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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훈수정치 속내는?

김부삼 기자  2007.05.31 2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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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키' 누가 잡고 있나… '퍼즐 맞추기'

프로들의 대국에서는 엄격히 금지돼 있지만 아마추어들의 바둑·장기에서는 역시 '훈수'(訓手)가 있어야 재미가 배가된다. 白과 黑이 바둑을 두고 있다. 이미 필승지국(必勝之局)의 형세를 굳힌 白이 "바둑두는 사람 어디갔나"라고 큰소리치며 黑에게 항서(降書)를 쓰라고 채근한다. 이때 구경꾼의 한사람인 사람이 "여차저차 두면 되겠구먼"이라고 훈수한다. 판세는 돌연 역전돼 이번에는 黑이 휘파람을 불고 白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白의 성격이 다혈질일 경우 '훈수'둔 사람과 멱살잡이를 할수도 있는 상황이다. 뺨을 맞아가면서도 하는게 '훈수'라고 한다. 이처럼 '훈수'가 매력적인 까닭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새삼 확인하고 우월한 기량을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정치권에 '훈수 정치' 논란이 빚어지고 있다. 이른바 범여권의 대선주자들이 자신의 서울 동교동 자택에 찾아올 때마다 범여권의 통합과 단일후보를 주문하는 등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온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훈수'의 수위를 점차 높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민심이반에 따른 친노그룹의 고립과 열린우리당의 2차 붕괴, 민주당 중심의 통합론이 한꺼번에 이슈로 불거지면서 범여권의 정계개편 논의는 천차만별로 갈리고 있다.
먼저 최근 김혁규, 이해찬 의원 등 친노그룹을 이끄는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 잇따라 동교동을 방문하면서 노-연대설이 범여권 전반에 흐르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이해찬 전 총리와의 만남에서 "나와 노 대통령이 손잡으면 못할 게 뭐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고, 실제로도 친노세력을 포함한 대통합론을 펼치면서 큰 팔을 벌리고 있다.
DJ의 의중이 대통합에 기울어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친노그룹을 제외한 소통합을 주장하고 있는 민주당 박상천 대표로서는 갈등설에 봉착해 있는 모습이며, 이에 따른 불협화음도 불거지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이 코앞에 닥친 소속 의원들의 제2차 탈당 예고도 가뜩이나 범여권 구심에 동력을 잃은 열린우리당으로서 고민이 아닐 수 없는 것. 이런 가운데 노 대통령은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정계개편이었다"고 말하고 있고, DJ는 대선정국을 앞두고 친노그룹과 민주당, 비 한나라당 세력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훈수를 두고 나서 향후 범여권의 향배가 주목된다.
여기다 한나라당을 탈당해 독자세력화를 꾀하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지사도 동교동을 드나들며 담금질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범여권의 정계개편 완성작에 궁금증이 더해지고 있다.
◆대선승리 '키' '노-DJ' 연대 성사가능성은?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DJ 연대론'은 실재할까. DJ의 훈수정치가 가동된 가운데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범여권 대통합과 관련해 자신의 활동공간을 최대한 넓히면서 한편으로 차기 대선 고지를 점하기 위해 뛰고 있는 것이다.
이 전 총리는 30일 오후 김 전 대통령과 만났다. 이날 만남에 대해 이 전 총리 진영은 "방미 결과를 전하기 위한 자리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예상대로 두 사람은 범여권 대통합에 대한 견해를 주고받았다. 정가는 이들의 대화를 주목했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이 전 총리. 그는 "대통합 신당의 큰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며 "6월 10일을 전후해 정치권 밖의 시민사회 세력들과 새로운 국면을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통합의 전망이 밝다고 말한 셈이다.
특히 일부 탈당을 결의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6월 15일을 D-DAY로 잡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전 총리의 연대시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뒤이어 그는 "6월까지는 대통합 신당 추진과 통합에 대한 협상을 마무리짓고 7월 중순까지 창당절차를 매듭지어야 8월부터 경선에 들어갈 수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주도적 역할로 범여권 대통합에 기여하겠다고 전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 DJ는 "역대 대선에서는 후보가 먼저 부각되고 그를 중심으로 통합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당이 중심이 돼 대통합 정당을 만들어내고, 그 당에서 후보를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겠다"며 통합의 방향을 제시했다.
이와 동시에 "국민이 걱정과 실망을 넘어 체념에 이를 수 있다"며 "이 전 총리가 책임지고 대통합을 잘 해나가라"라고 덧붙였다. DJ가 이 전 총리에게 힘을 실어줬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를 지켜본 정가 인사 중 다수는 '노-DJ 연대론'을 떠올렸다.
정치권 주변에서 "이날을 기점으로 이 전 총리가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 사이에서 가교역을 맡는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가 양측을 오가며 범여권 대통합은 물론, 정권 재창출 작업에 본격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다.
이 전 총리는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교육부장관을 역임할 정도로 김 전 대통령과 각별한 사이다. DJ를 통해 정계를 입문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또한 현 정부에서 총리로 발탁될 만큼 노 대통령과도 매우 가깝다. 이처럼 그가 양측과 두루 친분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 때문에 이런 관측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한 범여권 인사는 "김 전 대통령과 노 대통령은 정치고수인 까닭에 말이 없어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라면서 "이것을 실현해야 하는 시점에서 구체적 그림을 그려줄 인물을 필요로 하고 있을 것이다. 이 전 총리를 그 적임자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친노측 인사들 또한 이러한 시각에 동의한다. 참여정부가 국민의 정부를 계승한 까닭에 노-DJ 연대는 충분히 가능하며, 이에 이 전 총리가 일정한 역할을 담당할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전망이 현실화될 경우 그 결과가 이해찬 대세론에 어떤 영향을 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친노측 한병도 의원은 "이 전 총리는 기존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때 긍정적 면을 보여줬다. 이에 따른 기대심리가 이번에도 작용하고 있다"며 "열린우리당의 인재인 만큼 대통합에 기여한다면 (대선에서) 한몫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이 전 총리가 노 대통령과 DJ를 도와서 대통합을 성사시킬 경우 그의 정치적 위상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높아질 것이다"라면서 "대통합 과정에서의 역할이 향후 정치행보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만큼 그의 활동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전 총리는 어찌됐든 이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냈고, 실세총리로 불리며 막강한 파워를 과시해왔다. 또 친노그룹의 좌장이라 해도 모방할 만큼 친노그룹 내 세력층이 두텁다.
김 전 대통령도 부정적이지 않다. 실제 김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이 전 총리와의 만남에서도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손을 잡으면 못할 게 뭐 있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친노그룹은 김 전 대통령이 전날 박상천 민주당 대표에게 "배척하지 말라"고 말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대통합을 추진하는 지도부와 친노그룹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이 전 총리가 내달 초 국회 인근에 대선캠프를 차릴 것으로 알려져 정가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여기서 이 전 총리는 친노성향 386의원들의 지원을 바탕으로 해 차기 대권을 겨냥한 행보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캠프에 참여할 인사로는 김형주, 백원우, 윤호중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으며, 원외 인사로는 정태호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김현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함께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권 일부에서는 이 전 총리가 한반도 평화란 화두에 좀더 집중하면서 7월경 출마선언을 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통권308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