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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교동의 봄' 다시 오나?

김부삼 기자  2007.02.10 10: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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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자 '국민의 정부' 최고 실세였던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과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9일 발표된 정부의 특별 사면으로 기나긴 법정소송과 수감생활을 끝내고 '햇빛 쏟아지는 세상밖' 으로 다시 섰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현대 비자금과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영어의 몸이 됐다가 이날 특별사면 조치로 동시에 '긴 터널' 을 빠져나왔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비서관은"늦었지만 이번 사면에 박지원, 권노갑, 김홍일씨 등이 사면대상에 포함돼 다행"이라며 "김 전 대통령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권노갑 전 고문
동교동계의 맏형으로 활동했던 권노갑 전 고문도 이번 사면 조처로 오는 12일 수감중인 의정부 구치소 문을 나선다. 'DJ의 분신'으로 알려진 그는 김 전 대통령을 40여년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3차례 구속 수감되는 등 순탄치 않은 행보를 걸어왔다.
그는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2월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으로부터 2억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평생 고대해왔던 정권교체의 순간을 옥중에서 지켜봐야 했고 이듬해 8.15특사로 풀려난 뒤에도 2002년 5월에는 진승현씨로부터 5천만원을 받은 혐의로 다시 구속됐다.
그는 이듬해 7월 진승현 사건에 대한 항소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하는 듯 했으나 한달 여만에 현대비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긴급체포 돼 또 한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77살의 고령인 그는 당뇨 합병증을 앓아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로 알려졌다. 그 역시 사면만 됐을 뿐 복권은 되지 않았다.

◆ 박지원 전 실장
박 전 실장은 야당 시절부터 촌철살인의 대변인으로 이름을 날렸고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대변인과 문화관광부 장관, 청와대 비서실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김 전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해온 실세 중의 실세였다.
그는 2003년 6월 대북송금 사건을 맡은 송두환 특검팀에 긴급체포돼 2심에서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뇌물수수, 알선수재 등 혐의로 징역 12년과 추징금 147억5천200여 만원을 선고받아 자칫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야 할 위기에 몰렸다.
그는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지병인 녹내장이 악화돼 한때 실명 위기에 처했고 이같은 사정이 감안돼 지난해 11월3일 치료를 위해 3개월간의 형 집행정지 결정으로 석방됐다.

올해로 65세가 된 그는"바람에 진 꽃이 햇볕에 다시 필 것입니다. 봄은 또 오고 있습니다"라고 사면 소감을 밝혔다. 그는 구속 당시 조지훈의 시 '낙화(花)'의 첫 구절인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라는 시구로 심경을 밝힌 바 있다. 한때 '왕수석'으로 불리며 권력의 정점에 있던 그는 권력의 무상함을 뜻하는'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표현을"정권을 잡으면 적어도 10년은 간다"고 역설적으로 해석했지만, 참여정부 출범 4개월만인 2003년 6월 구속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한편 이번 특별사면에 포함된 정치인 중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들이다.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김봉호·김홍일 의원 등이 사면된 것이다. 이에 따라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동교동계가 활발한 정치적 행보를 통해 호남 민심과 범여권 세력 규합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성급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범여권 일각에서도 현재의 비관적 상황을 빗대 "노무현 대통령의 힘이 빠지면 범 여권이 기댈 언덕은 김대중 전 대통령 뿐"이라는 시나리오를 내놓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