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 선거를 불과 40일 앞두고 정국이 예기치 못했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7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키로 결정, 이명박 후보 독주 체제에 제동이 걸리면서 연말 대선정국이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 안팎이'창풍(昌風)' 에 요동치고 있다. 당내 일각에선 親李(친이명박)와 親朴(친박근혜) 진영간의 갈등이 확대되면서 보수진영이 사실상 두 동강 나 대선정국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범여권은 대선경쟁구도에서 소외되자 후보단일화 논의가 빨라지는 등 '정치적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昌 출마… 李 대로는 안된다
이 전 총재는 지난 2002년대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지 4년 11개월만에 정계에 복귀해 3번째 대권 도전에 나서게 됐다.
이 전 총재 측은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과 정체성 등을 출마의 표면적인 이유로 거론하고 있다. BBK 주가조작 사건 등 각종 비리 의혹에 연루된 이명박 후보로는 사실상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 전 총재는 또 기존 한나라당 입장에서 다소 유연해진 이 후보의 대북관을 문제삼으며, 이명박 후보로는 진정한 좌파정권 종식을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 전 대표 측을 끌어안지 못하고 당내 갈등이 표출되는 것도 이 전 총재 측에서 출마의 배경으로 내세우고 있는 하나의 요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가 지난 두 번 대선에서의 패배한 설욕을 딛고 이번 대선에서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출마설이 불거지기 시작한 이후부터 실시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대선주자 중 단숨에 2위로 올라선 것도 이 전 총재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뒷배경으로 풀이되고 있다. 그러나 지지율 부진이나 보수진영 '필패론'의 역풍을 맞아 중도하차하고 이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할 경우에는 `단일화 효과'가 생기면서 게임은 의외로 쉽게 끝날 수도 있다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물론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면서 반대로 이 후보가 이 전 총재를 지지해야 하는 지독히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 일각의 시각이다.
마지막 변수를 좌우할 소재는 두 사람의 지지율이라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 후보의 지지율이 완만하게 빠지거나 이 전 총재의 지지율이 완만하게 상승곡선을 그릴 경우 단일화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서로 당선 가능성을 자신하면서 `치킨게임'처럼 끝까지 마주 달리며 속도를 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범여 단일후보가 계속 지지부진할 경우 두 사람간 대결은 결국 투표를 통해서 판가름 날 것이라는 섣부른 전망도 있다.
◆李, 새벽 昌자택 기습방문 '허탕'
이 전 총재의 출마로 보수진영의 분열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고, 이명박 후보에게도 어느 정도 타격이 가해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 이명박 후보는 7일 대선 출마를 결정한 이 전 총재의 자택을 직접 찾아가는 등 막판까지 출마 자제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 후보는 이날 오전 7시께 선대위 비서실 부실장인 주호영 의원과 함께 이 전 총재가 살고 있는 서빙고동 신동아아파트를 예고없이 방문했으나 이 전 총재를 만나지 못하고 30분만에 돌아갔다.
이 전 총재의 부재를 확인한 이 후보는 경비실에서 메모지를 얻어 즉석에서 편지를 쓴 뒤 주 의원을 통해 '일하는 아주머니' 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후보는 편지에 "존경하는 이회창 총재님, 며칠째 만나뵙고 말씀드리려고 백방 노력했으나 못 만나게 돼 몇 자 적습니다.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여겨지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 통화라도 하고 싶습니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7일 새벽 이명박"이라고 적었다.
이 후보는 전날(6일)에도 밤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은 채 시내 모처에 머물면서 이 전 총재의 연락을 기다리는 한편 법조계 지인 등을 통해 이 전 총재의 소재를 파악했다.
이 전 총재의 출마가 기정사실화 됐음에도 이 후보가 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이 전 총재를 설득하려는 모습을 보인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최대한 명분을 쌓아놓으려는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전 총재의 출마 선언 직후부터는 정면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후보는 이 전 총재의 대선 자금 문제와 대선출마의 명분 부족 등을 근거로 이 전 총재를 공격하며, 국면을 '정면돌파' 하는 쪽으로 대응방안의 가닥을 잡았다.
◆朴心은 어디로?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의 선택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심(朴心)이 어디로 향할 지도 이번 대선의 주요 변수가 됐다.
박 전 대표는 이 전 총재의 출마와 관련해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언급을 삼간 채 진 말을 아끼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측과 박근혜 전 대표 측 사이의 갈등기류가 고조되면서 대선정국의 열쇠는 박 전 대표가 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됐다.
박 전 대표 측은 현재 이재오 최고위원, 이방호 사무총장 등 이 후보 측근의 사퇴와 함께 당권-대권 분리를 요구하고 있어 한나라당의 내홍 수습 여부는 이번 대선의 주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이를 수용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박 전 대표 측의 요구를 거절하면 박 전 대표 측은 당에 남더라도 '침묵'을 지키는 방식으로 내용상 이 전 총재의 손을 들어 줄 경우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은 사실상 두동강 나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 일각에선 이미 "몸만 하나지 마음은 이미 둘이다", "이명박, 이회창 둘 가운데 누구를 찍어야 하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창간19주년' 통권318호(창간 특집호11월12일)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