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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다 봉변’ 수면내시경의 ‘허와실’

김부삼 기자  2007.07.27 08: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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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시가 때아닌 ‘수면내시경’ 논란에 빠졌다. 인구 13만명에 불과한 소도시 모 병원 원장이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젊은 여성환자들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지난달 발생했기 때문.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자 의료계는 물론 시민사회 여성단체까지 경악을 하고 나섰고, 파문이 일파만파로 퍼져 정치권에서는 성폭행 등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영구적으로 취소하는 내용의 법개정까지 추진하고 나선 것. 더욱이 통영시에는 치과를 제외한 개인병원이 64곳에 불과하고 수면내시경을 하는 곳은 그보다 더욱 적어 이 사건이 입소문을 타 시민들이 병원가기를 꺼려하면서 중소병원 운영에 타격까지 입고 있는 지경이다. 여기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형사처벌 이후 의사면허 취소라는 양벌규정까지 적용하는 것이 법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찬반논란마저 확산되고 있어 통영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늑대로 돌변한 인면수심 의사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지난달 26일 경남 통영경찰서는 통영시내 모 병원 원장 A모씨(41)를 강간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월부터 6월 중순까지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20~30대 젊은 여성환자 3명을 잇따라 성폭행한 것. A씨는 위나 장이 나빠 찾아온 여성들에게 수면 내시경 치료를 한 뒤 다시 전신만취제를 주사하고 깊은 잠에 빠지게 해 점심시간 등 간호사들이 없는 틈을 타 성폭행 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성폭행 사실은 A씨가 간호사들을 밖으로 내보내는 등 진료과정을 수상하게 여긴 직원들이 검사실에 디지털 카메라를 숨겨 성폭행 장면을 촬영하면서 들통났다. 결국 A씨는 지난 21일 창원지검 통영지청에 상습 성폭행 등 혐의로 구속됐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은 A씨와 함께 같은 병원 직원 B모씨(29) 등 5명을 공갈미수죄로 약식 기소한 것. 알고 보니 기소된 직원들은 원장이 수면 내시경 여성환자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촬영, CD로 저장한 뒤 1개씩 나눠 가진 후 원장 가족에게 1인당 수천만원씩 요구한 혐의를 받았다.
◆‘성폭행 의사 면허 영구취소’…의료법 개정될까?
이같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 여론은 때아닌 ‘의료법 재개정’ 논란으로 확산됐다. 수면내시경을 받으러 온 여성환자를 상습 성폭행한 의사에 대해 현행 의료법으로는 면허를 취소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특히 국회 해당 상임위 소속 의원 중 일부가 적극적인 공감을 표시하면서 성폭력 범죄자를 비롯해 반사회적 범죄를 저지른 의사에 대해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에 힘이 실리고 있다.
반면 의사 대표단체인 대한의사협회는 해당 의사에 대해 회원 자격 박탈이라는 고강도 처벌을 예정하면서도 정작 의료법 개정을 통한 의사 처벌 강화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는 것.
통영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A씨의 경우 이미 드러난 3건 외에도 50여건의 성폭행 범죄를 더 저질렀다는 해당 의원 간호사들의 진술이 있는 만큼 피해자 규모는 이보다 훨씬 클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현행 의료법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을 악용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A씨에 대해 면허 취소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달초 보건복지부와 국회 복지위 전문위원실에 따르면 현행 의료법상 A씨는 형사처벌은 받겠지만 이로 인한 면허 취소는 할 수 없다.
의료법에서 면허 취소가 가능한 경우(65조)는 정신질환자, 마약, 대마, 향정신성의약품 중독자, 금치산자, 한정치산자를 비롯해 형법 233조 등에서 금지하고 있는 허위 진단서, 검안서 발급, 사문서 위조, 낙태, 허위진료비 청구, 업무상 비밀누설 등 의료관련 법령을 위반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형 집행 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인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밖에도 태아 성감별 금지, 면허증 대여, 자격정지 기간 중 의료행위나 3회 이상 자격정지 처분을 받는 경우에도 면허가 취소된다.
복지부 의료정책팀 관계자는 “현행 의료법상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면허 취소 규정은 없다”면서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결격 사유를 규정한 8조1항에 ‘성폭력 범죄’ 관련 형법 규정을 새로 추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통영성폭력사건대책위는 성폭력 범죄자도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의료법 제65조를 개정할 것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대책위는 “성폭력범죄자에 대한 의사면허 취소와 함께 통영시 의사협회는 성폭력 재발 방지를 위한 의사윤리강령을 강화, 성폭력 예방 교육을 의무적으로 연2회 이상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비난 여론에 대해 김홍양 경상남도의사회 회장은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의사회 징계 최고 수위인 ‘회원 자격 박탈’까지 불사하겠다”고 천명했다.다만 김 회장은 일단 검.경 수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해당 의사를 의사회 윤리위원회에 출석시켜 진위 여부를 파악한 뒤 징계에 처할 방침이라고 밝혀 실제 처분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사건의 파장이 확산되자 국회 해당 상임위인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도 후속 대책 마련에 부심하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 장복심 의원측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어느 직업보다 높은 윤리의식이 요구된다”면서 “통영 사건을 계기로 파렴치범과 같은 보건의료인은 아예 면허를 박탈할 수 있도록 의료법 및 약사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강기정 의원은 아예 의료행위를 이용해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면허를 취소하고, 이 때문에 면허가 취소된 의료인은 면허를 다시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에 제출하고 나선 것. 이 개정안은 통영 ‘수면내시경’ 사건과 관련, 해당 의사에 대해 형사처벌 외에 현행 의료법 상 면허 취소가 불가능한 점에 대해 비난 여론이 높아지면서 이를 개선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법 개정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란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물리적으로 17대 국회의 남은 의사일정이 많지 않은데다 대선등 정치 일정에 묻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면허 취소처분이 불가능해진 현행 의료법을 바로 이전 16대 국회에서 개정했다는 점이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통권312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