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전 총재가 7일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았다. 창의 무소속 출마를 놓고 한나라당은 배신감에 휩싸이면서 당론분열과 함께 다잡은 대권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에 휩싸였고, 범여권은 이 전 총재를 향해 "노욕의 대통령병 환자", "치욕스러운 귀환"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우익진영의 보수단체들은 찬반으로 입장이 엇갈려 이날 하루 서울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마다 찬반선언에 목소리를 높였고,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 팬클럽과 박근혜 전 대표 팬클럽이 극명한 입장차를 보였다.
이 후보 팬클럽인 MB연대는 "이 전 총재는 '쉰당의 선대본부장'이냐"며 "박수칠때 떠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7일 낮 12시부터 이 전 총재의 사무실 인근인 남대문시장 수입상가 입구에서 규탄집회를 열고 있는 반면, 박사모 측은 "이 전 총재의 출마를 환영하는 입장을 정했다"며 내심 반겼다.
사이버공간도 후끈 달아올랐다. 이 전 총재의 출마선언 직후인 7일 오후 2시부터 네티즌들은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방문,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며 이 전 총재의 출마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은 사태 추이를 바라보며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냉기류가 흘렀다. 여기다 이 전 총재의 출마는 대선판의 지각변동을 예고했다. 이명박 후보의 독주속에 신당의 정동영 후보 등 범여권 후보들이 지지율 정체현상을 겪고 있는 가운데 이 전 총재가 등장하면서 사실상 이명박-정동영-이회창 후보의 3파전 양상을 띄게 된 것.
신당 정동영,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간 후보단일화 논의가 최근 삼성비자금 특검제 도입을 고리로 한 반(反)부패연대 결성을 통해 급진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대선판은 25일 후보 등록직전에 또다시 보수 대 진보의 양대 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게다가 이 전 총재는 "만약 제 선택이 올바르지 않다는 국민적 판단이 분명해지면 언제라도 살신성인의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해 여론의 추이에 따라 대선 중도 포기 또는 이명박 후보와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신당을 비롯한 범여권은 이명박 후보를 겨냥한 BBK의혹제기 등 네거티브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다 이 전 총재를 겨냥해서는 '도덕성에 흠결'을 트집잡고 있어 연말 대선은 양측간의 치열한 네거티브공방이 될 것이라는 전망.
◆창(昌)의 선언, 후폭풍 예상
이 전 총재는 이날 서울 남대문로 단암빌딩 자신의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오늘 그동안 몸담았던 한나라당을 떠나 이곳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한다"며 17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지난 2002년 16대 대선패배로 눈물의 정계은퇴를 선언한 뒤 5년이 지나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두고 혈혈단신으로 무소속 출마에 나선 것.
그는 이날 회견 첫마디에 지난 두 차례의 대선 패배에 대한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 전 총재는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대선 패배 후 저는 국민여러분께 용서를 빌고 정치에서 물러나겠다고 말씀 드렸다. 국민여러분이 그토록 소망했던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큰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 총재는 "그런 제가 오늘은 스스로 국민여러분께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것을 말씀드리려 한다. 지금 이 순간 제 인생에 있어 가장 처절하고 비장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국민께 드렸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해 진심으로 엎드려 사죄하고 용서를 빈다"고 대선불출마 번복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그는 "저는 지난 2002년 한나라당이라는 거대한 조직과 체제로 선거를 치렀다. 정치에 들어온 뒤 나름대로 정직하고 원칙을 지키고자 고민하고 노력도 했다"며 "결국 초심을 지키지 못했고 거대한 당체제 안에서 안주하고 자만에 빠졌다. 결국 선거에도 지고 당에 치욕스러운 오명까지 덮어쓰게 했다. 그 오명 속에서도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를 중심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미안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과를 끝낸 그는 자신의 대선 출마의 변을 소상히 밝혔다. 그는 "저는 한나라당의 후보가 정권교체를 향한 국민의 열망에 부응해주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한나라당의 경선과정과 그 후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이러한 기대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며 "정말 정직하고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지도자만이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물론 완전한 사람은 없다.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지만 정직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정신과 용기가 있다면 국민은 신뢰할 것"이라며 "그런데 지금 국민은 한나라당 후보에 대해 이점에 관해서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 충분한 신뢰를 보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정권교체 자체도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고 이 후보의 불안요소를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정권 교체만 되면 된다, 대통령이 누가 되어도 나라는 저절로 바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런 생각은 환상이고 또 위태로운 생각"이라며 "정권은 반드시 교체해야 하지만 10년 동안 훼손되었던 나라의 근간과 기초를 다시 세우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는 정권교체가 돼야지 그러지 못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지적했다.
또 "경제만 살리면 된다고 하지만 국가의 기반이 흔들리는데 경젠들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느냐"며 "기본을 경시하거나 원칙 없이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자세로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중요한 것은 국가정체성에 대한 뚜렷한 신념과 철학입니다. 이것 없이는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할 수 없다"며 "그런데 이점에 대해 한나라당과 후보의 태도는 매우 불분명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총재는 "이것이 바로 제가 출마를 결심하게 된 근본 이유"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저 이회창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저는 잃어버린 10년의 시대를 반드시 끝낼 것"이라며 "더 나아가 1987년 이후 지속된 20년 체제를 넘어, 최소한 향후 50년 이상은 지속될 수 있는 국가적 틀을 마련하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자세한 내용은 시사뉴스 '창간19주년' 통권318호(창간 특집호11월12일)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