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이 결정되면서 관심을 끌었던 포인트가 있다. 바로 검찰과 노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의 창과 방패 대결 . 양측 모두가 쟁쟁한 실력자들이라는 점에서 법조계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 재계까지 그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며 지난달 30일 오후 벌어진 그들의 수싸움에 주목했다.
우선 검찰내 최강 파워조직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팀은 화려함의 극치를 자랑했다. 수사 지휘를 맡은 좌장인 이인규 중수부장은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 9부장 시절 SK그룹 비자금 수사를 맡아 손길승, 최태원 회장을 구속시켰고, 이듬해 원주지청장을 지내면서는 안대희 중수부장의 요청으로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 참여했다. 조관행 전 고법 부장판사 등 법조비리 사건을 수사하면서 법원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대언론 창구를 맡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수사에 모두 참여해 ‘전직 대통령 수사 전담’으로 불린다.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는 서울지검 특수부 검사로서 대검에 파견됐고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때 전 전 대통령을 직접 신문했다. 1997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가 연루된 한보사건도 수사했다.
노 전 대통령 직접 신문한 우병우 중수1과장은 2001~2002년 ‘이용호 게이트’ 특별검사팀에 파견돼 수사를 했다. 이 사건은 김대중 전 대통령 아들 홍업씨에 대한 수사로 이어졌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의 방패막이를 자처하고 나선 것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문 전 실장은 검찰 ‘칼날’이 노 전 대통령을 겨눌 때부터 봉하마을의 공식적인 ‘입’ 역할을 했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2억원 상당 명품 시계를 노 전 대통령 회갑 선물로 줬다는 ‘피의사실’이 검찰에서 흘러나오자 “전직 국가원수를 망신주려는 것이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그는 검찰이 노 전 대통령 공개소환 방침을 밝히자 “내가 대통령과 함께 청사에 갈 것”이라고 말했고 실제 봉하마을에서 함께 버스를 타고 대검청사까지 동행했다. 지난 30일 하루종일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킨 것도 문 전 실장이었다.
그는 “사실과 진실은 밝혀지기 마련이다. 혐의를 다 벗는 기회가 돼야 한다”며 검찰조사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타고 온 버스가 잠시 경부고속도로 입장휴게소에 들르자 내려 “다들 무거운 마음”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문 전 실장과 노 전 대통령의 인연은 남다르다. 그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법무법인 부산에서 근무했었고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대우조선 파업 개입 혐의로 구속됐을 때도, 2004년 탄핵정국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때는 1981년에는 ‘부림’(부산의 학림) 사건 변론을 맡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재임기간에는 국정을 최일선에서 이끈 경험도 있는데다 노심(盧心)을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측근으로 통했고, 묵묵히 대통령을 보좌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같은 사실은 문 전 실장이 비록 법조계에서 ‘화려한 명성’을 떨치진 못했지만 적어도 이번 조사에서 검찰의 공격을 막아내는 데는 적임자란 분석을 낳게 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검찰 측의 주장에 대해 분위기 반전 모드로 맞선 것도 문 전 실장이 제대로 방패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그는 검찰조사 직후 “600만 달러를 받는 과정에 노 전 대통령은 무관하다는 것이 더욱 선명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전 실장은 “검찰이 많은 정황 증거를 제시했고, 그중에는 노 전 대통령이 몰랐던 부분도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600만 달러에 관여하거나 사전에 보고받아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 측은 검찰이 혐의를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과의 대질신문도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에 시도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문 전 실장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자녀들이 권 여사로부터 송금을 받은 정황 증거 등을 제시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알지 못했던 것들”이라며 “100만 달러 용처는 정리가 되는 대로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권양숙 여사도 100만 달러의 사용처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포괄적 뇌물수수 혐의 적용이 관건
노 전 대통령은 검찰조사를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600만 달러의 포괄적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할지가 관전포인트다.
대검 중수부는 현재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할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검찰은 정상문 전 대통령 총무비서관이 재임시절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특가법상 국고 등 손실)에 대한 공범으로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 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에게 퇴임 후 건네려고 마련한 돈이지만 노 전 대통령은 몰랐다”고 선을 긋고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증거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조사한 결과 “100만 달러와 12억5000만원에 대해서는 몰랐고, 500만 달러는 퇴임 후 알았지만 정상적인 투자금”이라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어 조사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 최종 수사보고서를 작성중이다.
검찰은 박 회장으로부터 2007년 6월29일 정 전 비서관이 받아 대통령 관저에 전달한 100만 달러와 2008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송금돼 장남 건호씨와 함께 쓴 500만 달러는 모두 노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른 돈으로 결론내렸다.
검찰은 100만 달러 수수의 공범인 정 전 비서관의 구속 시한이 오는 8일 만료함에 따라 다음 주 중반 노 전 대통령을 사법처리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에 앞서 권양숙 여사를 부산지검으로 재소환할지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권 여사가 2006∼2007년 미국에 체류하던 장남 건호씨와 딸 정연씨에게 대리인을 시켜 수차례에 걸쳐 생활비를 달러로 송금하고, 건호씨가 사업을 하는데 투자금을 지원하는 등 30만 달러 이상을 건넨 사실을 밝혀냈다.
검찰은 권 여사가 이 과정에서 돈을 빌려 쓰고 박 회장의 100만 달러로 충당했는지 의심하고 있지만 노 전 대통령이 “모른다”고 진술함에 따라 권 여사를 재소환하거나 서면조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1주년 352호 커버스토리에서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