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끝없이 한계에 도전해왔고, 역사는 바로 이 '극복의 순간'들을 축으로 이루어져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과학문명의 발전이 불가능했을 것이며, 사진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세계적 대중문화인 영상예술 또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취약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통증 속에서 수술을 해야 했고, 항생제가 없을 때는 수술 후 대다수가 감염으로 숨지기도 했다. 결정적 발명은 이렇게 역사를 뒤바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1999년 4월 개발된 글리벡 또한 그런 존재다.
분자적으로 설계된 최초의 치료법
만성골수성백혈병에 탁월한 효과가 입증된 기적의 신약 글리벡은 암 세포를 겨냥하도록 분자적으로 설계된 최초의 약이다. 몇 십 년 동안 암의 치료법은 수술로 제거하는 방법이나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러한 치료는 정상적인 세포까지도 공격해 환자들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반면 글리벡은 암의 원인 물질을 겨냥하고 오작동을 바로잡는 '설계된 약'이기 때문에 건강한 정상 세포는 얌전히 남아 있게 된다. 분자 단위에서 치료하는 글리벡의 탄생은 의학사의 획기적 사건이었다.
글리벡은 사회적으로도 이슈를 몰고 왔다. 글리벡의 효과가 알려지면서 임상 시험 단계에서부터 환자들의 투약 요구가 넘쳐났다. 환자들의 강력한 요구는 노바티스사를 비상 체제에 돌입하도록 까지 만들었다. 글리벡은 환자 주권의 획을 그은 약으로 기록됐다. 물론 비싼 약값과 의료보험 적용 범위 등 글리벡을 둘러싼 논란도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바젤라 회장은 글리벡은 환자가 별로 없는 시장을 위해 만들어진 약임에도 기존 항암 치료제와 비슷한 수준의 가격이며, 입원 기간과 의료비 면에서 더 경제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이 책에서 사업가로서의 경영관을 보여준다. 바젤라 회장은 '보통의 기업은 제품 판매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을 정당화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지만 제약 회사의 경우는 다르다. 전반적으로 건전한 이익을 취할 때에도 사람들은 제약 업계를 탐욕스럽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핸디캡을 극복해 대중을 설득시켜나가는 방법 또한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대중 설득의 방법을 '성공관리' '기대관리' 등의 경영 관리법으로 설명한다.
의학을 드라마처럼 풀어 쓴 '마법의 탄환'은 백혈병이라는 죽음의 병에 맞서 글리벡이라는 신약을 개발해내기까지의 성공기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획기적인 신약개발을 이루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결단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폭넓은 임상 시험, 과학자와 경영자 그리고 노동자의 의지가 빚어낸 성공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극적이다. 바젤라 회장은 글리벡이 지닌 의학적 의미, 출시까지의 긴박한 상황들 그리고 신약 개발 과정의 진짜 스타인 환자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감정들을 흥분이 가시지 않은 생생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다니엘 바젤라 지음 / 해나무 출판사 펴냄 /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