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정부와 여당이 사상 처음으로 총지출 800조 원을 넘어서는 ‘800조 원+α’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늘어난 세수를 바탕으로, 국가 경제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늘어난 지출 규모에 대한 찬반 논란보다 더 큰 쟁점은 약 100조 원으로 조성되는 ‘미래대응기금’이 국회의 예산 통제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정기국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반도체 특별회계’ 신설과 인프라 투자 확대
정부와 여당이 내년 예산 총지출을 사상 처음 800조 원을 넘기는 ‘800조 원+α’ 규모로 확정했다. 이번 예산안은 인공지능(AI)과 반도체 같은 첨단 기술 생태계 조성과 청년과 지역을 중심으로 한 미래 대비 투자에 특히 힘을 실었다.
국회에서 열린 당정협의회에서는 ‘2027년도 예산안’의 5대 중점 투자 방향이 최종 결정됐다. 이번 예산안은 반도체 수출 호황에 따른 법인세 등 국세 수입 증가분을 디딤돌 삼아, 단순한 지출 확대가 아니라 성장 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 ‘생산적 재정 전략’으로 전환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담겼다.
반도체 호황 속에서도 청년 취업난이 여전히 심각하고, 금리 인상 탓에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정부는 취약 계층 지원도 더욱 강화할 계획이다.
이번 결정에는, 반도체 수출로 세수가 늘어난 지금이 국가 미래를 바꿀 적기라는 판단이 크게 작용했다. 단순한 복지 확대를 넘어서, AI와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생태계를 키우고 청년과 지방이 소멸하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국가 개조형’ 예산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여당은 특히, 첨단 과학기술 분야 투자를 강조하고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 자율주행·로보틱스 등 물리 AI까지 아우르는 ‘3대 메가 프로젝트’에 집중 지원이 이뤄진다. 이를 위해 ‘반도체 특별회계’가 새로 만들어지고, 여러 부처에 흩어져 있던 반도체 산업 지원 예산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관리할 예정이다.
덕분에 필요한 자금을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갖춰진다. 또, 반도체 클러스터에 꼭 필요한 전력과 용수 공급을 위해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에 대규모 출자도 추진한다.
AI 분야에서도 정부는 현장 지원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최첨단 프론티어 AI 모델 개발에 꼭 필요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 1만 개를 예산으로 마련해 현장에 공급할 예정이다. 이런 조치는 글로벌 생성형 인공지능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인프라 격차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또, 우주항공 분야 연구개발 지원도 사상 최대 규모로 책정됐다. 오는 2030년 우리나라의 달 착륙선 발사를 목표로 예산이 투입된다. 여기에 자율주행 시범지구 확대와 전기차 보조금 예산도 크게 늘려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성장 토대도 다졌다.
이번 예산안에서 정부와 여당이 가장 신경 쓴 분야는 미래 성장의 엔진이 될 첨단 기술, 특히 반도체·인공지능·자율주행 및 로보틱스 등 전략 산업 분야다.
특별회계를 통해 분산돼 있던 반도체 지원 예산을 한데 모아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규제 장벽을 줄이고, 개발부터 인프라 구축까지 실무가 빠르게 돌아갈 수 있는 ‘재정 저수지’를 새로 만든 셈이다.
반도체 클러스터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전력과 용수 공급망 구축도 정부가 직접 챙긴다. 한국전력공사와 한국수자원공사에 대규모로 예산을 출자해, 민간 기업의 부담은 줄이고 공사 기간은 크게 단축할 계획이다.
글로벌 AI 경쟁의 핵심인 인프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 1만 장을 직접 확보해 현장에 투입한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AI 패권을 두고 세계 각국과 기업들이 이미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지금 문명의 전환점, 대전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앞으로 나아가려면 전략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성장의 동력을 만들고 성장판이 제때 열리도록 정부가 책임 있게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00조 원 미래대응기금’ 신설…재정 저수지 역할
정부와 여당은 반도체 경기가 호황일 때 발생한 추가 세수를 일회성 지출로 쓰지 않고, 앞으로를 대비하는 ‘미래대응기금(100조 원 규모)’으로 따로 모아두기로 결정했다. 미래대응기금은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인재 등 네 개 계정으로 나뉘어 운영된다. 이 기금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끌어올리는 데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예산안에서 가장 눈길을 끈 지점은 미래대응기금의 국회 통제권을 축소하는 방안에 대한 논쟁이다. 정부는 반도체 호황으로 마련된 추가 세수를 100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에 쌓아두기로 했고, 이를 청년, 성장동력, 지방, 교육 및 인재 등 네 분야로 나누어 활용한다.
