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한다는 방침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제동을 걸었다.
박 전 대표가 19일 당의 미디어법 본회의 표결처리 방침과 관련 “만약 본회의에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표는 앞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표도 표결에 참여한다는 전언을 받았다”는 발언에 대해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만약 참석하게 된다면 반대표를 행사하기 위해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 친박계 의원이 전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15일에도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기자들에게 “(미디어법은) 가능한 한 여야 합의로 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도부와 청와대는 박 전 대표의 발언을 거의 무시한 채 기존의 직권상정을 통한 밀어붙이기 전략을 고수하면서 의원 총동원령까지 내린 상태였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반대표 행사’라는 강도 높은 발언을 한 것은 여야 대치전선은 물론 여여(與與) 갈등 소재로 부상하면서 파행정국의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야당의 반발을 무릅쓰고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친박계 인사의 미디어법 대응에 대한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할 공산이 큰데다 내부발(發) ‘반란표’의 조짐은 전체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직권상정 표결 처리 강행처리 수순을 밟고 있던 한나라당 지도부는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됐다.
김 의장의 한 측근은 “박 전 대표의 발언 자체가 김 의장의 결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그 발언으로 새로운 정치적 환경이 조성된 만큼 고민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김 의장이 여야에 대승적 차원의 합의를 거듭 촉구하는 등 중재노력을 계속하면서 이번 6월 임시국회 종료일인 25일까지 시간을 끌지 않겠느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직권상정의 키를 쥐고 있는 김 의장은 이날 새벽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네잎 클로버 찾는답시고 화단 다 망친다’는 제목의 글에서 “협상하고 타협하면 못할 게 없다”며 여야간 대타협을 거듭 촉구했다.
김 의장은 특히 “방송법으로 온통 국회가 마비되고 있다. 아니 쑥대밭으로 돼가고 있다”면서 “네잎 클로버를 찾기 위해 온 꽃밭을 헤집는 어린이처럼, 그 네잎 클로버 때문에 성한 꽃, 귀한 풀들이 망가지고 있다”면서 “네잎 클로버의 환상에서 벗어나고 미련을 버려달라”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또 “방송법이 이렇게 죽고 살기로 싸워야 하는 법인가”라며 “문방위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중요하지만 이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많고 이 법은 민생과 직결되는 법도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그런데도 여러분은 의장인 내가 아무리 종용해도 협상도 타협도 하지 않는다”며 “10년 후, 아니 5년 후 사람들은 이 법으로 그때 이렇게 치고 박고 싸웠다고 하면 아마 ‘참 할일 없는 국회’라는 소리를 분명히 듣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반색했다. 노영민 대변인은 “박 전 대표가 국민의 뜻을 받들어 어려운 결정을 하셨다”며 “한나라당 전 대표조차 국민이 무엇을 바라는지 알고 있는 마당에 집권 여당이 민심을 거스르고 방송장악법을 강행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정세균 대표는 미디어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해 이날 본회의장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정 대표는 또 이명박 대통령에게 영수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
앞서 여야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본회의장을 다시 점거했다. 국회 사무처는 여야간 물리적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자 당직자와 보좌진의 국회 본관 출입을 통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