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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DJ를 업어라'… '동교동 올인'

김부삼 기자  2007.05.26 17: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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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정치사의 양대 산맥인 김대중(DJ) 전 대통령과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올해 대통령 선거에서 미칠 영향력과 파괴력은 얼마나 될까. 현 정국 상황만 보면 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 범여권 내에서 그의 후광을 얻으려는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는 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 진영은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를 중심으로 분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측 모두 "대선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행보에 따라 대선 구도가 요동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요즘 들어 김대중 전 대통령 동교동 자택의 문지방이 닳고 있다.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20일)에 이어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이 2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전 의장(26일), 김한길 중도개혁통합신당 대표(28일), 박상천 민주당 대표(29일)의 방문도 예정돼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행보를 하고 있는 이해찬 전 총리와 일본을 방문중인 한명숙 전 총리, 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 등도 예방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통합 논의가 워낙 지지부진하다보니 범여권의 정신적 지도자인 김 전 대통령의 '훈수'를 통해 물꼬를 터보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호응이라도 하듯 김 전 대통령의 메시지 또한 간단하고 분명하다.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은 25일 서울 동교동 사저로 김 전 대통령을 예방, 이달초 방북 성과를 설명하며 "다음 정부는 남북평화 공존을 이뤄내야 하며 그런 차원에서 햇볕정책을 성공적으로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세력의 분열은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고 민주개혁세력이 어떻게든 대통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김 의원의 말에 대해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살피는 게 중요하다"며 "국민은 이번 대선에서 여야 일대일 대결을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정동영 전 의장이 26일 오전 동교동 사저로 김대중(金大中) 전대통령을 예방했다. 이번 방문은 정 전 의장이 최근 출판기념회를 가진 저서 '개성에서 파리행 기차표를'을 직접 전달하고 남북평화 문제에 관한 의견을 교환하는 차원에서 마련됐지만 두 사람이 범여권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감안할 때 정치적 무게감이 크게 느껴진다.
범여권의 대통합을 적극 '훈수'중인 전직 대통령과 범여권 최대정파인 우리당의 최대지분을 가진 대선주자의 회동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번 회동에서는 범여권 통합논의의 향배를 놓고 두 사람간 상당수준의 '교감'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통합 메시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 '김심(金心. 김전대통령의 의중)'의 소재가 보다 명료히 드러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김 전대통령이 추구해온 햇볕정책 계승의 '적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려는 포석이 깔려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최근 정 전의장의 '경쟁자'로 부상한 손 전지사는 지난 21일 DJ 방문을 통해 최근 햇볕정책 계승자로서의 자리매김을 시도하며 범여권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지난 16일 김 전대통령이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이 제정한 '자유상'을 수상하는 과정에서 대학측과 김 전대통령을 오가며 일종의 '주선'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앞서 지난 20일 오후 3시 동교동 자택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지난 3박4일 동안의 방북 성과를 보고했다. 이러한 손 전 지사의 행보에 대해 정가는 범여권의 대통합의 훈수를 두면서 햇볕정책 계승자를 찾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복심에 더 가까워지려는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두 사람간 만남은 시종 '남북관계'를 주제로 한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진행됐다.
손 전 지사는 김 전 대통령이 독일 방문에서 베를린대학 자유상 수상소식과 더불어 경의선·동해선 연결식을 곁들며 "축하 드릴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그는 남북철도 연결에 대해 "대통령님의 업적"이라고 추켜세웠다. 손 전 지사는 "대통령님도 이번에 타셨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앞으로 그 열차를 타고 시베리아를 거쳐 쭉 철의 실크로드를 가셔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이 "북한이 손 전 지사에게 적극적인 자세인 것 같다"며 치켜세우자 손 전 지사는 "(제가) 북한에 벼농사 시범사업을 추진했던 일을 북측이 햇볕정책을 구체적으로 발전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 같다"고 화답하면서 화기애해한 분위기를 연출했다는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이에따라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햇볕정책' 계승을 자처하는 손 전 지사를 범여권 대선주자로 점찍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같은 범여권 인사들의 '동교동 예방 러시'는 복잡한 정치적 함수관계에서 이뤄지는 것이지만 공통 분모도 존재한다. 대선 국면에서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자 확고한 전통적 지지세력을 갖고 있는 DJ 후광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달 한 여론조사 결과 김 전 대통령이 범여권 후보 선출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는 의견은 45.4%인 반면, 노무현 대통령이 더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는 의견은 30.3%에 그쳐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