이 기금이 재정의 ‘저수지’ 역할을 하겠지만, 국회의 통제력 약화 문제로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이번 예산안에서 정부와 여당은 첨단 과학기술 투자에도 힘을 쏟고, AI 분야 역시 정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이뤄진다.
청년과 지방 지원도 빠뜨릴 수 없다. 정부는 청년 생애 단계에 맞춰 맞춤형 지원책을 마련하고, ‘우리 아이 자립 펀드’라는 이름으로 미성년 때부터 청년으로 넘어가는 시기까지 자산을 안정적으로 형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연간 최대 120만 원을 지원해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자산 양극화를 정부가 선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또, 대학생들에게는 졸업 전에 실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기업 인턴십 활동을 정식 학점으로 인정하고, 관련된 체류비와 수당도 정부가 지급한다. 미래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보장하고 자산을 쌓을 수 있도록, 정부가 청년의 성장 단계마다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지원책을 빠짐없이 마련했다.

지역 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인센티브와, 지역 주도 균형 발전 예산이 적극적으로 투입된다. 특히, 수도권으로 빠져나가는 지역 인재를 잡기 위한 방안으로, 지방국립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지역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다.
지방국립대 등록금을 전액 지원해 우수 인재가 수도권으로 떠나지 않도록 하고, 지역 필수의료 특별회계를 만들어 지방 의료 공백을 메우는 데 예산을 우선 투입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지역 명문대를 키우고, 인재가 지방에 정착하도록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지방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회계를 따로 마련하고, 거점 병원 육성과 필수 의료 인력 확보에 예산을 우선 배정한다.
또한, 수도권에 있는 중견·대기업이 지방으로 생산 시설이나 본사를 옮길 경우, 설비 투자 금액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직접 현금으로 지원하는 강력한 보조금 정책도 새로 만든다. 이를 통해 기업의 지방 이전을 보다 적극적으로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신성장 마중물” vs “재정원칙 파괴” 찬반논란
정부와 여당이 내년도 예산안 총지출을 일시적인 세수 증가에 기대 엄청나게 늘렸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상황에서 ‘필연적 투자’라는 평가와, 경기 변동성을 무시한 ‘방만 재정’이라는 우려가 맞서고 있다. 찬성 쪽에서는 AI·반도체 주도권 확보, 인구 소멸 대응이라는 중요한 시기에 투자해야 할 ‘골든타임’임을 강조한다.
이번 예산안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의 체질을 변화시킬 ‘적극적인 미래 투자’가 이뤄졌다고 본다.
특히, ‘반도체 특별회계’를 신설하고, 한국전력과 한국수자원공사에 직접 출자해 전력·용수 같은 핵심 인프라를 정부가 책임지기로 한 점은, 민간 기업이 느끼던 투자 불확실성을 획기적으로 줄여 줄 결정적인 한 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국가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역시 과감히 ‘마중물’ 역할에 나선 것이 국내 첨단 산업 경쟁력 유지의 마지막 방어선이라는 해석도 있다. 청년과 지방을 중심으로 예산을 집중 배분한 것 역시 인구 감소의 악순환을 끊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렇게 큰 규모의 예산안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글로벌 경기 변동이나 무역 갈등에 따라 반도체 경기는 언제든 악화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수 증가에 힘입어 총지출 기준선을 800조 원 이상으로 고정해 버리면, 이후 세수 부족이 발생할 때 국가 채무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야당 역시 대규모 확장재정으로 인한 재정 건전성 악화를 우려하고 있으며, 특히 국회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점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은행이 아직도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긴축적 통화정책을 고민하는데, 정부가 한 해에만 10% 넘게 지출을 늘리는 것은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는 위험한 선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중에 자금이 대거 풀릴 경우 공급발 인플레이션 압력도 커질 수밖에 없다.
