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노무현 프레임’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모습이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확인된 등돌린 민심은 집권 2기차에 접어든 이명박 정부에게 충격적인 것이었고 선거를 통해 당을 존속시켜야 할 집권여당에게는 이른바 사형선고 그 이상으로 다가왔다.
여기 더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불어 닥친 ‘조문정국’은 가뜩이나 ‘반(反)이명박 정부’ 정서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악재가 되고 있는 것. 민주당은 ‘조문정국’에 편승, 4년만에 지지율 역전이라는 상황에 쾌재를 부르고 있고 상대적으로 고정지지층을 가지고 있던 한나라당은 집권여당의 체면을 한없이 구기고 있다.
더구나 당내에서는 쇄신파동으로 당 지도부와 소장파가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고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없이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민주당의 등원거부로 인해 6월 임시국회 지연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한나라당이 떠안고 있다. 문제는 이대로 가다가는 10월 재보선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고착화되고 있는 데다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선전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책임론에 말려든 한나라당의 운명은 칠흑같은 안개속이다.
◆내홍 수습 급선무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이 우선 처리해야 할 당면과제는 당 내홍 수습이다. 이제까지 지루하게 끌고 온 친이명박-친박근혜계의 갈등이 아니라 당 지도부와 소장파, 쇄신특위간 다툼을 말하는 것이다.
170석이 넘는 거대 여당으로 이제까지 한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현재는 그보다 문제가 심각하다. 친이계는 정두언 의원을 비롯한 7인의 소장파와 ‘함께 내일로’ 등 이재오계 등으로 분화되고 있고, 원희룡 의원이 이끄는 쇄신특위를 축으로 원조소장파가 세력화를 하고 나섰다.
개혁성향의 의원모임은 민본 21도 독자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고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2선 후퇴 선언으로 비어있는 자리는 3선급 이상의 당 중진들이 호시탐탐 넘보고 있다. 쇄신논의로 촉발된 한나라당 내 권력투쟁 양상은 그야말로 소그룹간의 치열한 다툼으로 번지고 있고 아예 핵분열하고 있다는 진단도 따른다.
때문에 청와대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 할 한나라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대로 방치할 경우 6월 임시국회에서의 대야협상은 기대할 수 없고, 미디어법 등 주요쟁점법안 처리 또한 밀어붙일 수 없다. 국정장악력을 잃은데다 추진동력 또한 없기 때문이다.
강경쇄신파의 조기전대 개최 및 당 지도부 사퇴 요구에 박희태 대표는 일단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대화합’을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일단 내홍을 수습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그는 8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조기전대를 반대하지 않는다”며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혔다.
박 대표는 회의시작 전 “일단 내 입장을 피력하겠다”고 말한 뒤 “제가 반대하는 것은 화합의 전당대회가 아닌 반쪽짜리, 분열전당대회다”면서 “반쪽난 전당대회를 국민 앞에 내놓고 쇄신을 했다고 국민과 당원들에게 얘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어 “지난번 우리가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도 당의 분열 때문이다. 화합 없이는 이제 한걸음도 나갈 수 없다”며 “반쪽짜리 전당대회로 박수를 받을 수도 없고, 10월 재보선은 물론 지자체 선거도 승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표는 쇄신의 전제조건으로 “쇄신의 본체야말로 대화합이다. 화합이 없는 쇄신을 해봐야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며 “그동안 해왔던 화합의 노력은 소(小)화합이었고, 앞으로는 근본적으로 대(大)화합을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대화합을 위해 제 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또 “신명을 바쳐 노력할 것이다. 그렇게 (대화합을 하는데)긴 세월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내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과 당원의 기대를 걸고 대화합의 험난한 길에 나서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일단 박 대표가 강경한 자세로 나서면서 쇄신강경파의 자세도 다소 수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가 “(대화합을 이루는데)긴 세월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며 속도조절을 요구한 이상 쇄신파도 무리한 속도를 내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가 사퇴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집단행동을 불사하겠다던 정두언, 정태근, 김용태 의원 등은 지도부의 결정을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여야할지 고민했고 민본 21도 전체회의에서 박 대표의 입장을 놓고 숙의했다.
쇄신특위의 강경한 입장도 한풀 꺾였다. 공성진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서 “재보선 패배 이후 책임소재 규명과 극복방안 마련을 위해 쇄신특위를 출범시켰으나 최근까지 쇄신특위의 공식보고조차 없었다”며 “여야가 정치공방을 하듯이 언론을 매개로 당내 문제가 국민들에게 불안하게 비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공 최고위원은 그러면서 “지금이라도 각 계파의 생각, 당원들의 생각을 담아서 단일안으로 쇄신특위 위원장이 최고위에 공식 보고해 달라”며 “당초 출범시 전권을 부여하겠다고 한 만큼 쇄신위의 공식보고가 있으면 이를 즉각 수용하겠다는 것이 대다수 최고위원들의 의견이다”고 말했다.
공 최고위원이 공개적으로 쇄신특위의 보고누락을 비판하고, 정식적으로 최고위에 원희룡 위원장이 활동을 보고할 것을 주문하자 이날 쇄신특위는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이제까지 전권을 위임 받았다 생각하고 강한 자세로 당 지도부를 압박했지만 정작 과정을 중요시 하지 않았던 실수를 지적받으면서 한방 크게 얻어맞은 것이다. 쇄신특위는 긴급회의에서 최고위에 보고할 단일안을 마련키로 의견을 모았다.
최고위가 공개적으로 보고를 주문한 만큼 이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당 안팎에서는 최고위의 주문을 쇄신특위가 받아들이고 또한 쇄신특위의 단일 보고안을 최고위가 수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 당장 불거진 내홍은 일정부분 잠잠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당 최고위는 지난 주말 비공개회의를 열어 지난번 재보선 참패가 박 대표의 책임과 아무런 관계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공 최고위원은 “재보선 패배는 박 대표와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에 대행체제는 불가하다”며 “다만 비대위 체제 등 비공식 임시기구를 구성할 경우 당의 책임있는 이들이 모두 참여해 10월 재보선을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도록 노력한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 최고위원은 “쇄신위의 공식적인 보고 이후 이같은 방안을 포함해 제 견해와 소견 및 최고위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덧붙여 쇄신위 공식보고 후 절충안이 도출될 것으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1주년 354호에서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