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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위력, 수류탄인가 핵폭탄인가?

김부삼 기자  2009.09.16 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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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대권주자 반열에 있었던 정운찬 전 서울대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국무총리 후보로 발탁됐다. 9·3개각에 대한 정치권의 해석은 여러 갈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대통령이 ‘정운찬 총리’ 카드로 노무현-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당에게로 넘어가려던 정국 주도권을 다시 되찾았다는 점은 분명한 듯 보인다. 이 대통령 스스로도 지난달 27일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원내대표단과 가진 만찬에서 ‘나는 레임덕이 없을 것으로 본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한 원내부대표가 “이명박 정부는 허니문도 없었지만, 레임덕도 없을 것”이라고 건배사를 하자 이 대통령은 이에 화답해 서울시장 퇴임 때 일화를 소개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 시장을 그만둘 때 참모들이 퇴임식을 7월1일 오전에 잡아놨다. 임기 만료가 언제인지를 확인해보니 6월30일 저녁이었다. 나는 퇴임식을 취소시켰다. 30일 저녁까지 일을 한 뒤 내 발로 시청을 걸어 나왔다”고 말했다. 퇴임하는 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임기 마지막 날까지 일에 몰두했다는 얘기다.
이 대통령은 이후 재임 시절 조성한 서울시청 광장에서 간단한 이임식만 가진 뒤 본격적인 대선 준비에 돌입했다. 다른 참석자는 “대통령이 레임덕 없이 일하겠다는 소신이 강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런 생각은 여권 내 차기 주자군 관리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여권 관계자는 “정운찬 총리 내정자, 정몽준 신임 대표들이 이미 부각되기 시작했고, 이 대통령이 이들과 연이어 만났다”며 “여러 개의 카드를 내보인 뒤 이들을 관리하면서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포석”이라고 말했다.
즉 정운찬 총리 카드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체제 출범으로 차기 대선주자 경쟁에서 독주를 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견제하고 적절하게 후임들을 관리하면서 마지막까지 국정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는 포석중 하나라는 얘기로 풀이된다.
◆ 회심의 미소 의미는?
개각 명단이 발표되던 날 한나라당 친이 주류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친박근혜계는 겉은 환영하면서도 잠재적 경쟁자 출현에 내심 긴장했다. ‘포스트 DJ’의 향방을 놓고 고심중이던 민주당은 한방 얻어맞은 듯 당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충청권 민심을 등에 엎고 있는 자유선진당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여론은 중도성향의 정운찬 총리후보에게 우호적이었고, ‘선비’ 같은 그의 이미지에 열광했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패 한번 던져서 박근혜 견제와 민주당에 넘어가려던 국정주도권을 빼앗고, 충청권 민심까지 사로잡은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정파적으로도, 이념적으로도 기존 우리 정치를 규정하던 경계의 틀을 벗어 던진 통합형 인사를 통해 이 대통령은 정치판 전체에 회심의 승부수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승부수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에서는 최악의 시기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 조문정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통령은 6월 라디오 연설을 통해 ‘근원적 처방’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그리고 ‘중도실용’과 ‘친서민’을 표방하면서 국정의 노선을 선회하기 시작했다.
재래시장을 찾았고 입만 떼면 서민을 강조했다. 한나라당도 이 대통령의 중도실용, 친서민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해 9월 정기국회를 100일 민생국회로 규정하고 뒷받침했다. 이어 ‘8·15경축사’를 통해 선거제도와 행정개혁을 주문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정국에서는 ‘화해와 통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천명했다.
정치권의 화두는 행정구역 개편과 개헌으로 쏠렸고, 성남시와 하남시의 통합발표를 시작으로 이 대통령의 발언대로 군소시군의 자율적인 통합이 진행중이다. 노선과 정치제도에 이어 이번 개각을 통해 기존 ‘강부자 고소영 내각’으로 민심에 배치됐던 인사구도에서도 정국반전의 주도권을 장악한 셈이다.
이 대통령의 이같은 조치는 3김 이후 영호남 지역 정치구도의 혁파를 시도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혁시도보다 한발짝 더 나아간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이 대통령의 시도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현하려다 미완에 그쳤던 ‘3김시대 이후 새로운 시대정신’과 맥이 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지역·이념적 갈등과 대결의 시대를 마감하고 선의의 경쟁과 통합의 시대를 지향한다는 것이 골자다.
실제 이 대통령은 지난 3일 개각발표 직후 참모진들에게 “이번 개각의 초점은 한마디로 통합”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통합은 우리 정부의 이해관계를 떠나 우리 사회에서 관철해야 할 부분”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정운찬 총리’라는 다목적 카드를 통해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 이후로의 진화라고 하는 근원적 판바꾸기를 시도한 것이다.
◆MB식 용인술에 주목
지난 3일 개각은 이 대통령의 용인술의 결정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이제까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을 교체하라는 정치권의 인적쇄신 요구에도 “국면전환용 개각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며 버텨왔다.
그러나 이번 개각에서는 정치권의 요구대로 특임장관의 신설과 내각 및 참모진을 대거 교체하면서 이른바 ‘MB형 인사스타일’을 주목받게 했다.
이번 ‘9.3 개각’에서 입각한 정치인 3명은 모두 이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다.
임태희 노동장관, 주호영 특임장관 내정자는 지난 대선기간 각각 경선캠프 비서실장과 대선후보 비서실장을 지낸 뒤 인수위 시절에는 당선인 비서실장과 대변인을 지낸 ‘친이계’ 핵심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 내정자는 ‘친박계’로 분류되지만 인수위 시절 경제2분과위 간사를 지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장관직을 유지하고 있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올초 개각 때 행정안전부 장관에서 자리를 옮긴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은 모두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임시절부터 인연을 이어온 인사들이다.
이와 함께 지난달 31일 개편된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영전’한 윤진식 정책실장, 박형준 정무수석, 이동관 홍보수석 등도 오랜기간 이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온 측근들이며 자리를 지킨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인수위 시절부터 핵심과제를 수행하면서 두터운 신임을 얻은 바 있다.
이는 한번 기용한 인사에 대해서는 실수가 있어도 신뢰를 갖고 웬만해선 교체하지 않음으로써 로열티를 높이면서 동시에 업무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취지로 여겨진다.
이 대통령의 용인술이 빛을 발휘할지는 미지수지만 정운찬 총리 후보자와 각 부처 장관 후보자들이 넘어야할 산은 높기만하다. 지난 14일부터 시작된 인사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해야만 명실공히 검증을 거친 장관으로 거듭날 전망이다.《자세한 내용은 주간 시사뉴스 창간 21주년 360호 커버스토리에서 이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