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태 17일째를 맞는 4일 피랍자 가족들은 극도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지난 3일 밤 탈레반이 아픈 여성들을 치료하려는 의료진을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제시하며 거절하자 많은 걱정들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피랍자 이영경 씨 어머니 김은주 씨는 "하루가 천일 같고 사는 게 사게 아니다. 스트레스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해서 애들 아빠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라고 말했다.
가족들은 "누가 건강이 안좋다하면 걱정이다. 가슴이 철렁철렁한다. 우리애가 건강이 좋은 편이 아니다. 누가 아프다고 하면 우리애가 아닐까 하고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피랍자 가족들은 故 심성민씨(29)의 영결식이 이날 오전 11시께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예정되어 있다.
가족들은 이에 앞서 오전 9시 30분에는 아프간 국민들에게 피랍자들의 석방을 당부하는 호소문을 발표했으며 또 오전 11시에는 한남동 이슬람 사원을 방문해 피랍자들의 활동이 종교를 넘어 순수한 봉사활동이었음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피랍자 가족들은 아프간에 억류되어 있는 피랍자들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단원들의 봉사의미를 되새긴다.
가족들이 원했던 아프간, 미국 그리고 파키스탄 방문마저 정부의 반대로 사실상 무산되면서 국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찾아서 하겠다는 마음이다.
차성민 가족 대표는 "편하게 앉아서 뉴스만 기다리고 있는 것보다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생각도 하기 싫지만 후회를 안 할 수 있도록 한번 최선을 다해 보자고 생각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피랍가족들이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보내는 호소문
아프가니스탄 국민여러분 저희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다가 지금 탈레반에 억류된 21명의 한국인 가족들입니다.
도와주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가족들 품으로 살아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렇게 눈물로 호소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이 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제발 우리 아이들을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지금 탈레반에 아직까지 억류되어 있는 우리 아들, 우리 딸 21명은 50년 전 한국전쟁으로 배고팠던 시절에 전 세계 사람들에게 대가 없이 받았던 그 사랑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겠다고 그 곳에 간, 저희들에겐 너무나도 소중한 가족입니다.
이 아이들은 민족, 종교, 국가, 이 모든 것을 초월해 그 사랑을 실천하러 간 아이들입니다. 한국인들은 전쟁의 아픔을 품고 사는 민족이기에 분쟁과 기근, 전쟁폐허로 고통받고 있는 곳이라면 그 어디든지 달려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공감합니다.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전 세계인의 사랑에 빚진 자들이기 때문에 이는 결코 종교적인 이기심만으로 아프가니스탄을 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 주십시오.
이런 숭고한 생명들이 죽음의 문턱에 서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만 생각하면 가족들은 억장이 무너지는 고통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여러분, 우리 아이들이 탈레반에 억류된 7월 19일 3년 전 그 날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십니까?
2004년 7월 19일은 수도 카불에 '이브니 시나' 병원이 개원한 날이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아프가니스탄 보건의료 분야 지원의 첫 사업을 시작한 그 날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위해 자비를 들여 보건의료봉사를 간 우리 아이들이 억류된 날이 되어버렸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런 현실에 애통해하며 가족들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립니다.
이 병원에서 3천 8백명의 현지인을 고용해 병원 의료진을 한국으로 초청해 교육도 시켰다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타고 다니던 버스가 2005년 1월에 한국에서 지원한 43개의 버스 중 1대일 수도 있습니다. 카불공대에 IT센터 건립도, 위성 인터넷 설치도 한국인들이 함께 도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도 한국전쟁 당시에 아프가니스탄 국민과 같은 처지였습니다. 지금 억류되어 있는 21명의 젊은이들과 같은 마음을 품고 한국을 도운 세계 각지의 이름모를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인들을 위해 병원도 세워줬고 배고픈 아이들에게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학교도 지어주고 교육도 시켜주었다고 합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된 21명의 한국인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국이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한국인들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무조건의 사랑을 받았던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지금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이 겪고 있는 아픔에 애통해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꼭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아이들도 가까운 미래에는 전쟁으로 힘들어하는 세계 어딘가에 가서 지금 우리 아이들 21명이 했던 나눔을 실천할 것이라 믿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제발 살아서 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 아이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고 사랑을 전하기에 애썼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품었던 긍휼의 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된, 이 힘없는 가족들은 우리 자식들에게 고개를 숙입니다.
그들이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그 누구보다 더 여러분의 어려움과 지금 처해진 고통의 상황을 전 세계에 호소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의 부모가 할아버지, 할머니가 전쟁으로 겪었던 고통을 지금 당신들이 똑같이 겪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아픔을 품고 사는 한국인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마음을 진실로 공감하며 아픔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런 국가와 민족은 한국이 유일하다는 것을 기억해주시길 바랍니다. 한국은 서방 국가가 줄 수 없는 희망과 용기를 여러분에게 드릴 수 있는 친구입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한국인들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과 친구입니다.
지금 억류되어 있는 아이들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들이 씨앗이 되어 아프가니스탄에 희망의 꽃이 자라게 하고 보다 나은 현실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제발, 제발 돌려보내 주십시오. 이대로 아이들이 살아 돌아올 수 없다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뼈아픈 고통을 공감적으로 이해해 세계에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여러분,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통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은 아프간의 희망, 아프간의 친구라고 믿고 있습니다. 21명의 우리 자식, 형제들을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내 주십시오.
아프가니스탄에 억류된 한국의료봉사단 가족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