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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무현을 떠밀었나?

김부삼 기자  2009.05.27 1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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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검찰이 곤경에 빠졌다. 박연차 리스트에 대한 검찰 수사가 수사 초기 한나라당 PK중진 의원들을 겨냥하는 것 같더니 수사 중반에 이르자 이광재, 서갑원 민주당 의원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그룹으로 번져갔고, 급기야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권양숙 여사, 형 건평, 아들 건호씨 등 친인척들에게로 확대되면서 노 전 대통령이 심리적 압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수사 종반, 노 전 대통령을 더욱 압박하며 종착역이 노 전 대통령임을 못박아 수사에 박차를 가했고 그런 와중에 전직 대통령이 투신자살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인한 결과’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사태의 파장이 어디에 미칠지 아직 단정하기 이르지만 벌써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표를 제출하는 등 검찰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임 총장의 사표는 “사태 수습이 우선”이라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뜻에 따라 반려됐지만 거취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거행되는 29일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초상집 분위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검찰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날부터 검찰은 매일 실시했던 브리핑을 취소하는 등 언론 노출을 극도로 피하고 검찰 일각에서 임채진 검찰총장 사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벌써부터 시점 얘기가 나돌고 있다.
지난 23일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부터 대검찰청 홈페이지 ‘국민의 소리’ 게시판은 검찰을 비난하는 글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난 25일 자정부터 낮 12시까지만 해도 1000여건의 글이 올라왔다. “무리한 수사로 노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검찰은 정권의 하수인이다”는 비판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임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글은 수없이 달리고 있다. 수천건이 넘는 글은 대부분 검찰의 무리한 수사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특히 대검찰청은 지난 23∼24일 연속 검사장급 회의를 열었던 모습과는 달리 월요일마다 과장급 간부가 모여 현안을 논의했던 정례회의를 취소한 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김해 봉하마을을 찾은 민주화 인사와 유가족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무리한 검찰 수사로 빚어낸 안타까운 결과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초대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낸 박형규 목사는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 벌인 수사를 보면서 처음에는 (노 전 대통령이) 생각보다 잘 견딘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그 이면에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괴로운 심정을 갖고 계셨나 보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 목사는 “흉기를 들고 찌르는 것만이 살인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살인이 될 수도 있다”는 말로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씨도 “검찰이 심하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시는 길에 영원하시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박정기 씨는 또한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도 “‘경제 살리기’보다 중요한 건 인권”이라며 “인권 문제를 앞세우고 동시에 경제살리기를 진행했으면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정치권도 검찰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검찰조사가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거나 또 투망식으로 되거나 장기간 연장됨으로써 불행을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면 검찰권의 진정하고 공정한 정립을 위해서도 규명되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에서 “이번 서거가 국민간의 대립과 분열의 불씨가 아니라 진정한 이해와 화합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 이 분을 자살까지 몰고 간 잘못은 없는지 진지하게 가려볼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검찰은 진상규명에 집착한 나머지, 또는 정치적 고려에 좌우된 나머지 적법절차의 정신과 한계를 일탈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다시 한번 검찰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상민 정책위의장도 이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검찰이 수사과정에 있어 원인 제공을 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며 “무리하게 진행한 부분이 있지 않은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검찰을 압박했다.
행정부 공무원 노동조합도 지난 25일 논평을 통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 “태생부터 무리한 수사”로 규정했다.
행공노는 “태생부터가 무리한 표적수사다 보니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비리 내용을 밝히지 못하고 오히려 온갖 언론 공작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하는 데 힘을 쏟았다”고 밝혔다.
행공노는 또 “검찰의 비열한 공작은 노 전 대통령과 그 주변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급기야는 전직 대통령의 서거라는 초유의 비극까지 불러왔다”고 덧붙였다.
행공노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을 자살로 몰아간 검찰의 행위는 단순히 무리한 수사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정치공작으로 규정했다.
이런 가운데 임 총장은 지난 25일 오전 9시께 청사에 나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집무실로 향했으며 자신의 거취 문제 등을 놓고 밤새 많은 고민을 한 듯 굳은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임 총장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예정됐던 주례 간부회의를 취소했고 오전 11시20분께 문성우 차장, 한명관 기조부장과 함께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서 청사로 돌아왔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언론브리핑을 중단한 수사팀 역시 “침통한 분위기가 계속되고 있다”고 대검 관계자는 밝혔다.
임 총장이 사퇴 의견을 이미 밝혔으나 청와대에서 만류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사의 전달이 없었다”고 밝혔으며 검찰 관계자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한테 임명장을 받은 임 총장이 서거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검찰조직 전체를 위해 즉각 사퇴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했으나 ‘박연차 게이트’ 수사 마무리가 우선돼야 한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는 소문도 있다.
임 총장이 사퇴하면 이인규 중수부장은 물론 중수부 수사팀까지 대폭 물갈이되면서 사실상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나머지 ‘박연차 게이트’ 연루자에 대한 수사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
검찰은 분열과 동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노 전 대통령 장례식 이후 닥쳐올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검찰 내부에서는 늦어도 장례 절차가 끝나기 전 수뇌부가 거취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관건은 청와대의 판단이다. 임 총장의 거취는 박연차 리스트를 수사 중인 현 수사팀의 교체 여부와 직결돼 있고 현 수사팀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수사의 정당성과 동력을 사실상 상실한 상태이지만 청와대로선 수사팀 교체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
수사팀을 교체할 경우 무리한 수사, 편파수사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교체하지 않을 경우 국민여론에 화를 당할 수 있다. 때문에 현 수사팀으로 남은 수사를 마무리 짓고 6월 말이나 7월 초로 예상되는 개각 시점에 임 총장이 자진사퇴하는 수순을 밟을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다. 지난 용산참사 당시의 경우를 보더라도 즉각 경질 요구를 받은 김석기 전 경찰청장은 시간을 끌다 적절한 시기에 자진사퇴한 바 있다.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따라서 임 총장 또한 이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관련, 검찰의 무리한 수사 때문이라는 책임론이 확산되자 검찰은 사전 차단에 나섰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한 당일날 긴급 성명서를 통해 “현재 진행중인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는 종료될 것으로 안다”며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에 충격과 비판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아울러 검찰은 노 전 대통령 구속 여부에 대해 뒤늦게 ‘불구속 기소 방침이었다’고 밝히면서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검찰을 향한 책임론은 쉽사리 수습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1주년 353호 커버스토리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