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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최규하 전 대통령, 역사의 뒤안길로....

김부삼 기자  2006.10.26 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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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단명 '비운의 대통령'이 침묵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게 됐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6일 오전 10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노무현 대통령 내외, 전두환·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국내 정·관계 주요인사, 주한 외교사절, 일반시민 등 각계 인사 2000여명의 추모객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은 오전 9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거친 뒤, 최 전 대통령과 부인 홍기 여사의 유해를 실은 영구차 2대가 영결식장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됐다. 군악대의 조악연주와 함께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명숙 국무총리의 조사로 진행됐으며 3대 종교(천주교·기독교·불교)의 종교의식, 생전영상 방영, 헌화, 조가 순으로 진행됐다.

한명숙 총리(장의위원장)는 조사를 통해 "현대사의 격랑 속에 대통령직을 맡아 혼란한 정국을 국민과 더불어 감당하셨던 고인을 보내는 마음이 한없이 무겁고 슬프다"며 "생전에 보여주신 국정 책임자로서의 태도와 평생 일관해온 자세는 우리 모두에게 역사의 큰 울림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고인이 늘 강조했던 헌신 부난(몸을 던져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의 자세대로 고인은 우리 시대 진정한 선비의 표상이었다"며"남은 우리가 생전에 희구하셨던 대한민국의 평화와 안위를 책임지고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한 총리는 "생전에 보여주신 구국헌신의 정신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로 타오를 것"이라며 "온 국민과 더불어 삼가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1시4분 3군 조총대원 7명이 21발을 1분간 발사하는 조총의식이 끝나자 최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량은 11시 25분 영결실장을 떠나 경복궁 동문을 빠져나와 동십자각→광화문→세종로터리→남대문→서울역→삼각지→반포대교→경부고속도를 거쳐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다.

한편 역대 최단명 '비운의 대통령'(제10대)가운데 최고령이었던 최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자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발견됐다(향년 88세) 1919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최 전 대통령은 경기고와 도쿄고등사범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으며 1945년 서울대학 사범대학 교수에 취임했다가 공직에 투신했다.

1951년 농림부 농지관리국장을 거쳐 외무부 통상국장이 되면서 외교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1952년 주일대표부 총영사, 1959년 중리 대표부 공사로 승진, 그 해 외무부차관이 됐고, 1963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외교담당 고문이 되었으며, 1964년 말레이시아 대사, 1967년 외무부 장관에 발탁됐다.(제 15대). 1971년 대통령 외교담당 특보로 취임, 1972년에는 남북조절위원회 위원이되 평양에 다녀왔고 1975년 국무총리에 기용(제 12대)돼 1979년 10·26사건 이후 대통령권한대행을 거쳐, 그 해 제10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1980년에는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1981년 4월부터 국정자문회의 의장으로 활약했다.

이후1991년 이후부터 민족사 바로찾기 국민회의 의장을 지내면서 재야에서 활동해왔으며 국제회의 참석만도 1967년 제22차 유엔총회 수석대표를 비롯해 30여 회에 이른다. 그밖에 서훈으로 1970년 일등수교훈장, 1971년 수교훈장 광화 대장, 1979년 무궁화대훈장, 198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등 국내훈장과 타이정부로부터 받은 백상최고훈장 기사대장 등 10여 종의 외국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