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의혹을 수사중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하기 위한 증거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 법원이 진술만으로는 쉽사리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는 상황에서 돈의 명목과 사용처를 놓고 노 전 대통령의 ‘입’과 박 회장의 ‘입’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그간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된 100만달러와 조카사위 연철호씨 계좌로 송금된 500만달러 등 600만달러의 주인을 노 전 대통령으로 보고 연관성을 찾는데 주력해 왔다.
이와 관련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횡령 등의 혐의로 대전지검 특수부가 구속한 강 회장을 서울로 이감, 16∼17일 이틀에 걸쳐 조사할 계획이라고 15일 밝혔다.
검찰은 강 회장이 2007년 8월 박 회장,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 지원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3자 회동’을 가졌던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500만달러를 내겠다고 나섰다가 거절당했지만, 공교롭게도 지난해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의 계좌로 같은 액수의 돈이 건네졌다.
박 회장 측으로부터 100만달러를 받아 권 여사에게 전달하고 3자 회동에도 참석했던 정 전 비서관도 이날 소환됐다. 지난 10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첫 소환이다.
지난 12일과 14일 두차례에 걸쳐 소환돼 각각 14시간여 동안 강도높은 조사를 받았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16일 검찰에 다시 출석할 예정이다.
박 회장과의 500만달러 거래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혐의(외환관리법 위반)로 조사를 받았던 연씨에 대한 조사는 마무리됐다고 검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검찰은 또 박연차 회장이 인수를 시도했던 경남은행 인수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박창식 창원상공회의소 회장도 소환했다.
결과적으로는 인수가 무산되기는 했지만, 박창식 회장을 불러들인 이유는 이 과정에 노무현 전 대통령 혹은 참여정부 인사 등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를 살펴보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검찰은 경남은행 인수 과정은 물론 박 회장이 휴켐스를 인수하고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사업을 따내는데 노 전 대통령이 다양한 측면에서 편의를 봐줬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만약 노 전 대통령은 물론 참여정부 인사들의 입김이 작용했는지가 규명된다면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측에 건넨 600만달러를 ‘편의를 봐준 대가’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여기에 ‘노 전 대통령이 이 돈거래를 재임 중 알았다’는 점만 입증된다면 검찰이 10일 밝힌대로 “노 전 대통령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과 포괄적 뇌물 공범”이 된다.
하지만 검찰은 현재까지100만달러가 권 여사에게 전달된 사실, 연씨의 투자회사에서 돈이 건너간 기업체의 지분을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한때 소유한 사실만 밝혀냈을 뿐이다.
아울러 1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의 미국 출장길에 건호씨에게 전해졌다는 의혹과 관련, 당시 시애틀 총영사와 경호관 등을 불러 조사했지만 의심스러운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여기에 권 여사의 동생 기문씨도 불러 권 여사와 건호씨간 돈거래, 권 여사와 박 회장간 밝혀지지 않은 돈거래 등을 캐물었지만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노 전 대통령의 뇌물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수사가 난항을 겪으면서 당초 이번 주말께로 예견됐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빨라야 다음주 초에나 이뤄질 전망이다.
앞서 “확인할 것들이 많다”며 수사가 늦춰질 것을 시사한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500만달러가 어떻게 운용됐고 어떤 식으로 사용됐는지, 면밀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