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비정규직법 개정안 등 쟁점 법안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선진과창조의 모임 등 세 교섭단체의 원내대표들이 두 번째 협상이 또다시 결렬됐다.
두 번째 협상에서는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비정규직 대량 해고 사태를 막기 위해 일단 법 효력을 정지시킨 뒤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자"고 주장하면서 "유예기간을 1년 6개월에서 1년으로 줄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와 선진과창조의 문국현 모임 원내대표는 "기간에 상관없이 유예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재 비정규직보호법 개정을 둘러싸고 여당과 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비정규직보호법이 처음부터 잘못된 것으로 지적했던 노동계로써는 여야 대립이 가소로운 행동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민주당 전신인 참여정부시절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묵인과 합의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1997년 외환위기 뒤 크게 늘어난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제정 및 개정된 '기간제 및 단시간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과 '파견노동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그리고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 관련 3개 법안을 마련하여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기간제(계약직) 노동자로 2년 이상 일하면 사용주가 사실상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규정했다. 정규직과 동등하거나 유사한 직무를 수행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합당한 이유 없이 임금이나 노동조건에서 차별을 받을 경우에 노동위원회를 통하여 시정을 요구함으로써 임금 보상 등 차별시정 명령을 이끌어낼 수 있다. 또 파견노동자로 일한 지 2년이 지난 경우에 사용주는 고용의무를 지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파견노동자 1인당 30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 법안에 대해 노동계는 시행 전부터 반대해왔다. 노동계는 "사용주가 반드시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하는 강제 조항이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를 이내에는 언제든지 해고를 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잘못된 법안"이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 말을 뒷받침해주듯 시행되기 전부터 사용주들이 직영으로 운영하던 사원체계를 외주 용역업체에 넘기는 일도 발생했다. 한 예로 이랜드그룹 뉴코아와 홈에버는 비정규직 사원 750여명을 해고하거나 외주 용역업체로 넘기려 하자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과 함께 매장점거에 나선 일이 있어 2007년 여름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2007년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 모 일간지의 인터뷰에서 이랜드 사태에 "이랜드가 대기업인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킨다고 해서 망하냐? 이익 좀 줄이면 아니냐? 100만원 벌려고 물건 나르고 계산원(캐셔) 하고, 이런 사람들 일자리 뺏어서 이득 취하는 게 옳은 사회냐?"라고 반문했지만, 대기업 이랜드는 이들의 일자리를 뺏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당시 현대백화점도 비정규직 계산원 전원 외주화 결정했었다. 반면 신세계, 우리은행, 부산은행, 홈에버, 현대․기아자동차(사무계약직 우선 대상)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은 제도 시행에 앞서 정규직으로 전환돼 법의 수혜자가 됐다.
당시 2007년 7월 1일이 일요일이 관계로 2일 아침 이상수 당시 노동부 장관은 우리은행 서울 종로지점에서 우리은행 임직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정규직 보호법 시행 축하 기념행사를 열었다. 우리은행이 조직 개편과 시스템 구조조정을 하면서 비정규직 3천여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해 좋은 사례로 꼽혀 축하행사를 우리은행에서 열게 됐다. 그러나 우리은행은 실질적인 정규직 전환이 아닌 비정규직의 고용은 보장하지만 임금과 복지혜택 등 처우는 정규직과 별도 기준으로 처리하겠다는 시스템 변형이었다. 이 때문에 ‘짝퉁 정규직’이라는 신조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상수 노동부 장관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다니면서 이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는 법안이라고 설득하고 다녔지만 2년 뒤 결과는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 입장으로는 세계적으로 경기가 침체되어 있어 사용주들이 기간제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에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기간제 노동자의 대량해고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고용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현 노동부 이영희 장관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를 찾아다니며 해고를 막기 위해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다니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정부의 입장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반대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정승희 부대변인는 "법 시행이 1일로 시작됐는데 아직도 정치권은 유예기간으로 주장을 내세우며 대립하고 있어 상식으로 이해가 안된다"면서 "2년전 노동계는 비정규직노동자의 사용기간을 만들면 안된다고 지적을 해왔으나 결국 법은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그는"노동부가 이런 지적에 대해 2년 동안 준비를 해왔어야 하는데 현재 대책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오히려 노동부는 언론을 통해 당연한 듯 대량해고라는 말은 공론화 시키고 있고, 특히 이영희 장관은 대량해고 사례를 만드는 듯 공공연하게 대량해고라는 말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 부대변인는 "사용자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면 인건비 상승으로 부담되기 때문에 고용만 보장해주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면서 "물론 이 방법이 해결점은 아니지만 해고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승철 대변인도 "법 적용 될 시기에 혼란이 온다고 노동계가 많은 지적을 해왔는데도 불구하고 정부나 노동부가 아무런 준비 없이 적용될 시기에 임박해 시간을 벌기 위해 유예기간을 연장하자는 이야기는 직무유기에 불과하다"고 정부를 질책했다. 이 대변인은 비정규직보호법 해결을 위한 대책에 대해 "공공부분 같은 경우 사용자가 정부이기 때문에 해고를 중단하면 되고 일반 기업 같은 정규직 전환에 의한 자금부족이 생기는 경우 정부에서 지원금을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동계의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공공기업은 오히려 비정규직 보호법을 이용해 앞장서서 비정규직을 대량해고를 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노동부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1일 36개 사업장에서 476명, 2일 41개 사업장에서 124명, 3일 131개 사업장에서 622명이 계약 해지돼 모두 208개 사업장에서 1222명이 해고됐다. 지역별로는 서울 330명, 부산 126명, 경인 313명, 광주 20명, 대전 309명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노사 양측이 모두 부정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지만 사용주들은 해결방안으로 해고를 택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비정규직보호법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 법안은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되는 법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