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통령이 2007년 10월 2일 오전 9시5분 마침내 분단 반세기만에 '금단의 선'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었다. 이날 오전 7시55분께 전용차편으로 청와대를 떠난 노 대통령은 1시간여만에 군사분계선 앞 약 30m 지점에 하차한 뒤 간단하게 소감을 밝히고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오전 9시5분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역사적 첫발을 북한에 내딛으면서 시작된 감동의 드라마가 2박 3일간 펼쳐졌다. 이 장면은 외신을 통해 60억 세계에 생중계됐다. 이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자 최후의 냉전지대로 남아 있는 한반도 평화의 필요성을 세계에 알리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임기말 레임덕(권력누수현상)에도 불구하고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만났으며 미흡하긴 하지만 8개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역사적인 '10.4 남북정상선언'을 이끌어 냈다. 특히 6자회담의 진행상황과 맞물려 이번 선언이 한반도에서 핵구름을 걷어내는 역할과 나아가 남북미중이 참여한 '종전선언'으로 이어질지 기대되고 있는 상황. 더욱이 남과 북은 논란이 됐던 NLL(서해 북방한계선) 재설정 논의를 넘어서 남북 서해수역을 평화수역벨트로 묶는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황해권 발전 도약에 도움닫기를 했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이전까지 대선정국을 앞두고 북풍을 우려한 정치권은 '대선용'이란 공세를 펼쳐갔지만 정상회담 성사 이후에는 진행 추이를 주시하며 흠집내기를 거두고 실천이 후행될 수 있도록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더욱이 북한을 야만정권으로 내몰았던 미국도 남북정상간 역사적 손 맞잡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어 부시정권이 종전선언에 적극 뛰어들 것도 기대되는 대목이다. 여기다 대선을 앞두고 후보자 선출에 애쓰고 있는 범여권에서는 북한발 훈풍을 기대하며 저마다 '내가 바로 통일시대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자임하고 있다. 임기를 150여일 남짓 한 노 대통령이 향후 매듭을 단단히 맺고 물러날지 주목된다.
◆'10.4 남북정상선언' 무엇을 담았나?
노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이 4일 서명한 '10.4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방대하고도 구체적인 합의를 담고 있다. 마지막 냉전지대였던 한반도를 평화지대로 전환하기 위한 평화정착 방안과 함께 남북이 공동번영의 길로 들어서기 위한 구체적 경제협력사업들, 통일로 한 걸음 다가서기 위한 조치 등이 총망라됐다는 평가다. 특히 2000년 정상회담 이후 경협 부문과 비교해 진전이 더뎠던 정치.군사 부문에서도 적잖은 합의가 이뤄졌다는 점이 눈에 띈다.
첫째 평화정착이다. 10.4선언 4항에는 종전선언을 위해 미국과 중국 등 관련국을 포함한 3자 혹은 4자 정상이 모이는 방안을 담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물론 미국도 종전선언을 위한 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여왔지만 북측의 의지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적잖은 의미를 갖고 있다.
노 대통령은 귀환 보고회에서 "김 위원장은 한미간에 논의한 바 있는 종전선언 방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관심을 표명했다. 그리고 이것을 성사시키도록 남측이 노력을 해보라, 이런 주문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쟁을 끝낼 종전선언 문제를 실질 당사자인 남북 정상이 만나 주도적으로 논의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양 정상은 아울러 6자회담에서 도출된 9.19공동성명과 2.13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군사적 긴장완화 부분도 주목된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에도 경협 분야에 비해 발전이 크게 더뎠던 군사분야의 협력을 위한 기초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남북은 산적한 군사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11월 중 평양에서 국방장관회담을 열기로 했다. 2000년 9월 제주도에서 1차 국방장관회담이 열린지 7년여만으로, 북측은 그동안 국방장관회담 개최에 소극적이었다.
국방장관회담 의제는 <서해상 우발적 충돌방지를 위한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조성 방안>, <각종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으로 선언에 적시돼 있다.
