이 들어오기는
들어왔으나 혼담을 넣은 쪽은 나이 지긋한 홀아비였다. 기가 막힐 일이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딸을 그대로 늙게 할 수는 없어서 이 홀아비에게라도
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서 둘째 딸은 사십에 가까운 홀아비에게 시집보내고, 셋째 딸은 그 보다 나이가 더 많아서 오십 줄에 들어선 늙은 홀아비의 재취로
내주었다. 아버지는 두 딸을 홀아비에게 내준 것, 그것도 젊은 홀아비가 아닌 늙은 홀아비에게 내준 것에 대해서 딸들에게 못내 미안해했다.
이렇게 어렵게 시집간 딸들은 그러나 별 말 없이 그런 대로 잘 사는 것 같아서 늙은 아버지는 한 시름을 놓았다.
그런 어느 날, 딸들이 친정에 모일 일이 생겼다. 자매들은 오랜만에 한 자리에서 모여서 그 동안 그녀들이 겪었던 시집살이이의 어려움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일들을 이야기하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늙은 친정 아버지는 옆방에서 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이들의 대화는 끝이 없다.
마침내 이들의 대화가 남녀의 밤일과 사내의 그 물건에 이르렀다. 한 딸이 희한한 질문을 한다.
“도대체 사내의 그 물건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하기야 이상하기도 할 것이다. 딸들은 한참 생각하는 눈치 더니 맏딸이 먼저 그 질문에 대답을 한다.
“그 안에는 틀림없이 뼈가 들었을 것이야.”
“뼈가 들어있다고?”
이에 대해서 맏딸은 이렇게 반문한다.
“그래, 뼈가 들어있지 않고서야 그것이 어찌 그리 단단하고 뻣뻣할 것이며 그 일을 할 때 마치 송곳처럼 쿡쿡 찌르겠니?”
옳거니!
늙은 친정 아버지는 그럴듯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뼈는 아니지만 성깔을 낼 때면 뼈보다 더 날카롭고 단단하렷다. 늙은 아버지가 혼자서
중얼거리는데, 둘째의 대답이 들린다.
“아니야, 그 속에 들은 것은 뼈가 아니라 힘줄이야! 힘줄이니 그리 질기지! 안 그러냐?”
늙은이는 그 말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셋째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다는 듯 한참이나 생각해 보더니 대답한다.
“아니야! 들어있기는 뭐가 들어있어? 그것은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은 그저 빈 가죽 주머니야!”
그렇구나! 늙은이의 그것은 속에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는 가죽 주머니에 불과하다. 새벽녘에 잠깐 무언가 들어있는 듯 빳빳해지고 실해지는
가 싶지만 오줌 한번 누고 나면 텅텅 빈 가죽주머니로 되돌아간다. 그러니 그것이 어찌 옥문 관을 씩씩하게 넘으랴.
둘째와 셋째의 대답이 늙은 아버지의 마음을 어둡게 한다.
“아아, 집이 가난하여 아래 두 딸에게는 뼈의 진짜 맛을 보여주지 못했구나! 애석하구나!”
단단한 뼈가 콕콕 찌르는 듯한 묘한 통증과 구수한 뼈 국물 맛을 함께 맛보이는 젊은 사내의 그 것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는 불행이여!
두매 산골에 나이가 지긋한 부부가 농사짓고 길쌈하며 행복하게 살았다. 가을걷이가 끝나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던 농사철에 비해서 조금은 한가해지자 아내는 남편의 겨울나기를 위하여 버선을 지었다. 한 해 내내 힘들게 농사일을 한 남편에게 솜을
넣은 따뜻한 버선 이상으로 정이 넘치는 좋은 선물이 있으랴.
그러나 가을걷이가 끝났다고 하여 농촌에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낮에는 여전히 바깥일로 바쁘다. 그래서 아내는 밤이 되어서야 등잔불을
돋우고 부지런히 바느질을 했다. 때문에 버선 한 켤레 짓는데도 며칠이나 걸렸다. 남편은 아내가 무엇을 하느라고 끙끙거리는지 처음에는 의아해했으나
그것이 자기 버선인 줄 알자 은근히 좋아라 했다. 아내는 정성을 다하지만 남편이 생각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린다.
도대체 버선 한 켤레 짓는데 뭘 저리도 꾸물거리는지. 쯧쯧.
드디어 버선이 완성되자 아내가 남편을 불렀다.
“이리 와서 이 버선을 좀 신어 보시오!”
남편은 좋아라고 버선을 신어 본다. 버선이란 조금만 헐거워도 벗겨지기 마련이므로 본래 좀 작게 만드는 법이지만 이번 것은 작아도 너무 작아서
도무지 들어가지 않는다.
“안 되겠어, 너무 작아!”
“너무 크면 헐거워서 벗겨지니 버선이란 좀 작아야 한다오!”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신어보지만 도저히 안 된다.
“너무 작다니까!”
“기름 종이로 발을 싼 다음에 신어보오!”
남편은 아내가 하라는 대로 기름 종이로 발을 감싸고 신어 보지만 역시 들어가지 않는다. 좀 작게 만든다는 것이 터무니없이 너무 작게 만든
탓이었다. 버선을 신느라고 한참이나 꿍꿍거리다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서 남편은 버선을 팽개치며 투덜거린다.
“임자의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마땅히 좁아야 할 물건은 너무 넓고 헐거워서 못 쓰겠더니 좀 넉넉하고 넓어도 좋을 물건은 왜 이렇게
좁게 만들었는지….”
마누라도 지지 않는다.
“사돈이 남 말한다더니 당신을 두고 한 말이구려! 당신 것은 어떻소? 마땅히 길고 굵어야 할 물건은 짧고 가늘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고,
크지 않아도 될 발은 왜 그렇게 맥없이 큰지….”
비좁아서 닿는 맛이 나야할 아내의 그곳은 넓고 헐거워서 도무지 쓸 수가 없더니 조금 크고 넉넉해도 괜찮을 버선은 왜 이토록 비좁게 만들었으며,
마땅히 길고 긁어야 할 남편의 그 물건은 짧고 가늘어서 도무지 쓸모가 없더니 좀 작아도 괜찮을 발모가지는 뭣하러 그렇게 크냐?
이 부부의 그것이 처음부터 헐거웠던 것도, 또한 처음부터 짧고 가늘었던 것은 물론 아니었다. 이 부부가 처음 일을 벌릴 때의 대화는 어떠했을까.
“아아, 아파요! 조금 살살 하시오!”
“알았어, 알았다니까! 임자나 너무 물고 옥죄이지 말더라고! 너무 물고 옥죄이니 참을 수가 없어, 참을 수가 없다고!”
이렇게 한 쪽은 옥죄면서도 받아들이고, 한쪽은 뻣뻣하여 송곳처럼 쿡쿡 찌르면서도 알알한 통증 같은 묘한 맛을 맛보이던 것이 그러나 세월이
가면서 한 쪽은 너무 헐거워서 닿는 맛이란 전혀 없고, 다른 한쪽은 짧고 가늘어진데다 힘까지 빠져서 바람든 겨울 무맛이 되어 버렸다.
아아, 세월의 무정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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