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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 칼럼]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이상미 기자  2013.04.01 10:4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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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사랑을 주고받기 원하는데, 이는 사랑이 넘치는 곳에 참된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장이라 일컫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하여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보면 사랑의 속성 가운데 ‘교만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는데, 교만은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시는 악이기 때문입니다.

교만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지 못하고 무시하는 것, 내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제일로 여기니 매사에 상대를 무시하고 가르치려 합니다. 보통 자신보다 못해 보이는 상대에게 나타나지만 심한 경우에는 윗사람까지도 무시하지요.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곧잘 변론으로 이어져 다툼이 생기는데 심할 경우 서로 자신이 옳다고 혈기를 내며 싸움으로 번지기까지 합니다. 잠언 13:10에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말씀했지요. 디모데후서 2:23에는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양심이 다르고 지식도 다릅니다. 살아오면서 보고 듣고 배우며 체험한 것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식 중에는 오류도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굳어지면 자신만의 ‘의’와 ‘틀’이 형성됩니다.

‘의’란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이며, 이것이 굳어지면서 ‘틀’이 됩니다. 성격이 틀이 되기도 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하나의 틀이 되기도 합니다. ‘틀’은 마치 단단한 골격과 같아서 자신만의 모습을 만들 뿐 아니라 일단 형성되면 깨지기 쉽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생각도 대개 의와 틀에서 나옵니다. 자격지심이 많은 사람은 부자가 옷깃만 여며도 ‘옷 자랑한다.’고 생각하고 누가 좀 유식한 말만 사용해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느낍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에 있다고 입력을 시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연합성회 인도차 미국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잘못된 지식임을 알았습니다. 자유의 여신상은 샌프란시스코가 아닌 뉴욕에 있지요. 그때 저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도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저마다 옳다고 주장하는 것 중에는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교만하면 자신이 틀려도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주장하다가 변론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설령 자신의 주장이 옳고 상대가 틀려도 변론하지 않습니다. 백 퍼센트의 확신이 있다 해도 만에 하나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두지요. 굳이 상대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마음에는 그만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상대가 자신보다 가난하든 배움이 적든, 힘이 약하든 진심으로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요. 설령 어린아이라 해도 그 마음을 배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어리석다’ 하십니다. 광대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생들은 모두 미미한 존재일 뿐입니다. 설령 아무리 자랑할 것이 많다 해도 이 세상은 잠시잠깐일 뿐이며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천국에서는 각 사람이 하나님 앞에 겸손히 행하고 섬긴 만큼 높은 사람이 됩니다. 야고보서 4:10에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신 대로 주님께서 높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히 자신을 낮춰 하나님 앞에 지극히 큰 자, 존귀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린도전서 13장 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