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용만 논설위원]
민원은 국민의 권리다. 행정은 국민의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공직자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정책에 대한 반대 의견도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권리만을 말하지 않는다. 권리에는 책임이 따른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보장되며, 다수의 힘으로 특정 개인을 압박하거나 위협하는 행위는 결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최근 천안에서 제기된 '좌표찍기' 의혹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문제를 다시 드러냈다.
천안시청공무원노동조합과 천안도시공사노동조합은 일부 파크골프협회 관계자들이 풍서천파크골프장과 유관순파크골프장 운영 문제와 관련해 담당 공무원의 휴대전화와 사무실 전화번호를 단체대화방 등에 공유하고, 회원들에게 "매일 1인 1전화", "하루 백 통 이상 전화하자"는 취지로 반복적인 민원을 독려했다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이는 단순한 민원 제기가 아니라 특정 공무원을 겨냥한 조직적 압박으로 평가될 수 있다. 담당자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다수의 인원에게 반복적인 전화를 유도하는 방식은 공무원의 정상적인 업무를 방해하고 심각한 정신적 부담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2024년 김포시의 비극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도로공사 관련 민원을 담당하던 공무원은 이른바 '좌표찍기'와 악성 민원에 시달렸고, 끝내 생을 마감했다. 그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공직사회 전체에 "집단적 압박이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뼈아픈 경고를 남겼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그 교훈을 충분히 실천하고 있는가.
오늘도 인터넷과 단체대화방에서는 특정인의 연락처를 공유하고, "전화하자", "항의하자", "민원을 넣자"는 움직임이 쉽게 만들어진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수십 명, 수백 명이 동시에 한 사람을 향해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시대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다.
상대를 침묵시키기 위한 집단적 압박이며, 정상적인 행정을 흔드는 방식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안은 단순한 시설 운영을 둘러싼 갈등을 넘어, 행정의 공정성과 공직자의 안전이라는 문제를 함께 제기한다. 노동조합은 일부 파크골프협회 관계자의 행위가 반복적인 집단 민원 선동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관계기관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법률 위반 여부가 있는지 공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민주사회에서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는 없다.
시민도, 단체도, 협회도 마찬가지다.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수단까지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정책에 반대할 자유는 있지만, 특정 공무원을 겨냥해 조직적으로 압박할 권리까지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천안시 역시 이번 사안을 계기로 공직자 보호 체계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악성 민원과 개인정보 유포, 반복적인 업무방해가 발생했을 때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와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공무원이 두려움 속에서 일하는 조직은 결국 시민에게도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
이번 논란은 특정 파크골프장을 둘러싼 갈등으로만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가 '좌표찍기'라는 행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김포의 비극이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한 사람을 향한 집단적 압박은 개인의 존엄을 무너뜨릴 수 있고, 결국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한다.
민원은 민주주의의 힘이지만, 집단 괴롭힘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법과 원칙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만약 이번에 제기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관련 행위는 법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판단되어야 한다. 반대로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 역시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편의 승리가 아니다. 공직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시민은 정당하게 의견을 낼 수 있으며, 법과 원칙이 흔들리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것이 김포의 비극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이며, 천안에서 다시는 같은 논란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