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셈정치'로 박근혜와 함께 정권 되찾아 올 것"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의 17대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이 후보의 당선은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의 일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보수적이지만 저돌적인데다 불도저라는 명성을 얻었을 정도로 추진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이 후보가 대선정국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가 관심사다.
한나라당의 최대 목적은 10년간 빼앗겼던 정권을 되찾아오는 일. 정권교체의 사명이 '이명박'에게 주어진 것이다. 피를 말리며 1년 2개월간 이어진 경선과정, 박근혜 후보측과의 사활을 건 검증공방은 서로간의 상처를 입혔고, 이 후보가 사명을 부여받기까지 두 진영은 돌아 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박 후보가 경선 결과에 대한 완전승복 자세를 취했지만 감정의 골이 이미 깊어질 대로 깊어져 벌써부터 경선 후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즉 이 후보는 본선승리에 앞서 경선 이후 패자를 어떻게 끌어안고 화합을 이룰지라는 난제에 봉착해 있는 것. 따라서 승자인 이명박 후보가 본선에서의 최종 승리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역사는 이명박을 택했다
한나라당은 20일 오후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9차 전당대회를 열고 오는 12월 19일 대통령선거에 출마할 한나라당 주자로 이 후보를 선출했다.
개표 결과, 기호 1번 이 후보는 8만1084표를 얻어 7만8632표를 차지한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이로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기호 2번 원희룡 후보가 2398표로 3위를, 홍준표 후보는 1503표로 4위를 기록했다.
애초 이 후보는 13만898명(유효투표수)이 참여한 대의원, 당원, 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는 경쟁자인 박근혜 후보에게 뒤졌으나, 50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앞서 종합 득표에서 2452표 차로 신승을 거뒀다. 직접투표가 아니라 1명이 5표 가치가 적용된 여론조사 20%에서 당락이 결정된 셈이다.
전국 248개 투표소에서 전날 동시에 진행된 경선 투표는 대의원(20%)과 당원(30%), 국민참여선거인단(30%)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18만5080명의 직접투표와 일반여론조사(20%) 결과를 합산하는 방식으로 치러졌으며, 이날 오후 12시30분부터 약 4시간의 개표작업을 거쳐 오후 4시20분께 공식 발표됐다.
이 후보는 공식 발표 후 수락연설을 통해 "정권을 반드시 찾아오겠다"며 "뺄셈의 정치가 아니라 덧셈의 정치를 할 것이며 당의 대화합을 이뤄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존경하는 박근혜 후보가 내건 5년 내 선진국을 함께 열어가자"며 박 후보에게 선거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
박 후보는 경선 결과 발표 후 인사말에서 "경선 패배를 인정하고 깨끗하게 승복한다"며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후보에 진심으로 축하한다. 오늘부터 전 당원으로 돌아가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박 후보가 백의종군 의사를 밝혔지만, 이날 전당대회에서 패한 박 후보가 향후 어떤 방향의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한나라당의 경선 후유증의 수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비포장 도로 앞에선 불도저의 저력은?
"참으로 길고 지루한 과정"이란 당선자의 소회처럼 안팎에서 날아드는 돌멩이에 수도 없이 터지며 거둔 '신승'이다. 보통 힘겨운 승리를 거둔 승자 앞에는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위로의 말이 놓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후보에겐 '낙'을 누릴 겨를이 없다. '이명박의 승리' 앞에는 까마득한 비포장도로가 깔렸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후보의 승리가 '한나라당의 승리'로 완성되는 첫 관문의 열쇠는 경선 패자인 박근혜 후보가 쥐고 있다.
이 후보의 향후 구상과 박 후보의 경선 이후 시나리오가 맞물려야 한나라당 전당대회 모토인 '아름다운 동행'이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경선 기간 내내 평행선 대치를 거듭해 왔던 두 주자의 '머릿속'이 같으리라 기대키는 어려워 보인다. 이에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 후보의 정치력 검증은 이제부터"란 말이 공공연히 들린다.
먼저 던져지는 화두는 '빅2' 모두에게 아름다운 동행이 가능할까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예비후보 4명은 지난 13번의 합동연설회를 '경선결과 승복'을 다짐하는 맹세로 시작했다. 설령 경선에서 지더라도 10년 정권교체의 한을 풀기 위해서는 분루를 삼키고 한알의 밀알이 될 용의가 있다는 것.
박관용 경선관리위원장은 지난 16일 이, 박 양대 진영 측의 원로 27여명을 따로 모아 '모든 후보가 경선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고 다시 하나가 된다'는 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같은 다짐과 맹세가 그대로 지켜질 경우 이 후보는 여권 후보가 정해질 때까지 스포트라이트를 단독으로 받으며 50%를 넘나드는 한나라당 지지율을 한껏 누리면 된다. 계획대로 9월초쯤엔 '해외 스케줄'을 잡아 본선 경쟁력을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다.
경선 레이스를 마무리하며 이 후보는 "정권 교체를 위해 박 후보가 선거를 총괄해 주는 자리를 맡아준다면 더 이상 고마울 수가 없겠다"며 "진심으로 부탁을 드리고자 한다"고 말했다.
선대위원장을 맡아 '정권교체의 과업'을 이룬 다음 박 후보는 당권을 잡고 '차기'를 노리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 이 후보 진영의 희망섞인 관측이다. 이 후보 지지자들이 외치는 "오빠 먼저"란 구호에 담긴 맥락이기도 하다. 여기까지는 '빅2'가 한 길을 걷는 '아름다운 동행'의 시나리오.
그러나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먼저 박 후보가 이 후보를 지지할 명분이 부족하다. 경선 내내 이 후보를 "필패카드"로 규정해 온 박 후보였다. 이 후보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말을 뒤집어야 하지만 '원칙론자'인 박 후보가 쏟아놓은 말을 주워 담기란 난망하다는 것이 주변의 일관된 관측이다.
주변인사들간의 '화합'도 말처럼 쉽지 않다. 경선이 치러진 19일까지 투표용지 촬영 논란을 두고 박 후보측은 "매표정치"라며, 이 후보측은 "자작극"이라며 서로를 삿대질했다. '땅떼기 대통령', '최태민의 유훈정치' 등 서로를 향해 주고받은 치명적인 독설도 적지 않다.
감정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미 박 후보측에서는 김무성 의원이, 이 후보측에서는 정두언 의원이 '살생부'를 거론한 바 있다. 양대 진영이 '정치 생명의 밥줄'이라 할 수 있는 공천권을 담보로 일전을 치렀음을 알리는 지점이다.
이에 패자가 공천권 등을 포함한 일정 지분을 나눠 갖는 중재안이 거론되지만 이 '전쟁'이 캠프 내 핵심 인사들만의 것이 아니기에 간단치가 않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통권313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