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7월19일 납치된 23명 중 생존자 21명이 모두 풀려나면서 인질극은 막을 내렸지만 테러세력과의 타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 거액의 몸값 지불설 확산 등 후폭풍이 예사롭지 않다. 우선 '몸값' 지불 논란이 뜨겁다. 협상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 요구가 돌연 철회된 배경에는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이외의 조건이 있지 않고서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와 탈레반 양측 모두 어떠한 이면거래도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액면 그대로 믿어주기도 힘들다. 납치단체와의 협상 자체도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긴 것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정부로서는 실제로 몸값을 지불했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는 처지이며, 탈레반도 아프간의 정통성을 지닌 정치, 군사조직으로서 재집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돈을 받고 인질들을 풀어주었다면 '강도집단'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8일 저녁. 사건발생 41일만에 아프간 한국인 피랍사태가 해결됐다. 탈레반 측이 남은 인질 19명을 전원 석방키로 합의한 것이다. 우리 정부 대표단과 탈레반 무장납치단체는 이날 오후 1시18분(현지시간)부터 아프간 가즈니주의 적신월사(이슬람권 적십자사)에서 만나 인질 19명의 전원 석방에 최종 합의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공식 발표했다.
생환한 인질들은 한국땅을 밟았고, 지옥 같았던 42일간의 상처를 씻고 있다. 식음을 전폐하고 가슴을 졸이던 가족들도 협상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눈물 흘리며 환호했고, 분당샘물교회에서는 "살았다" "감사합니다"라는 환호성이 연신 터져 나왔다. 협상을 이끌어낸 한국정부 협상단의 노력도 돋보였고,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와 국제단체의 숱한 물밑 지원으로 지난 29일과 30일 이틀에 걸쳐 석방됐으며 31일 '안전지대' 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로 이동해 1박한 뒤 지난1일 오후 9시20분 두바이 발 인천행 대한항공에 올라 9시간의 긴 비행 끝에 꿈에 그리던 고국 땅을 밟았다.
◆협상타결, 눈물의 생환
미국 CBS 방송은 지난달 28일 인질 19명중 1차로 여성 3~4명이 29일 중 석방되고 나머지 인질도 2~3일 내 석방될 것이라고 탈레반 지휘관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납치단체와의 대면 접촉에서 아프간에 주둔중인 한국군을 연내 철군하고 아프간 내 한국인의 선교 중지를 조건으로 피랍자 19명 전원을 석방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 2일 오전 6시35분께 대한항공 KE952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들은 간단한 입국절차를 거친 뒤 평상복에 슬리퍼 차림 등으로 입국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피랍자 대표로 나선 유경식(55) 씨는"아프간에 봉사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피랍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심려를 생각하면 '석고대죄'가 마땅하겠지만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지내왔다"며"정부에 부담이 돼 대단히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피랍자들은 또"저희가 가족의 품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과 염려해주신 국민들께 감사를 드린다"며 국정원의 김만복 원장과 외교부 박인국 외교정책실장, 국방부 전인범 준장을 거명하며 "이들의 신중하고도 목숨을 건 구출작전이 아니었다면 저희 봉사팀 모두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고 밝혔다.
피랍자들은 "모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앞으로 국민 여러분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말했다. 피랍자들은 특히 "함께 돌아오지 못하고 먼저 하늘나라로 간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 형제의 유족에게 진심으로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울먹였다.
한편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의 첫번째 희생자였던 고(故)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 가족들은 "고인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며 기쁨을 표시했다. 그러나 함께 돌아오지 못한 고인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감추지는 못했다.
배 목사의 부인 김희연(36)씨와 함께 배 목사의 집에 머물고 있는 김씨의 언니 진미씨는"정말 고대하던 소식이다. 남은 인질 모두 무사히 풀려난다니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진미씨는 동생을 대신해 "가족 모두 봉사대원들의 인솔자였던 배 목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이제 고인도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목사의 형 배신규 씨도 "동생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남은 분들이 살아 돌아올 수 있게 된 것에 우선 감사한다"며 "집안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동생이지만 배 목사에게 상의했을 만큼 신중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이었다. 경솔한 판단으로 행동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세간의 비난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힌 배신규 씨는 인터넷을 비롯해 각종 언론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보고 들으며 피랍자 가족들이 매우 마음 아파했다고 말했다. 오지로 떠난 젊은이들의 선한 의도만이라도 이해해 주길 바란다는 간절한 부탁도 잊지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통권 314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