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탕주의와 함께 도박광풍이 거세게 불면서 가정이 송두리째 붕괴되고 있다. 남편의 실직, 불안하기만한 경기로 인해 우리내 주부들이 가정을 등지고 도박판에 몰려들고 있는 현실이다. 도시, 농촌 곳곳에서 남녀노소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고'와 '스톱'을 외쳐대고 있다. 이렇듯 도박이 '망국병'으로 치닫으면서 자의든 타의든 도박판에 빠진 주부들은 돈을 잃고 빚만 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대박꿈이 도박으로 영글어가면서 '인망가폐'한다는 말이 입증되고도 남는 현상이다. 도박도 문제지만 만연한 한탕주의는 음침한 도박소굴에서 주부들을 무리한 주식투자와 복권구입 등으로도 내몰고 있다. 알콩달콩 한두푼 모아 목돈마련하고 내집 갖기에 꿈을 키우던 주부들은 투기에 열을 올리고, 생경한 주식투자에 손을 대면서 한순간 가정이 풍비박산나는 결과까지 초래하고 있는 것.
◆"돈벼락 한번 맞아보자"
주부 김모씨는(39) 얼마전 대기업 주식 2000만원어치를 매입했다. 주식투자 경험이 없지만 평소 눈여겨봐 둔 종목의 주가가 매일 오르자 갈등 끝에 '알토란' 같은 적금을 해약까지 하면서 종자돈을 마련했다.
적금의 수익률이 기껏 한자릿수인데 비하면 늘어나는 주식의 가격은 그야말로 꿈의 수익률 그 자체. 김씨는 투자한 주식의 시가 총액이 불과 보름여만에 20% 이상 올라 기쁘지만 내심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다.
남편과 이혼 후 일정한 직업이 없는 박모씨(46)는 요즘 돈만 생기면 복권방에 간다. 얼마전 5000원 투자해 100배 가까운 당첨금을 받은 기억이 언제나 새롭기 때문이다.
쩐의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이른바 대박 신드롬이다. 기본적인 원인은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착실히 벌어서 아끼고 저축하던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던 우리내 주부들은 이것보다 한방에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태가 만연하고 있다.
'묻지마 주식투자'의 증가는 물론 카지노를 출입하는 발길이 늘어나고 경마나 경륜 등 오락산업의 매출도 급증추세다.
이같은 경향은 부유층의 왜곡된 소비심리와 더불어 단순한 오락차원이 아닌 좀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기 힘든 현실을 타개하려는 서민들의 사행심리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무리한 주식투자도 문제. "적금해약하고 200만원으로 할 수 있는 재테크 조언 부탁드립니다. 주식은 어떨까요" 20대 새내기 주부가 인터넷 사이트에 내놓은 질문이다. 최근 국내 증시가 잇달아 사상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적금을 해약해 주식에 발을 들여놓는 '개미'들이 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요즘 주식을 하겠다며 공공연히 적금을 해약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면서 "주부나 노인의 경우 주식은 위험할 수 있다고 하면 오히려 핀잔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개미들이 객장에 직접 나가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 등 전방위로 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증권사 직원들도 조언해주기가 쉽지 않다"며 안타까워했다.
수중에 돈이 없다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리하게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려는 개인도 급증하고 있다.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로부터 대출을 받은 신용융자자금의 경우 지난해 12월 4972억원에 불과했지만 5월 현재 4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불과 5개월만에 덩치가 7배 이상 불었다.
◆오락산업 매출 급증
카지노 등 사행산업이 올해 들어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바다이야기 등 불법 오락업체에 대한 단속이 강화된 데다 시중 유동성까지 풍부해지면서 입장객이 늘어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타 오락산업(복권·카지노·스크린 마권 등)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5.6% 늘어나 3년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경마·경륜·경정장은 올해 1~3월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6% 늘었다.
이 기간 서울과 제주, 그리고 부산 경마장의 마권 발매액은 2000억원 가까이 늘어난 1조4650억원에 달했다. 경륜 매출은 40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매출액의 2.2배에 달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건전하게 경마를 즐긴다면 재미난 오락거리지만 대박을 좇는 마권 구매는 자칫 도박이 될 수 있다"면서 "최근 젊은 사람이나 여성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었고 외국인 근로자들도 적지 않다"고 최근의 경마장 풍경을 전했다.
합법화된 사행산업만이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 9월에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판돈 2000억원대의 사설 카지노를 차려놓고 도박을 벌인 일당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광역수사대(강력2반 반장 오영승 경위)는 당시 판돈 2000억원대의 무허가 카지노 도박장을 개설한 혐의로 카지노 운영자 김모씨(39) 등 3명을 구속하고 알선책과 딜러, 문방(감시조) 등 도박장 조직원을 포함해 6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적발된 이들은 회사원, 택시기사, 자영업자, 건축업자 등으로 다양했으며 이 가운데 19명은 주부, 유치원 원장 등 40~50대 여성도 포함돼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운영자 김씨는 작년 11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13층 건물 5층에 150평 규모의 무허가 카지노를 차린 뒤 카드게임인 '바카라'로 판돈 2175억원 상당의 도박판을 벌여 딜러수수료 등 명목으로 1300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이곳을 드나들며 도박에 빠져있던 인원만 하루 150명, 연인원 규모로 4만3천여명에 이른다. 검거당시 현장에서만 현금 3천만원가 통장 10여개 무전기 5대, 칩 2만개, 카드 50박스가 압수됐다.
수사착수 당시(서울광역수사대, 강력2반)경찰은 카지노 도박에 가담해 수억원을 잃고 가산을 탕진한 이들로부터 국내 최대 규모 카지노 도박판이 운영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1개월 동안 지루한 잠복수사를 벌였던 것. 알고 보니 조폭들은 매 판돈의 딜러비 5%, 환전수수료 5%, 딜러 승률금으로 약 50%를 챙겼고, 하루 한사람이 이 판에서 날린 금액만 400~500만원씩, 웬만한 대기업 부장급 월급에 해당하는 액수다. 무허가 카지노 업주의 이력도 화려했다. 김씨는 장안동 소재 H안마시술소 등 4개의 무허가 안마시술소 공동업주로 돼 있었고, 범죄로 인한 압수 등으로 인해 본인 명의의 부동산이나 동산은 없었지만 자신의 부인 명의로 5억8천만원의 잔고가 통장에 남아있었고, 경찰에서 김씨는 "카지노 도박장 운영수입이었다"고 실토했다. 또 시가 2억원에 달하는 고급승용차(벤츠 5.5)를 끌고 다녔고, 시계는 3천만원 상당의 비아제를 찼다. 모 조직 두목에게 지난해 3월 1억원을 빌려준 뒤 차용증을 받을 정도로 재산이 풍족했던 것. 결국 서민들과 우매한 주부들을 도박으로 유혹해 끌어모은 돈으로 호의호식해왔던 정황이다.
딜러비를 챙긴 21명의 딜러중에는 모대학 카지노경영학과를 졸업해 정선카지노 등에서 실력을 쌓은 여성들도 있었다. 이중 16명은 딜러학원을 수료했고, 대다수가 2~6년차 경력자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정규 카지노의 사업부진 등으로 인원감축이 있자 불법카지노인 음지행을 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통권311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