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박철호 기자] 평생 단 한 번밖에 받을 수 없는 상,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값진 상인지도 모른다.
월드컵에 처음 출전한 선수들 중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주어지는 '최우수신인상' 얘기다. 공식 명칭은 '현대 영플레이어 어워드'. 국내기업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상이다.
지난 2010남아공월드컵에서는 독일 공격수 토마스 뮐러(25)가 5골로 '골든슈(득점왕)'에 오른 여세를 몰아 이 상까지 거머쥐며 2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월드컵의 신인상을 브라질의 네이마르(22·FC바르셀로나)·콜롬비아의 하메스 로드리게스(23·AS모나코) 등 '신성'들이 다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의 신인상은 1993년 1월1일 이후 출생자만 노려볼 수 있다. 각각 1992년생, 1991년생인 두 사람은 해당되지 않는다.
이 상은 FIFA 기술연구그룹(TSG)이 해당 나이대의 선수들을 모두 후보에 올려 최종후보 3명을 가려내고 이들 중 나이, 특출난 기술, 신선한 플레이 스타일, 창의성, 전술적 성숙도, 대중성, 페어플레이 등을 모두 고려해 단 한 사람을 수상자로 선정하게 된다.
▲우승후보로 급부상한 네덜란드, 혜성처럼 등장한 멤피스 데파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네덜란드의 신예 공격수 멤피스 데파이(20·PSV에인트호벤)가 꼽힌다. 지금까지의 개인성적도 좋았지만, 네덜란드가 4강에 오르면서 8강에서 이미 탈락한 경쟁자들과 비교해 2경기(4강전·결승 또는 3·4위전)를 더 치르게 돼 한결 유리해졌다.
데파이는 6월19일(한국시간) 조별리그 B조 2차 호주전(3-2 승)에서 후반 23분 결승골을 터뜨려 팀을 승리로 이끈 데 이어 6월24일 3차 칠레전(2-0 승)에서는 후반 추가시간 쐐기골을 성공해 2경기 연속골 기록을 작성했다. 호주전에서는 도움 1개도 기록했다.
하지만 이후 토너먼트 2경기에서는 내리 침묵했다. 후반 교체 투입됐던 6월30일 16강 멕시코전(2-1 승)에서는 두 차례 슈팅을 날렸으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29·아작시오)에게 막혔고, 선발 출전했던 6일 8강 코스타리카전(0-0 승부차기 4-3 승)에서는 한 차례 슈팅을 날렸으나 골키퍼 케일러 나바스(28·레반테)에게 차단됐다. 이번 월드컵 최고의 수문장들이 차례로 그를 울린 셈이다.
2경기 연속으로 골 맛을 보지 못했지만 각 3골의 아리언 로번(30·바이에른 뮌헨)과 로빈 판 페르시(31·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이어 팀에서 두 번째로 많은 골을 기록 중일 정도로 '한 방'이 있는 만큼 10일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4강 아르헨티나전에서 골 맛을 볼수 있을 지 주목된다.
브라질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을 대상으로 경기 내용을 측정해서 매기는 '캐스트롤 인덱스(Castrol Index)'에서 6.92점에 그치고 있는 점도 반드시 해결해야 최우수신인상에 더욱 다가설 수 있다.
▲프랑스가 4강에 올랐다면 따놓은 당상이었는데…폴 포그바
데파이와 쌍벽을 이루는 선수가 프랑스의 신예 미드필더 폴 포그바(21·유벤투스)다.
혜성처럼 등장한 네덜란드의 데파이와 달리 포그바는 팀의 주축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신체 조건(키 188㎝·몸무게 80㎏)부터 테크닉·축구 IQ 등 모든 면에서 출중한데다 이미 지난해 프랑스의 20세 이하(U-20) 월드컵 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해 검증을 마쳤기 때문이다.
포그바는 6월16일 조별리그 E조 1차 온두라스전(3-0 승)에 선발 출전, 전반 43분 페널티킥을 따냈다. '주포' 카림 벤제마(27·레알 마드리드)가 키커로 나서 이를 여유있게 성공해 3-0 승리의 기틀을 잡을 수 있었다. 6월21일 2차 스위스전(5-2 승)에서는 후반 교체투입돼 벤제마의 골을 도왔다.
