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정동영 대선 후보는 누구인가?

김부삼 기자  2007.10.15 19:10:10

기사프린트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가 17대 대통령선거 당 후보로 공식 확정됐다. 양길승 국민경선위원장은 15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대통령후보 지명을 위한 전당대회에서 "정동영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제17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것을 공식 선포한다"고 발표했다.
정 후보는 이날 대선후보 수락연설에서 "경선 과정에서 상처와 분열이 생겼지만 이제는 치유와 통합으로 가 하나가 돼야 한다"며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12월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것"이라고 대선 승리의 뜻을 다졌다.
그는 또 "오늘 여러분이 만들어준 희망의 횃불을 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승리의 불씨가 들불처럼 번지게 하겠다"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이어 '통합의 정부'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최대 적수가 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도 겨냥했다. 그는 "약육강식 경제, 이명박식 경제를 거부한다"며 "대운하를 파서 환경재앙을 만들어내는 토목경제 시대로 돌아가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을 하는 '차별없는 성장'과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가족행복시대'"를 제시 △중소기업강국 △항공우주산업강국 △4대(일자리,노후,사교육,주거) 불안 해소 등도 함께 공약했다.
이에 따라 통합신당은 오는 12월19일 대선까지 남은 65일 동안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후보에 맞서 '개성공단 대 청계천', '부자 대통령 대 서민 대통령' 구도를 부각시키며 본격적인 본선 대결에 나설 채비를 갖추게 됐다.
◆정동영 그는 누구인가?
한때 잘 나가던 MBC의 '스타 앵커'였던 정 후보가 정치에 입문한 것은 1995년이다.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의 최측근이던 권노갑 전 의원과 서울대 72학번 동기인 이해찬 전 총리의 적극적인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96년 15대 총선에 출마한 그는 전북 전주에서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정치 초년병 시절은 '순항'이었다. 동교동계의 두터운 신임이 큰 힘이 됐다. 국민회의와 새천년민주당에서 대변인을 세 차례에 걸쳐 40개월간 맡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다질 수 있었다.
2000년 민주당 최고위원에 당선돼 초,재선그룹의 리더로 부상한 정 후보는 첫 승부수를 던진다. 이른바 '정풍운동'이다. 그는 청와대 회의석상에서 국민의 정부시절 동교동계 맏형으로 '권력 실세'였던 권노갑 전 의원을 2선 후퇴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정 쇄신운동의 불씨를 지폈다.
정 후보는 여세를 몰아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든다. 6명의 후보로 출발한 경선은 지역 순회투표를 거치면서 결국 노무현, 정동영 두 후보만 남았다. 16개 지역 순회경선 결과는 1승15완패를 당했지만 끝까지 경선을 완주하는 끈질김도 보여줬다.
2003년 민주당 분당 사태와 열린우리당 창당은 정 후보의 정치인생에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그는 천장배, 신기남 의원과 함께 개혁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천신정'의 트로이카 체제를 구가하기도 했다. 당 쇄신을 명분으로 내걸어 당 안팎에선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지만 여론과 개혁을 바라는 당내 지지자들의 열띤 성원에 힘입어 급기야 차세대 주자로 급부상했다.
참여정부 탄생과정에서 일등공신 역할을 한 그는 이후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으며 2004년 17대 총선 직전 '노인폄훼' 발언으로 정치적 생명까지 위협받기도 했다.
이같은 악재에도 불구 152석의 거대 여당으로 당 외연을 키웠고 같은해 7월 통일부 장관으로 입각한 정 후보는 2005년 6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다. 이때 양측이 맺은 한반도 비핵화 원칙과 6자회담 재개 약속은 3개월 뒤 9.19 공동성명이 탄생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그의 핵심 정책비전인 '한반도 평화경제론'과 캐치프레이즈인 '개성 동영'도 당시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이때부터 '개성동영' 등 북한문제 전문가로서 이미지가 부각됐고 지난해 2월 당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함으로써 차기 주자로서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듯하다가 5.31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서 시련기를 맞는다. 선거 다음날 '현애철수장부아(縣崖撤手丈夫兒 낭떠러지에서 손을 놓는 것이 참된 대장부다)'라는 말을 남기고 의장직을 던진 그는 한 달간의 칩거 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이후 귀국해 민심대탐방과 평화대장정을 거치면서 '정치적 재기'를 위한 숨고르기에 들어간 그는 지난 6월 우리당을 전격 탈당한 이후 비노, 반노 진영의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며 정치적 홀로서기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그에 대한 시험이 끝난 것은 아니다. 범여권 후보 단일화와 당내 갈등 봉합, 대선 승리라는 역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천길 낭떠러지에서도 손을 놓는 대장부가 되겠다"는 절치부심의 승부사. 정동영 대세론이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