이 두가지는 그간 남북장성급회담 등에서 논의돼 왔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던 사안으로, 공동어로수역은 남북 간 첨예한 긴장의 현장이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 공동어로를 설정해 남북이 공동이용하는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군사적 보장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이행되지 못한 <임진강.한강하구 공동이용>, <임진강 수해방지사업>, <경의선.동해선 철도개통 등 경협사업>들도 국방장관 회담을 통해 돌파구가 열릴 것으로 기대된다.
이밖에 남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 건설, 해주항 활용 등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는데, 이는 평화와 번영을 결합한 새로운 평화경제 사업이라고 정부는 자평했다.
경제협력 분야에서도 한반도 경제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과감한 합의들이 이뤄졌다. 우선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조선산업은 우리나라가 세계 제1의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인건비 상승 등으로 어려움이 예상돼 국내 업계는 중국을 대체할 새로운 투자처로 북한을 주목해 왔다.
북측도 이번 회담기간 남측 기업 관계자들에게 남포에 위치한 영남배수리공장을 공개하고 시설 및 장비의 제공 등 협력을 요청하는 등 적극적이었다는 후문이다. 북측은 영남배수리공장이 있는 남포와 함께 남측 조선소들과 가까운 동해안의 안변을 협력사업 후보지로 제시했다.
조선협력단지 외에도 남측의 자본과 북측의 노동력이 결합돼 '유무상통'의 대표적 사례로 평가받고 있는 개성공단사업을 보다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들에 양 정상은 합의했다.
'문산-봉동(개성) 간 철도화물 수송'에 합의,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원자재 조달과 생산품 수송 등에 물류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됐으며 통행.통신.통관 문제를 비롯한 제도적 보장조치들도 조속히 완비하기로 했다.
또 철도개통을 비롯한 주요 경협사업들의 중대 걸림돌로 작용했던 '군사적 보장조치'도 향후 문제가 없도록 합의됐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개성-신의주 철도 및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문제를 협의.추진하기로 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북으로 막혀 사실상 '섬'이나 마찬가지였던 우리나라가 중국은 물론 유럽대륙으로 향하는 길을 닦는다는 의미로, 남북경협에 있어서도 상당히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수천억원의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점이 부담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개성-평양 철도 개보수에 최대 2천900억원, 개성-평양 고속도로 재포장에 최대 4천400억원이 들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0.4선언에는 남북이 보다 가까워지고 통일에 한 걸음 다가가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하는 사안들에 대한 적잖은 합의가 이뤄졌다. 우선 이르면 올해 말 이산가족면회소가 완공되는 시점에 맞춰 이산가족 상시상봉을 실시하기로 하는 등 이산가족 상봉을 확대하고 영상편지 교환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남북은 또 남북관계를 통일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해 나가기로 합의했다. 남측이 정비할 법률적.제도적 장치로는 국가보안법과 참관지 제한 등 북측이 이른바 '근본문제'로 거론하고 있는 사안들이 꼽힌다. 북측에서는 대남 적화통일을 목표로 한 노동당 규약의 개정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정상이 수시로 만나 현안들을 협의하기로 하면서 사실상 정상회담의 정례화가 이뤄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남북정상회담 기간(3일) 노 대통령과 '정상회담 정례화'에 대한 논의를 하던 김 국방위원장은 "친척집에는 수시로 놀러가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남북정상회담 정례화를 위해 갔다. 전해들은 이야기지만 정례화하자고 노 대통령이 제의하자 김 위원장이 이렇게 말했다"며 김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다.
천 대변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또 "국가대 국가의 관계에서 '정례적'이 맞을지 몰라도 남북의 특수관계에서 굳이 '정례적'이라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며 "수시로 만나면 되지 않느냐"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천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언급에)공감하고 수시로 만난다는 것이 정례화보다 더 나을 수 있다"며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회담은)이뤄질 수 있다. 필요에 따라 수시라는 것이 더 적극적 만남을 의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도 정례화는 반기는 분위기다. 나경원 대변인은 이날 현안 브리핑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는 사실상 두달여 밖에 남지 않았다. 결국 10.4 남북공동선언의 실천과 보완은 다음 대통령과 국민의 몫이다"면서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로 확실한 한반도의 평화와 공영을 완성할 것이며, 이번 공동선언에서 아쉬운 점은 보완하고 잘된 점은 적극 실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창간19주년' 통권 316호(10월15일 발행)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