6월26일 3차 에콰도르전(0-0 무)에는 선발 출전해 6차례나 슈팅을 날리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끝내 골을 기록하지 못해 아쉬움을 낳았다.
하지만 '포그바의 날'은 따로 준비돼 있었다. 1일 나이지리아와의 16강전(2-0 승)에 선발 출전한 그는 전반에 슈팅 2개를 기록하며 예열한 뒤,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후반 34분 마침내 득점포를 가동해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프랑스의 두 번째 득점이 후반 추가시간 나이지리아의 자책골로 만들어진 만큼 이날 포그바는 프랑스의 양대 공격수 벤제마와 올리비에 지루(28·아스날)도 못한 값진 득점을 해낸 것이다. 이 경기에서 포그바는 국제축구연맹(FIFA)로부터 경기 최우수선수(MOM)로 꼽혔다.
그러나 5일 독일과의 8강전(0-1 패)에 선발출전했으나 슈팅 한 번 날려보지 못한 채 팀 패배를 지켜봐야만 했다.
4강행 좌절은 포그바 개인으로서도 데파이에 비해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다만 신인상 후보로 거론되는 선수 중 현재까지 유일한 FIFA MOM인 것, 캐스트롤 인덱스에서 무려 9.16점을 기록한 것 등이 데파이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주목된다.
▲벨기에가 낳은 '신데렐라' 디보크 오리기
벨기에의 공격수 디보크 오리기(19·릴)와 로멜루 루카쿠(21·에버턴)도 후보에 이름을 올릴만한 '젊은 피'들이다.
오리기는 주축 공격수 크리스티안 벤테케(24·애스턴빌라)가 부상으로 낙마한 뒤 그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깜짝 발탁됐다.
월드컵 개막 전 오리기는 백업 멤버로 역할이 제한됐다, 하지만, 벤테케의 빈 자리를 메울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루카쿠가 6월18일 조별리그 1차 알제리전(2-1 승)과 6월23일 2차 러시아전(1-0 승)에서 모두 부진하면서 두 경기에 각각 후반에 교체 투입됐다가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러시아전 후반 12분에 루카쿠를 대신해 출전한 오리기는 후반 43분 0-0의 팽팽한 균형을 깨는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작렬, 벨기에에 16강 티켓을 안겼다.
오리기는 6월23일 3차 한국전(1-0 승)에도 후반 15분 드리스 메르텐스(27·나폴리)와 교체투입돼 3차례 슈팅을 날리며 한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도 했다. 이날 루카쿠는 교체멤버에 이름을 올렸으나 출전하지 못해 팀 내 경쟁에서 오리기가 앞선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토너먼트 2경기에서는 신예로서의 경험 부족을 드러내 아쉬움을 남겼다.
2일 미국과의 16강전(2-1 승)에서 꿈에 그리던 선발 출전 기회를 꿰찬 오리기는 전·후반 90분 동안 부지런히 뛰며 5차례 슈팅을 날렸지만 골키퍼 팀 하워드(35·에버턴)를 넘어서지 못한 채 연장 전반 시작과 함께 루카쿠와 교체 아웃됐다.
오리기는 5일 8강 아르헨티나전(0-1 패)에 다시 선발 출전하며 마르크 빌모츠(45) 감독의 믿음과 지지를 재확인했으나 역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후반 14분 루카쿠와 교체돼 나왔다.
▲벨기에를 울리고 웃긴 '미운 오리새끼' 로멜로 루카쿠
루카쿠는 프랑스의 포그바가 그랬던 것처럼 벨기에의 주축 공격수로 처음부터 기대를 모았다.
키 190㎝, 몸무게 100㎏의 체격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피지컬과 제공권 장악력 등으로 '제2의 드로그바'로 불리며 어린 나이에 이미 소속팀의 간판 공격수로 자리잡은 덕이다. 벤케케가 낙마하면서 그의 두 발은 더욱 무거워졌다.
