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라시안 감독의 첫 번째 장편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작은 소녀 투이는 며칠 전 무서운 삼촌으로부터 도망쳐 도시로 넘어왔다. 아는 사람도, 당장 지낼 곳도 마땅치 않지만 야무진 성격의 투이는 유일한 친구인 바비인형과 함께 오늘도 거리로 나선다. 맛있는 저녁을 위해선 장미꽃을 팔아야 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투이는 동물원 사육사 하이와 아름다운 스튜어디스 란을 알게 된다. 헤어진 여자친구를 잊지 못하는 착하디 착한 하이는 동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란은 예쁘고 친절한 마음씨를 가진 하늘의 천사지만 둘은 아직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자 투이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하이와 란을 소개시켜주면 어떨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래서 투이는 우울해 보이는 란에게 근사한 저녁을 사겠다고 앙증맞은 제안을 한다. 그리고 하이에게도 같은 제안을 한다.
베트남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아메라시안인 스테판 거져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러블리 로즈’는 삭막한 도시에서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감독 자신이 태어난 사이공 거리를 배경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특히 베트남의 현실을 서정적 언어로 이야기 하고 있다.
변화하는 사회의 본질
1980년대 중반, 사회주의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쟁주의를 도입한 쇄신정책으로 베트남은 현재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사이공의 거리는 전쟁의 상처를 씻고 동남아시아의 어느 도시 보다 더욱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거리는 오토바이와 차들로 붐비며 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이 도시를 환히 밝힌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사이공의 거리는 에너지와 열정이 넘치는 인구 800만의 가공되지 않은 도시다.
영화는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 속에서 가족 없이 혼자인 외로운 사람들에게 주목한다. 대나무 공장에서 일하는 아이들, 길거리에서 엽서나 꽃을 파는 아이들, 그리고 국수를 팔러 다니는 아이까지 베트남에서 어린이들의 노동은 그들의 가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식당이나 옷 가게, 대나무 공장 등에서 일하는 것을 매우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거리에서 꽃을 팔며 돈을 버는 것 또한 자신들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학교를 다니려면 책과 교복이 필요하지만 몇몇 가정들은 그 비용을 부담하기에는 너무 가난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같은 삭막한 도시와 고단한 사람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야기와 캐릭터들은 친밀하고 낯선 사람들이 만나 보여주는 관계를 따뜻하고 아름답게 그려낸다. ‘변화하는 사회의 본질을 영화 속에 담아내고 싶었다는 스테판 거져 감독은 동양적 정서를 서양 방식으로 촬영함으로써 동화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분주하게 돌아가는 삭막한 현대 도시의 단면을 담아냈다.
소소한 사회 문제와 어린이에 대한 애정
삼각대 없이 핸드 헬드 카메라, 그리고 최소한의 조명을 사용해 촬영을 진행함으로써 영화는 있는 그대로의 베트남을 생생하게 담아내는데 충실하다. 영화 속 사이공은 빛과 색이 그림같이 아름답고 인력거나 오토바이, 화려한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들의 모습 하나하나까지 매우 인상적인 도시다.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 큰 도시에서 더욱 외로운 사람들의 사랑과 관계,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사회의 소소한 문제를 담은 ‘러블리 로즈’는 베트남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작품이다.
베트남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과 매혹적 영상언어로 세계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이 작품은 스테판 거져 감독을 스타덤에 올려놓았다. 인디 영화의 영원한 대부 ‘존 카사베츠’ 감독의 정서가 녹아있는 작품이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2007년 한해 동안 빅 애플 영화제 Festival Prize, 덴버 국제영화제 Emerging Filmmaker Award, 하와이 국제영화제 넷팩상, 하트랜드 영화제 Crystal Heart Award, 로스앤젤레스 영화제 관객상, 샌디에고 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상, 샌프란시스코 국제아시아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는 등 전 세계 평단과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이끌어냈다.
미쓰 홍당무
감 독 : 이경미 배 우 : 공효진, 이종혁, 서우, 황우슬혜

뱅크 잡
감 독 : 로저 도널드슨 배 우 : 제이슨 스테이섬, 새프론 버로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