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다 당내 초.재선 및 민주당, 국민중심당 의원 일부가 중도세력을 아우르는 연대방안을 구체화하고 나서 범여권 통합신당 논의의 새로운 변수로 급부상하고 있다. 중도신당 구상은 임종인, 이계안, 최재천 의원 등의 독자탈당과는 달리 일정한 방향성과 목표를 지닌 구체화된 신당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세불리기에 성공한다면 여권의 유력한 대안세력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문제는 전당대회 이전 삼분 가능성이다. 내달 14일로 잡혀 있는 전당대회에 앞서 오는 29일 열리는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당헌 개정이 재차 무산될 경우 통합신당파의 무더기 탈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 경우 열린우리당은 세 갈래로 급속히 쪼개질 수 있다.
◆대거 탈당사태는 삼분 가속화
이목희 전략기획위원장은 22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거 탈당 사태가 오면 우리당은 삼분될 것으로 본다”면서 “소수가 우리당에 잔류하고, 나가는 사람 가운데 개혁적 색채가 강한 분과 보수적 색채가 강한 분들이 함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대거 탈당이란 사수파를 제외한 대다수가 나간다는 의미”라며 “중앙위 개최 이전에 일부 의원이 탈당하고, 중앙위에서 당헌 개정안이 부결 무산되면 대거 탈당을 막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당파는 중도, 보수와 개혁 성향으로 나뉘어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전자는 일단 민주당으로 대변되는 호남 세력과 대선 불출마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고건 전 총리 진영, 각계 전문가 그룹을 묶는 통합을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후자는 개혁, 진보 성향의 시민사회단체와 연계, 개혁정당 창당을 모색할 것으로 전망된다.
두 진영 모두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과 박원순 변호사 등 외곽 세력과의 통합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여기에 보수 성향이 강한 의원 가운데 일부가 전격 한나라당행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에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관료 및 지방자치단체장 출신 열린우리당 의원 10여명이 한나라당 입당을 타진했다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한나라당은 ‘철새’는 받지 않는다는 논리를 세우고 있지만 대선을 앞두고 백기들고 당으로 흡수되겠다는 충원군들을 마다할리 없는 눈치다.
탈당 시기 역시 세 차례로 나뉠 개연성이 크다. 염동연 의원 등 선도탈당파는 중앙위 개최 이전인 이번주 내 탈당을 결행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70~80명으로 추정되는 다수는 중앙위 결과와 전대 개최 여부를 지켜본 뒤 탈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당직 등을 맡고 있는 신당파 의원들은 마지막 대열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선도탈당파 수가 의외로 많을 경우 열린우리당의 붕괴 속도는 그만큼 빨라진다.
통합신당파의 리더를 누가 맡느냐도 관심사다. 이미 탈당 의사를 밝힌 정동영 전 의장과 현 지도부를 이끌고 있는 김근태 의장이 대열에 합류할 경우 탈당파는 조직적인 세력화가 초기에 가능하다.
여권 대선 예비 후보인 두 사람은 열린우리당의 양대 지분을 점하고 있어 파괴력도 그만큼 크다. 하지만 통합파 내에서도 이들의 2선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잖아 두 사람이 전면에 나서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만만치 않다.
◆결국 갈길 가나?
양대 지분을 점하고 있는 당내 최대주주가 과연 신당합의에 온전히 응할지도 문제다. 김근태 의장과 정동영 전 의장의 관계가 심상치 않게 흐르고 있기 때문. 지난해 말 ‘원칙 있는 국민의 신당’ 추진에 전격 합의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등을 돌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정 전 의장은 탈당 불사를 선언하며 대권 행보에 본격 가세하고 있는 반면, 김 의장은 “리더십 부재” 비판 속에서도 역으로 탈당 발언을 강하게 몰아세우며 지도부를 지키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지난 21일 팬클럽인 ‘정통들(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출범식에 앞서 29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키로 한 비대위의 결정을 “마지막 비상구”라며 “결단을 각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며 탈당을 시사했다. 23일에는 인혁당 재건위 선고공판에 참여, 자신의 진보적 이미지를 강화하기도 했다.
정 전 의장의 기자회견이 있은 직후 김 의장은 “어려울수록 큰길을 가야 합니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현 시점에서 탈당을 거론하거나 직무를 방기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자가 취할 태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마치 대선 행보에 닻을 올린 정 전 의장을 겨낭한 것으로 보일 만큼 그 시점과 논조가 미묘했다.
이들의 엇갈린 행보에 대해 여권 인사들은 “이미 예견돼 있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장 신당합의 다음날 정 전 의장이 “노무현 대통령과의 결별이 아니다”고 하자 김 의장 측은 “딴소리하고 있다”며 균열 움직임을 보였다.
실제 열린우리당 창당 후 3년간 최대 계보를 이끈 두 사람이 한 번도 손을 맞잡은 적은 없다. 이념상 정 전 의장이 실용을 표방한 반면, 김 의장은 개혁을 주창해 왔다.
‘공격형’(정동영)과 ‘수비형’(김근태)으로 정반대인 정치 스타일도 두 사람이 함께 가기 힘든 이유로 꼽힌다. 2003년 민주당 분당사태 때도 정 전 의장은 이른바 ‘천, 신, 정’의 깃발 아래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이 됐지만, 김 의장은 분열은 안된다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권후보 물망에 오르는 여권의 두 지도자가 합의문에 잉크도 채 마르기 전 국민과의 약속을 깨뜨리는 듯한 행보를 보이는 것에 대해 비난이 크다.
벌써부터 정 전 의장은 실용노선 신당, 김 의장은 개혁노선 신당을 만들어 갈라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당의 붕괴 속에 한 배를 타겠다던 두 사람의 맹세가 지켜질지 아니면 ‘오월동주(吳越同舟)’에 그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