부담감이 너무 컸던 것일까. 루카쿠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오히려 백업멤버인 오리기에게 밀렸다.
졸지에 미운 오리새끼로 전락한 루카쿠는 오리기에게 선발 출전 기회를 내주고 간신히 연장전에 교체출전한 미국전에서 아름다운 고니로 다시 태어났다. 0-0으로 팽팽하게 맞서던 연장 전반 3분 케빈 더브라위너(23·볼프스부르크)의 골을 도운 뒤 연장 전반 15분에는 직접 결승골까지 터뜨렸다.
비록 FIFA MOM은 16차례 슈퍼세이브를 기록한 미국의 골키퍼 하워드에게 넘겨줘야 했지만 루카쿠가 이날 하워드를 제외한 양 팀 선수들 중 최고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다.
루카쿠는 아르헨티나전(0-1 패)에서 다시 오리기에게 선발 출전 기회를 내준 뒤 후반 14분에 교체 투입돼 빌모츠 감독의 '신의 한 수' 재현을 노렸으나 슈팅 한 개를 날리는 데 그쳐 팀 패배를 막지 못했다.
이날 벨기에가 4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오리기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루카쿠의 '미운 오리새끼' 이야기도 막을 내리게 됐다.
하지만 캐스트롤 인덱스에서 오리기는 7.34점, 루카쿠는 7.72점을 각각 기록한 만큼 후회없는 데뷔 무대를 가졌을 듯하다.
▲미국의 '벼락스타' 줄리언 그린
루카쿠를 고니로 재탄생시켰던 벨기에와 미국의 16강전은 '벼락스타'도 낳았다. 미국의 미드필더 줄리언 그린(19· 바이에른 뮌헨)이다.
스무살이 갓 넘은 루카쿠가 연장 전반에 투입돼 두 골을 만들어낸 데 자극을 받은 것인지 위르겐 클린스만(50) 미국 감독은 연장 후반 루카쿠보다 한 살 더 어린 그린을 집어넣었다. 소속팀 2군에서 뛰고 독일 분데스리가에서는 제대로 뛰어보지 못한 그린은 월드컵 데뷔전이었던 이날 투입 직후인 연장 후반 1분 가볍게 골을 터뜨렸다. A매치 데뷔골이자 월드컵 데뷔골이다.
그것도 아르헨티나의 '축구천재' 리오넬 메시(27·FC바르셀로나)도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물론 8강전에서 끝내 함락하지 못한 벨기에의 골키퍼 티보 쿠르트아(22·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였다. 조별리그 3경기는 물론 미국전 전·후반과 연장 전반까지 페널티킥로 1골(H조 1차 알제리전)을 내준 것이 전부였던 쿠르트아는 이 천둥 벌거숭이 앞에 속절 없이 무너졌다.
미국이 이날 벨기에에 무릎을 꿇으면서 그린은 더 이상 월드컵 무대에서 뛰지 못하게 됐다. 이때문에 캐스트롤 인덱스에서는 5.28점에 머물렀다. 최우수신인상 후보에는 오를 수 있지만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그린(1996년 6월6일생)은 벨기에의 오리기(1996년 4월18일생)보다 생일이 늦어 이번 월드컵 최연소 골 기록을 다시 쓰는 겹경사도 누리게 돼 수상 여부를 떠나 아쉬움 없이 월드컵을 즐긴 것 만큼은 틀림 없다.
▲신인상 못 받으면 슈퍼스타 되면 되지
한편 질레트가 후원했던 2006독일월드컵 신인상은 3골을 기록한 독일의 루카스 포돌스키(29·아스날)가 챙겨갔다.
당시 월드컵 무대를 처음 밟았던 메시와 포르투갈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9·레알 마드리드)는 각각 1골과 2골(페널티킥골 1골 포함)에 그치며 생애 단 한 번 뿐인 기쁨을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현시점의 슈퍼스타는 포돌스키가 아닌 메시와 호날두다. 신인상이 반드시 선수의 금빛 찬란한 미래를 보장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