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일본의 저명한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가 1989년부터 2019년까지 일본 헤이세이 시대를 ‘실패’로 규정하고, 그 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친 비평서다. 세계 시가총액 상위권을 휩쓸던 1989년의 영광은 왜 신기루처럼 사라졌나. 저자는 ‘성공의 저주’에 빠진 일본의 구조적 결함과 변화를 거부한 대가를 냉혹하게 해부한다
30년의 시행착오, 강력한 반면교사
저자는 2020년 시점에서 최근 30년간의 일본 경제를 돌아보며 ‘크게 변화하는 세계 경제에서 뒤처진 시대’라고 정의했다. 헤이세이 시대를 통과하는 내내 일본 경제의 국제적 지위는 계속 하락했다.
‘노력했지만 뒤처진 것’이 아니라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해 뒤처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일본 사회는 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지도 못했고 상황 변화에 대응하지도 못했다.
고령화, 인구 감소, 혁신 동력의 상실까지. 수치와 통계로 증명하는 쇠퇴의 궤적을 통해, 시대의 맥을 정확히 짚고 과감히 변화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반면교사적 메시지다.
경제 관점에서 바라볼 때 헤이세이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1기는 1990년대로, 거품 붕괴에 따른 타격으로 그간 일본 경제를 떠받쳐온 금융기관이 무너진 시대다. 1~3장에 걸쳐 이 시기를 서술했다.
2기는 대략 2000~2010년까지 10년의 기간이다. 이 시기에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일본 경제가 차츰 회복되었지만, 이는 가짜 회복이었다. 실제로, 2008년 리먼 쇼크로 인해 회복세가 급격히 저하되었고 일본의 수출 산업은 큰 타격을 입었다. 4~6장에 걸쳐 이를 서술했다. 3기는 2011년 이후로 7~9장에 걸쳐 서술하고 있다.
중국의 공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고, IT 혁명으로 인터넷이 보급되었으며, 제조업에서는 수평 분업이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이 확산되는 등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에 걸쳐 세계 경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세상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급변했지만 일본은 ‘장인정신’이라는 과거의 환상 속에 머물렀다. 수직 통합형 모델을 고집하며 수평적 분업이라는 시대의 흐름을 놓친 헤이세이 30년. 제조업의 국내 회귀로 인해 대규모 텔레비전 공장 등이 건설됐지만, 이는 제조업 분야의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이었다. 2008년에 리먼 쇼크가 발생하면서 일본의 수출은 급감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득권 타파
저자는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책, 인구 고령화로 인한 사회보장 지출 증가 대책, 중국의 성장 등 세계 경제의 구조 변화에 대한 대책, AI(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에 대한 대책 등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제시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기득권 타파라고 결론짓는다.
이 책이 일본에서 출간된 2019년 이후 6~7년이 흘렀다. 그 사이 일본 사회는 노구치 유키오가 이 책을 통해 던진 비판과 경고를 구조적으로 상당히 흡수하려 노력했다.
‘이대로는 진짜 후진국으로 전락한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디지털청 신설, 반도체 공급망 재편, 임금 인상 등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도쿄 증시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던 흐름 역시 이러한 체질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저자가 책의 마지막에서 강조한 핵심 과제, 즉 ‘기득권 타파를 통한 신산업 육성’과 ‘노동 생산성의 근본적 혁신’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다.
일본은 분명 헤이세이 시대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움직이기 시작했으나, 경제 엔진이 완벽히 부활했다고 단언하기에는 고령화라는 거대한 인구학적 제약과 더딘 규제 개혁이라는 숙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