국가 채무가 1,200조 원을 넘어선 시점에서 추가 세수가 생기면, 국가재정법에 따라 우선적으로 국채 상환에 투입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비판도 뒤따른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엇박자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통화·재정 엇박자, 물가·금리 불안 유발” 지적도
한은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3.3%로 크게 올렸고, 내년도 전망치도 2.1%에서 2.9%로 상향했다. 올해와 내년 모두, 잠재성장률(2% 안팎)을 크게 뛰어넘는 경제 확장 국면이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지출을 크게 늘리면, 물가 상승 압력은 더 커지고 통화정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처럼 경기 침체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긴축적 재정정책을 통해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할 때”라며, “통화정책은 긴축인데 재정정책만 확장적으로 쓰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정부 재량이 큰 100조 원 규모 ‘미래대응기금’이 실제로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국회의 엄격한 심사와 통제를 거쳐야 할 국가 재정이, 기금 형태로 독립·운영되면 사실상 정부가 자의적으로 경비를 집행하게 되어 효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대응기금’의 지출 항목을 수시로 조정할 수 있도록 재량권을 30%까지 늘린 점에 대해, 자칫 정치적 의도나 선거용 ‘세금 퍼주기’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국회의 심의와 예산 통제권을 피하기 위한 꼼수이자, 항상 추가경정 예산처럼 돈을 쓸 수 있는 비상금 통장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결국 전문가들은 ‘지출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과 동시에 ‘엄격한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점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학계 전문가들은 정부가 첨단 산업에 적극적으로 예산을 투입하는 방향 자체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경기 변동에 따라 급격히 줄어들 수 있는 법인세 등 세입 구조를 고려해 재정 구조 개혁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국가채무 증가 속도를 적정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재정준칙’의 법제화도 서둘러 이뤄져야 800조 원에 달하는 초거대 예산이 결국 방만하게 흘러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야 간 타협 없는 ‘송곳 검증’
국민의힘은 지난달 28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정부의 확장 재정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고 비판하며 “서민을 힘들게 하는 ‘청개구리식 재정’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박충권 수석대변인은 “이재명 대통령이 800조 원이 넘는 슈퍼 예산 편성에 매진하는 동안, 서민들은 대출 이자 부담에 허리가 휘고 있다”며, “이 대통령은 반도체 호황으로 인한 초과 세수를 어떻게 쓸지만 고민할 뿐, 한국은행이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물가와 싸우는 현실은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재정 확대와 한국은행의 긴축 정책이 따로 움직이면서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고금리 장기화라는 악순환만 반복되고 있다”며, “결국 그 부담은 대출 이자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 돌아간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재정 지출의 방식과 목적이 중요하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정부 예산이 단순히 선심성이나 소모성 소비 지출이 아니라, AI나 반도체처럼 미래의 잠재 성장률을 높일 핵심 인프라 투자에 집중된다면 꼭 물가를 자극한다고만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 역시 “늘어난 재정 여력은 앞으로를 위한 씨앗이 되어야 하며, 단기적인 수치에 연연할 때가 아니다”라며 확장 재정 기조를 강하게 옹호했다.
정부는 세부 예산안을 확정해 9월 초 국회에 공식 제출할 예정이다. 9월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예결위 단계에서 여야 간 타협 없는 치열한 심사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야당은 재정 건전성 확보를 내세워 지출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
또, 정부에 과도한 재량권을 허용한 미래대응기금의 30% 변경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가 실효적으로 사전에 통제할 수 있도록 예산안과 관련 법안을 묶어 강경하게 대응할 방침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는 여야의 날선 공방이 예상된다. 확장 재정이 가져올 재정 건전성 논란과 함께 정부 재량권 확대 문제도 집중적으로 논의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번 예산안을 통해 국가 미래에 대한 투자 의지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이루어질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