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표류했던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문제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경북 경주시, 포항시, 영덕군과 전북 군산시 등 네 곳이 방폐장 유치 신청서를 제출함에 따라 유치전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아직 갈 길은 멀다.
방폐장 신청 마감을 하루 앞둔 지난 8월30일 전국 440여개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한 30여명의 관계자는 프레스센터 환경재단에서 핵 폐기장의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정부의 핵폐기장 선정 방식에 비민주성과 지역주민의사 수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지역갈등을 조장하는 핵 폐기장 추진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시민사회단체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시설 부지선정을 공고(2005년 6월)한 지 6개월 만에 주민투표를 최종 시한(2005년11월2일)으로 한 것은 내년 지자체 선거 등 정치일정에 맞물려 졸속 처리하려 한다며 현재의 일정은 과거 부안사태처럼 또다시 백지화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특히 주민투표가 금권, 관건 선거화 되고 있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산업자원부와 전북도 공무원들의 핵 폐기장 홍보 핸드폰 컬러링, 핵 폐기장 유치를 위한 군산시청 공무원 모임 발족, 경주시 공무원들의 핵 폐기장 관련 교육 등 중앙부처 공무원은 물론 시군구 지자체가 모두 동원 되고 핵 폐기장 유치에 필요한 교육과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또 각종 금품이 지역에서 나돌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사전부지 조사를 명목으로 현금이 오가고 있어 주민투표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민투표제는 과거 부안 사태와 같이 핵 폐기장 정책이 비민주적이고 일방적인 정책을 피하고 주민의사를 반영하겠다는 의도에서 실시됐다. 하지만 주민수용성에 과도한 초점을 맞추다보니 민주적이고 형평성 있는 주민투표 실시의 의미는 멀어져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전북 군산의 한 주민은 현재 군산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민투표 불법 사례에 대해 폭로했다. 이 주민에 따르면, 시청 내 ‘국책사업추진팀’을 만들어 시청 직원들이 추진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군산 공무원 700여명이 모여 ‘핵을 바로 알고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했는데, 공무원이 이 모임에 가입하지 않거나 활동에 빠지면 승진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또한 현재 진행중인 핵 폐기장 건설 계획은 과거 20년간 문제가 됐던 ‘지역공동체 파괴’와 ‘민-민 갈등’을 반복하고 있다는 주장되 제기됐다. 핵 폐기장 유치 찬.반에 따른 활동과 홍보 등은 국가적 차원의 핵 폐기장 건설 문제를 해당 지역의 문제로 전가하는 결과를 낳게 된 꼴이라는 것이다.
시민사회단체는 공동선언문을 통해 “안전하고 민주적인 핵 폐기물의 관리를 위한 법령 제정을 정부에 제안하고 이를 위해 정부는 일방적인 핵 폐기장 추진을 중단하고 참여와 투명성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