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2026년은 마릴린 먼로 탄생 10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세계 곳곳에서 전시와 상영, 출판 등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는 대규모 회고전 「Marilyn Monroe : 100 ans !」가 열렸고, 마찬가지로 런던의 BFI에서는 지난 6월부터 두달 간 ‘마릴린 먼로: 스스로 만들어낸 스타(Marilyn Monroe: Self-Made Star)’라는 제목의 회고전이 개최되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그녀의 삶과 영화 경력을 조명하는 전시와 특별 상영이 마련됐다. 사진가들의 미공개 사진과 개인 소장품, 영화 의상과 시나리오 등이 공개되면서 마릴린 먼로라는 이미지가 다시 한 번 문화적 관심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1926년 6월 1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마 진 모텐슨(Norma Jeane Mortenson)이라는 이름의 한 여성이 태어났다. 훗날 전 세계가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게 될 인물이다. 비교적 수줍음이 많았던 그녀는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도, 1946년 배우를 꿈꾸면서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1950년대에 그녀는 고전 할리우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스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까지도 그녀는 영화사의 신화적인 존재로 남아 있으며, 자신만의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영화사뿐 아니라 대중문화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영화 포스터와 광고, 패션과 미술, 음악과 사진, 그리고 오늘날의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그녀의 얼굴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마밀린 먼로의 한국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한국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954년 2월, 마릴린 먼로는 미군 위문 공연차 한국을 방문했다. 먼로는 나흘 동안 미군 기지를 순회하며 약 10만 명의 열광적인 군인들을 위해 10번의 공연을 펼치는 숨 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얼마전 공개된 미공개 인터뷰에서 그녀는 한국 방문이 “사람들에게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마릴린을 신화로 만든 것은 아름다운 얼굴이나 비극적인 운명만이 아니다. 마릴린은 스튜디오가 만들어낸 스타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창조하고 연출한 현대적 배우였다. 모델 출신이었던 마릴린은 카메라와 사진의 언어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했고, 진실한 자신으로 남고자 하는 욕망과 허구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사이의 모순과 균열에서 자신의 삶을 신화로 만들어냈다.
동시에 그녀는 놀라운 지성과 직관을 지닌 예술가였습니다. 다독가였으며 재즈와 클래식을 사랑했다. 그녀는 재즈 음악을 사랑했고 엘라 피츠제럴드를 비롯한 당대의 음악가들과도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특히 인종차별이 강했던 시대에 엘라 피츠제럴드의 활동을 돕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했다는 일화는 마릴린이라는 인물이 단순한 할리우드 스타의 범주를 넘어섰음을 보여준다.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적 감각은 이후 마돈나와 레이디 가가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 아티스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관능과 취약함, 자기연출과 자기표현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식에서 마릴린의 유산은 여전히 살아 있다.
마릴린 먼로는 탁월한 코미디언이자 뮤지컬 배우였다. <신사는 금발을 좋아해>(1953)에서 보여준 완벽한 노래와 춤, 천재적인 코미디 타이밍, 그리고 <뜨거운 것이 좋아>(1959)에서 절정에 이른 자유롭고 섬세한 연기는 시대를 초월한 영화적 기쁨을 선사한다.
한국에서는 처음 개최되는 이번 ‘마릴린 먼로 백주년 특별전‘은 마릴린의 첫 주연작 <노크하지 마세요>(1952)부터 유작 <야생마>(1961)까지, 열 편의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의 스타이자 창조자, 코미디와 뮤지컬의 배우이자 현대적 여성의 원형으로서 마릴린 먼로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이다.
지난 8월 5일부터 시작한 ‘마릴린 먼로 백주년 특별전‘은 정동길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8월 31일까지 개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