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양궁협회 서거원 전무는 당시 비인기종목이던 양궁대표팀 대표 코치를 맡아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남녀 단체, 개인전 전 종목 금메달 석권을 하면서 신화를 써 내려갔다. 그 후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1999년 북경 아시안게임,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3개 획득 등 한국 양궁을 세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만드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팀이 해체되자 대표팀 감독을 내던지고 16개월간 선수들과 고난을 같이한 서거원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 양궁팀은 전 종목 금메달 석권 및 세계최고기록을 수립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가 실업팀 감독으로 있던 삼익악기 양궁팀이 해체 작업에 들어갔다. 1978년 선수로 들어가 16년간 선수 및 감독으로 있던 팀이 해체된 것이다.
당시 삼익악기 소속 선수는 6명으로 그중 2명은 국가대표일 정도로 실력도 뛰어났다. 이 때문에 새로운 실업팀 창단이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 서 감독은 무모하게 국가대표팀 감독을 사직했다. 본인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충분히 살 수 있었지만 졸지에 월급이 끊어지고 오갈 데 없는 선수들을 모른척할 수 없어 동고동락하던 선수들을 저버리느니 빨리 실업팀을 새로이 창단하는 쪽에 노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쉽지 않았다. 수많은 기업을 찾아다녔지만, 선뜻 양궁팀을 만들겠다는 기업은 없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돈도 바닥이나 넓은 아파트를 팔고 6,500만 원짜리 빌라로 이사하였고 신용카드 돌려막기까지 하는 극심한 생활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선수들과 동지애 하나로 버티었다. 팀은 없어졌지만, 경기에는 출전해야 했기에 다른 팀 숙소도 빌려 쓰고 샤워장도 없는 중고교생의 숙소도 마다하지 않았다.
감독은 선수를 배려하고 선수는 감독을 배려
물론 선수들에게도 선택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수들은 도리어 자기들 때문에 국가대표팀 감독을 내던지고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 서 감독을 염려했다. 출중한 선수들은 팀이 해체되자 여기저기에서 오라는 곳이 많았지만, 본인이 옮기게 되면 서 감독의 거취뿐만 아니라 새로운 팀 창단도 어렵다고 봤다. 팀 창단과 운영을 위해서는 간판급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고참 선수들은 그것까지 보고 좋은 조건을 외면하고 서 감독과 고난의 생활을 함께 했다. 그렇게 16개월간 악전고투하던 끝에 인천 계양구청이 양궁팀을 창단하면서 전원이 옮겨가게 되었다. 당시 서 감독과 동고동락하던 선수들은 이제 한국 양궁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었다.
다른 종목과 마찬가지고 양궁도 국가대표팀 감독 되기가 어렵다. 자신이 지도한 팀에서 국가대표선수를 몇 명이나 배출했는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몇 번 했는지 등등 지도자로서의 실력과 선수 장악 능력 등 리더의 능력을 종합적으로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성과와 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속팀 선수들과의 인간적인 관계이다. 계양구청으로 옮긴 뒤 뛰어난 기량의 A 선수에게 여러 실업팀에서 파격적인 조건으로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왔다. A 선수가 얼마든지 다른 팀으로 갈 수 있음을 안 서 감독은 A를 불러 제안했다.
“계양구청팀에 꼭 필요한 존재이지만 너를 위해서 이적동의서를 써주고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연봉협상도 대신 해주겠다. 이것이 너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다.” 며칠 후 A는 서 감독을 찾아와 “계속 감독님과 함께 하겠으니 다음에 더 큰 선물을 주세요”
서 감독이 먼저 선수들을 진심으로 배려해 주니 선수들도 실리보다는 더 큰 신뢰를 선택한 것이다.
침묵을 가장한 관찰의 리더십
올림픽을 준비하며 국가대표팀이 구성되면 전국 각 팀에서 온 선수들이 한배를 타게 된다. 이렇게 처음 보는 선수들을 이끌 때 그가 하는 첫 번째 일은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이다. 활을 쏘는 모습을 보면 당장이라도 지적해 줄 사항이 한둘이 아니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지켜보기만 한다. 기껏 하는 말은 “오늘 컨디션은 어때?”, “잘돼가나?” 정도이다.
그러면 선수가 도리어 본인의 자세가 어떤지 감독에게 물어본다. 그래도 ‘좀 더 두고 보자“라는 말만 하니 선수로서는 답답할 수밖에 없다. 그런 과정을 몇 차례 겪으면서 선수가 진정으로 요청할 때 서 감독은 본인의 의견을 제시하며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한두 달 후에는 선수들이 ’저 감독님은 족집게 같다”라는 말을 한다.
“스스로 선수가 질문을 하게 만들면서 선수의 인격을 존중해주는 관찰의 리더십이 선수들의 마음을 잡은 것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생활이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 지적하는 것보다 관찰하고 맞장구쳐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진심으로 요청하면 의견을 주는 것이다.
양궁대표단의 훈련 중에는 번지점프 훈련이 있다. 100미터 아래를 내려다보면 까마득하지만 서 감독은 제일 먼저 뛰어내리는 사람이다. 선수들이 무서워서 못 뛰어내리면 모든 선수가 뛰어내릴 때까지 몇 번이고 뛰어내린다.
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마음을 여는 인맥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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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뉴스 칼럼니스트 / 마음을 여는 인맥관리연구소 대표 윤형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