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감정평가비용을 가로채기 위해 감정평가사, 건물 매입 희망자, 감정평가원 직원, 부동산중개소 직원 등으로 전화 목소리를 바꿔가며'1인 4역'을 소화하는 성대모사 능력으로 억대의 부동산 중개 사기를 저지른 30대와 그 일당이 검찰에 기소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부장검사 서범정)에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모씨(31)는 또 다른 김모(26).엄모씨(35) 등 3명과 함께 부동산을 비싼 값에 팔기 위해서는 감정평가비용이 필요하다고 속이는 수법으로 사기행각을 벌이기로 공모했다.
28일 검찰에 따르면 부동산 관련 일을 한 적이 있는 실업자 김모씨(31)는 지난해 초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지자 '한탕' 을 해보려는 구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그는 '경력'을 살려 부동산 사기를 저질러 보기로 마음먹고 서울 강북의 한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빌렸다. 인터넷을 통해 '대포폰'을 구입하고 '대포통장' 까지 마련했다.
김씨는 우선 서울 강남지역 공인중개사에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거짓말해 이씨가 소유한 경시 화성시 태안읍 건물을 매도할 생각이 있는지 알아 볼 것을 엄씨에게 지시했다. 매도 의사를 확인한 김씨는 곧바로 공인중개사 사장을 사칭,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일산 성형외과 의사가 그 건물을 매입하고 싶어하는데 85억원의 감정평가가 있어야 90억원에 팔 수 있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감정평가원을 소개해 주겠다"며 050으로 시작되는 전화번호를 소개해줬다. 그러나 이씨가 감정평가원으로 알고 전화한 번호는 김씨의 또 다른 대포폰이었다.
예상대로 이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오자, 김씨는 목소리를 바꿔 "감정평가원이다. 사장님 바꿔 드리겠다"고 말한 뒤, 또 다시 다른 목소리로 사장행세를 하며 "최대 85억원까지 감정평가가 나오니 비용을 송금하라"고 거짓말해 25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튿날 이씨의 전화를 받은 김씨는 다시 부동산 업자 목소리로 "감정평가서를 받으려면 3천만원이 필요한데 절반은 우리가 부담하겠다"고 속여 1천500만원을 또 받았다.
범행이 생각보다 쉽게 성공하자, 김씨는 이번에는 매입자인 의사행세를 하며 피해자의 안심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김씨는 이씨와 전화에서 "지금 일산에서 건물을 매입한다는 의사를 만났다. 전화를 바꿔 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가 말한 의사는 다름 아닌, 목소리를 바꾼 자기 자신.
의사가 된 김씨는 "좋은 부동산을 매입하게 돼 고맙게 생각한다. 조만간 총 매매대금 90억원에 계약할 테니 감정서를 지참해 달라"며 이씨를 믿게 만든 뒤 다시 공인중개사 사장으로 돌아와 인장을 찍는 비용 2000만원을 송금 받아 가로챘다.
이 같은 범행으로 김씨 일당이 편취한 돈은 3750만원. 검찰은 이들이 이씨 외에도 4명에게 비슷한 수법으로 사기 짓을 벌여 모두 1억8천여만원을 받아 챙겼다고 전했다. 검찰은 이날 김씨와 공범 2명을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전화번호부에서 피해자들을 물색하는 역할을 했던 또 다른 공범 김모씨를 불구속 기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