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스승 김학범 넘지 못한 '승부사' 최용수

김창진 기자  2014.11.23 21:52:46

기사프린트

[시사뉴스 김창진 기자]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꿈꿨던 최용수(41) FC서울 감독이 끝내 스승 김학범(54) 성남FC 감독을 넘지 못했다.

최용수 감독이 이끈 서울은 23일 오후 2시15분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14 하나은행 FA컵 결승에서 승부차기 접전 끝에 2-4로 졌다.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지 못했지만 결승까지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승부사 기질은 인정받을 만했다. 스승을 넘어서진 못했지만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최용수 감독과 김학범 감독은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 본선에서 선수와 코치로 인연을 처음 맺었다.

최용수 감독은 당시 올림픽 대표팀 주장으로 선수단을 이끌었다. 김학범 감독은 코치를 맡아 아나톨리 비쇼베츠 대표팀 감독을 보좌했다.

16년 만에 다시 만난 무대가 하필이면 FA컵 결승이었다. 냉정한 승부의 세계 앞에 맞닥뜨린 스승과 제자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사전 미디어데이 때부터 치열함은 예견됐다. 스승 김학범 감독은 18년 전 기억 속 최용수 감독을 끄집어 내며 "천방지축이었다"고 했다. 최용수 감독은 "새 역사를 쓰고 싶다"는 말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두 감독의 지도 스타일도 다른 듯 비슷하다. 둘 모두 냉철한 지략가로 통한다.

김학범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대표하는 지도자였던 알렉스 퍼거슨(73)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의 이름을 딴 '학범슨'으로 불린다.

1998년 당시 성남의 수석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2005년 감독을 맡아 전년도 정규리그 9위에 그쳤던 성남을 후기 리그 우승, 2006년 전기 리그 및 정규리그 우승 등을 이끌어냈다.

FA컵에서는 코치로서 1999년 우승을 경험했다. 코치 시절 1997년, 2000년 두 차례 준우승도 성남과 함께했다.

이에 맞서는 최용수 감독은 경험으로 치자면 한참 부족하다. "별이 몇 개냐"는 설전 속에서 쉽게 받아칠 수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성남은 일화 시절 정규리그에서 7차례, FA컵에선 2차례 정상에 올랐다. 아시아챔피언스리그도 제패하며 수 많은 별을 달았다.

서울은 2010년과 2012년 정규리그에서 우승하며, 정규리그 별을 5개로 늘렸다. FA컵 우승컵은 1998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품었다.

2010년 넬로 빙가다 감독을 보좌하는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용수 감독은 지도자 경력 5년 차에 불과하다.

하지만 초보 감독으로는 이례적으로 부임 첫 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11년 서울의 감독 대행에서 이듬해인 2012년 대행 꼬리표를 떼어 내며 정식 지휘봉을 잡은 최용수 감독은 '초보 감독'으로 서울을 K리그 정상에 올려 놓았다.

선수시절부터 '독수리'라는 별명을 가진 최용수 감독은 푸근한 '형님 리더십'으로 유명하지만 승부의 세계 앞에서는 누구보다 냉철하다. 김 감독은 그런 최 감독을 향해 '여우'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최 감독은 이날 결승전에서 스승 못지 않은 지략으로 상대의 허를 찔렀다. 전후반 90분과 연장전까지 120분 동안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기다렸다는 듯, 먼저 골키퍼 교체 사인 냈다.

주전 골키퍼 김용대를 빼고 승부차기에 일각연이 있는 유상훈을 내세웠다.

비슷한 시각 김학범 감독 역시 전북과의 4강전에서 교체 카드로 승부차기에서 재미를 봤던 전상욱을 내고자 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경기가 계속 진행되던 상황에서 교체 타이밍을 잡지 못했고, 이를 간파한 최용수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아까운 시간은 흘러갔고, 성남은 결국 박준혁 골키퍼로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하지만 자기 꾀에 스스로 걸려 넘어진 셈이 됐다. 과거의 사례가 오늘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았다.

성남의 골키퍼 박준혁은 서울의 오스마르와 몰리나의 킥을 각각 막아내는 선방쇼를 펼쳤고, 기대했던 유상훈은 단 한 차례의 킥도 막아내지 못했다.

올시즌 핵심 선수들이 모조리 이탈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던 최용수 감독이다. 마지막 남은 타이틀 위해 도전하는 과정에서 다시 한번 승부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했다.

끝내 빛을 보진 못했지만 한층 영글어진 느낌이다. 계속해서 배움을 얻고 있는 최용수 감독의 내일이 더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