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사건으로 한국경찰이 도마위에 올랐다. 검찰은 김 회장의 늑장수사 의혹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경찰간부들에 대한 소환조사에 들어갔고, 곧 줄소환을 앞두고 있다. 수사도 수사지만 수사권 독립을 앞둔 시점에서 한화그룹 측과 이택순 경찰청장의 거짓말, 최기문 전 경찰청장의 청탁성 로비의혹 등이 불거지면 경찰 위상에 치명적 타격이 있는 것. 여기다 이 청장에 대한 도덕성을 요구하며 경찰내부가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가 이를 비호하고 나서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는 데다 이 청장 또한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밝히면서 자리에 급급하고 있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이 사건을 계기로 퇴직공직자의 이해충돌행위를 제한하고 퇴직 후 취업제한제도를 강화하는 내용의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고 나서는 등 경찰의 부도덕성이 집중 부각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택순의 칩거
이택순 경찰청장의 '칩거'가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은 4일 경찰청장 주재 정례브리핑을 2주 연속 취소했다. 경찰청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보복폭행 사건의 수사지연 경위와 은폐의혹에 대한 수사를 검찰에 의뢰한 지난달 25일 이후 정례브리핑을 열지 않고 있다.
이동선 경찰청 홍보관리관은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기자들을 만나면 불필요한 질문 공세에 시달릴 수 있어 취소를 건의했다"며 "조사가 마무리되면 아마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례브리핑은 한 주간의 경찰 현안에 대해 경찰청 간부들과 기자들이 질의 응답하는 자리다. 그간 해외출장 등 긴급한 일정이 아닌 이상 정례브리핑이 취소되지 않았고 김회장 폭행사건에 대한 각종 의혹이 불거진 상황에서도 정례브리핑은 계속 열렸다.
이 청장은 지난주 모든 외부행사에 불참한 바 있다. 지난주 '교통사고줄이기운동 범국민대회'와 '소년범 선도 치안대책추진 국제세미나' 축사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강희락 경찰청 차장이 대신 나갔다. 지난달 29일에는 본관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는 기자들을 피해 본관 뒷문에서 차를 타고 퇴근을 했다. 평소 '소심담대(小心膽大)'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이 청장에게 '담대'는 간데 없고 '소심'만 남았다는 평이 나온다.
이 청장이 청와대의 신임을 등에 업고 청장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 '레임덕'이 온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내부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경찰 수뇌부는 경찰 내부망 게시판에 사퇴의견을 올린 경찰들에 대한 특별관리를 지시하는 등 '군기잡기'에 나섰지만 '영'이 서지 않는 모양새다.
청장이 은둔생활을 할수록 일선 경찰들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 경찰청 관계자는 "죄 지은 것도 아닌데 청장이 좀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조금 잠잠해질때까지 몸을 엎드리는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이 청장을 향한 비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이 청장이 한화 보복폭행 늑장수사와 관련, 경찰총수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기는커녕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있고, 경찰 안팎에서는 사퇴 요구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것.
이런 상황에서도 이 청장은 전국경찰지휘부회의에서 퇴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지만 늑장·부실 수사로 인한 책임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고 이 청장의 버티기를 통해 드러난 경찰 내부 모습이 자중지란으로까지 비춰지고 있다.
위계질서와 명령으로 움직이는 경찰조직에서 부하들은 드러내놓고 총수를 불신임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며 경찰조직이 터덕대고 있는 것이다. 한편 청와대와 박명재 행자부 장관은 이 청장에 대해 사퇴불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힘을 실어주고 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이 청장이 칩거에 들어간 가운데 경찰청이 이 청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글을 내부 통신망에 올린 경찰관들에 대해 인사조치하는 등 특별관리하겠다는 방침을 정하자 일선 경찰들이 다시 술렁이고 있다.
청와대와 행정자치부가 이 청장 사퇴불가 뜻을 분명히 하면서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퇴진 논란도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이 청장의 칩거가 계속되고 도덕성에 이미 치명타를 입으면서 위계질서가 깨져버린 것. 1일 경찰청의 방침이 전해진 뒤에도 경찰 통신망에는 비난 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통신망에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자유발언대에 쓴 글을 문제 삼는다면 자유발언대가 아니라 '자유감시대'다", "조직을 위해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을 특별관리 한다면 개탄스럽다"는 등의 반발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는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A경찰서 박모 경위는 "조직이 다시 시끄러워지고 있다"고 일선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쓴 소리를 하는 것인데 듣기 싫다고 입을 막으면 어떻게 되겠느냐"며 "내부의 의견개진을 막는다면 조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외부로 터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해 총경급 이상 고위간부들도 "쓴 소리에 불이익 주겠다는 발상은 유치한 것"이라며 경찰청의 징계방침이 잘못된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익명을 요구한 A총경은 "글이 개인의 명예훼손이나 허위사실, 악의적 비방이라면 제재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조직발전을 위한 충정에서 의견, 주장, 수뇌부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니냐. 이를 문제 삼는 건 매우 비상식적이고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무시한 발상이다"라고 말했고 이어 이 청장에 대해 조직의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순간 기분 나쁘고 귀에 거슬린다고 불이익을 주겠다는 발상은 너무 유치하다. 조직 내부의 건전한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수장으로서 기본적인 자격조차 갖추지 못했다. 앞으로 조직이나 자신에 대해 아무도 말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해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B총경은 "집단적 움직임이라면 상황이 다르겠지만 개별적으로 의견을 올렸다고 불이익을 준다면 누구도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며 "어쩌면 잠시 조용해질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박명재 행자부장관이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통권308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