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행정구역 개편, 땅에 선 긋기?

시사뉴스 기자  2009.11.19 08:11:11

기사프린트

정부와 한나라당이 정치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하던 '행정구역 자율통합'이 졸속으로 이뤄지면서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행정안전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구제·행정구역 개편 발언이 나온 이후 수개월간의 홍보를 거쳐 자율통합 건의서를 받은 뒤 지역 여론조사까지 실시하며 지난 10일 6곳의 통합 추진 대상지역을 발표했지만 이틀만인 12일 2곳을 통합대상에서 제외하는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모습을 보였다.
당초 발표된 지역은 경기 수원·화성·오산, 성남·하남·광주, 충북 청주·청원, 경남 창원·마산·진해 등 6곳이었으나 경남 진주·산청과 경기 안양·군포·의왕은 느닷없이 통합대상에서 제외된 것.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 정치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진주·산청과 안양·군포·의왕은 실질적으로 통합(대상)에서 제외된다"며 "두 지역은 국회의원 선거구를 변경해야 하는데 선거구 조정문제가 포함되면 국회의 선거구 확정권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실질적인 이유는 제외된 두 지역이 한나라당 주요당직자들의 지역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경기 의왕·과천이 지역구인 안상수 원내대표는 행안부의 발표가 있은 뒤 공개석상(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근 행정구역 통합을 여론조사로 정했는데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것을 가지고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행정편의주의다"고 비판했다.
그는 지난 17일 원내대책회의에서도 "행정안전부가 지금 갈팡질팡하고 있어 국회 행정구역개편 특위에서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서 법률에 의해 이것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야당에) 정기국회 내에 합의처리 되도록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행정구역 개편의 주도권은 정부가 아닌 국회, 입법부에 있음을 강조한 발언이다. 더욱이 정부의 안대로 행정통합이 이뤄질 경우 자칫 안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반토막 날 우려도 있다.
다른 한곳인 진주·산청도 신성범 원내대변인의 지역구다. 직접적인 외압여부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행정구역 개편을 주도했던 여당이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는 측면에서 의구심이 일고 있는 것이다.
행정자율통합이 결정된 지역에서도 논란은 벌어지고 있다. 경남 마산, 창원, 진해시는 통합명칭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다.
◆야당 맹공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는 지난 16일 이 문제와 관련 "전국의 행정구역을 60~70개로 통합하고 시도를 폐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면 이는 시대착오적이고 국가 미래를 외면한 정책”이라며 “지방화, 분권화 추세에 따라 앞으로는 자치단체가 세계속에서 경쟁하면서 ‘파이’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시·군을 2~3개 합친 정도는 중앙 정부의 통제 관리에 복속되는 지방정부가 되고 말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앞서 13일 우상호 민주당 대변인은 "여론조사와 다양한 여론종합을 통해 발표했던 행안부의 행정구역개편이 여당의 원내대표 지역구, 원내부대표의 지역구가 포함됐다는 이유로 이틀만에 통합대상에서 제외됐다고 한다"며 "세상에 이런 행정구역개편이 어디 있나"고 비틀었다.
또 "행정부가 고생해서 만든 개편안이 정치인의 지역구 이해관계에 따라서 마음대로 고칠 수 있는 것이냐"며 "집권당 원내대표의 전화 한 통이면 행정부가 진행하는 모든 중요한 국책사업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그는 이어 "안상수 원내대표와 해당 지역구 의원이 어떤 압력을 가하고 그 압력의 결과 행정부가 어떻게 굴복하게 되었는지, 그래서 국민들의 여론조사로 결정된 중요한 결정이 왜 이런 식으로 무산되었는지 대해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를 촉구했다.
박선영 선진당 대변인도 "철회한 내막을 들여다보면 목불인견이 따로 없다"며 "정부 방침대로 안양·군포·의왕으로 통합이 이뤄지면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의 지역구가 두 조각으로 갈라지게 되고, 진주·산청이 통합될 경우에는 같은 당 신성범 의원의 지역구 재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란다. 참으로 가관이다"고 비판했다.
박 대변인은 "장기적인 안목도, 국가설계도 없이 포퓰리즘적으로 행정구역 통폐합을 추진하는 정부도 문제지만 당정협의도 무용지물인 정부와 여당은 눈 감고 일을 하느냐"고 질타했다.
민주당은 이와 별도로 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 2010년 지방선거보다는 2014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신중하게 추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번 회기내 개편안을 처리하자는 여당의 속도전에 대한 제동이다.
최인기 민주당 지방행정체제 개편 특별위원장은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여론조사와 통합발표는 법적 근거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견수렴에 불과하다"며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큰 틀이 확정된 이후 2010년 지방선거보다는 2014년 지방선거를 목표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행안부가 500~1000명의 주민에 대해 실시한 자치단체 통합 관련 주민의견조사는 주민 대다수의 이해를 정확히 대변할 수도 없다"며 "또 법적 근거 및 법적 기속력이 없는 정부의 일방적인 의견수렴 과정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지방자치법 제4조에 의한 절차를 거쳐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면 그때 정치권이 이를 참고하여 검토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방적이고 급하게 이뤄지는 개편에는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내년 6월 지방선거 이전 통합을 목표로 기초자치단체 통합을 추진할 경우 지방의회 의견청취, 주민투표 실시, 국회에서의 입법절차 등을 거치는데 시일이 촉박하다"며 "해당 지방자치단체 지역주민간 갈등과 반목, 대립이 더욱 확산될 가능성도 높다"고 우려했다.
특히 선거관리 준비 및 유권자와 입후보자의 혼란, 지역공동체의식 형성 부족 등을 감안할 때 정부의 통합 추진은 무리하고 졸속이라고 규정했다.
◆행정구역 제대로 개편하려면
전문가들은 정부가 대상지역 6곳을 선정했다가 2곳을 제외한 것은 행정구역 개편이 잘못 접근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1994년에 단체장선거를 앞두고 했던 시·군 통합의 재현이 아니라 지방행정 체제의 재설계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세계화 시대의 경쟁을 이끌기에 현재의 취약한 광역지방행정 체계를 과감히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도쿄, 상하이, 베이징 등은 도시지역 정부의 모습을 지니고 지구도시 계층에서 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과 부산권 대도시가 경제, 정치지형의 텃밭이 되고 기초단체들의 경우 지나치게 크거나 혹은 작은 구조를 띠고 있다는 것.
미국의 경우 지방정부의 주민수가 대략 6600여명인데다 일본과 영국은 각각 6만7000명과 12만8000명이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평균 주민수가 약 21만명에 이른다.
문제는 수십만이 몰려 사는 도시의 자치단체 행정, 재정능력이 크게 차이나 지역 주민간 갈등요소로 자리잡고 있어 통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선택헌장 제도를 도입해 주민들에게 지방정부의 권력구조를 선택할 권리를 돌려줄 것과 도시권 지정제도를 도입할 것, 지방정부의 정책 관할 영역 조정과 책무성 강화를 방법으로 내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