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홍경의 기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대행업체의 전산 마비라는 초유의 사태와 N수생의 대거 유입 속에서 혼란스럽게 마무리됐다. 교육당국은 긴급하게 구제책을 내놓았지만, 마감 시간 연장과 경쟁률 정보 사전 공개로 인해 ‘공정성’과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다. 내년도 대입제도 개편을 앞두고 막차를 타려는 N수생들의 폭발적인 지원과 지역의사전형 도입 등 굵직한 변수들이 겹치며 이번 수시는 역대 가장 예측하기 힘들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의사보다 삼전닉스 취업?
반도체 산업 호황으로 자연계열 최상위권 학생들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 반도체계약학과로 몰리고 있다. 2027학년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수시모집에서는 의대 지원자가 예년보다 줄었지만, 반대로 반도체 계약학과를 선택한 학생들은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10일 종로학원에 따르면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자 수는 1,223명으로 전년(1,163명) 대비 5.2%(60명) 증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반도체 계약학과는 연세대와 고려대에서 각각 운영되고 있다. 서울대에는 대기업 취업 보장형 반도체 계약학과가 없다. 서·연·고 의대 지원자 수는 총 2,903명으로 전년(3,271명)보다 11.3%(368명) 줄었다.
지역의사제 10년 의무에도 11.2대 1
N수생의 대거 유입과 ‘지역의사전형’ 첫 도입으로 입시 판도가 크게 흔들렸다. 내년부터 내신 5등급제와 문·이과 통합형 수능이 전면 도입될 예정이어서, 제도 변경 전에 합격하려는 재수생과 반수생이 대거 수시로 몰렸다. 덕분에 상위권 대학 논술, 학생부종합전형 경쟁률도 예년 보다 훨씬 치열해졌다.
올해 처음 도입된 ‘지역의사제’ 전형은, 10년간 지역에서 의무복무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의무복무 조건이 없는 지역인재전형보다 더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장기간의 복무가 지원자들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지방 의대 지원 수험생들이 두 전형에 중복 지원하면서 경쟁률을 끌어올린 것으로 해석된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연세대와 고려대의 반도체 계약학과 지원자 수가 전년 대비 늘어난 것은 반도체 계약학과에 대한 선호가 증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의대 지원이 전년 대비 감소한 것으로 보아 소신지원보다는 안정지원하고, 지방권 지역의사제 모집 확대 등으로 분산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지방 국립대 21곳 수시 지원 7.6%↑
내년부터 시행될 ‘등록금 0원’ 정책이 시행을 앞두면서 지방 국립대 21곳의 수시 지원자는 전년 대비 7.6% 증가했다. 거점국립대는 5.2%, 그 밖의 국립대는 12.6%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 사립대 지원자도 0.5% 늘어나, 새 정책이 사립대 지원 급감으로 이어지진 않은 상황이다.
지난 13일 종로학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7학년도 수시 원서접수를 마친 전국 지방대 86곳 중 거점국립대 9곳과 다른 국립대 12곳에는 총 44만9,149명이 지원해 전년 대비 3만1,785명 늘었다. 이번 집계에는 교대 등 특수대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2027학년도부터 지방 국립대 30곳 신입생에게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의대, 치대, 약대, 수의대는 제외되며, 지원 대상 학년은 점차 확대해 오는 2030년에는 1~4학년 모두 적용할 예정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역의사제 지원자들이 얼마나 상향 또는 하향 지원을 했는지는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며, “대학별 중복 지원과 추가 합격 규모에 따라 실제 등록 단계에서는 대학별, 지역별로 이탈률과 합격선 변화 폭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접수 대행사 서버 마비...1,200명 구제 실시
이번 수시 원서 접수 마감 직전인 지난 11일 오후 5시 50분쯤, 대행사인 ‘유웨이어플라이’ 결제와 전산 시스템이 갑자기 마비됐다. 마감 직전, 이른바 ‘눈치 작전’이 한창일 때 서버가 먹통이 되며 수많은 수험생이 결제조차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결국, 교육부는 전산 장애를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받아 최대 1,200여 명이 원서를 못 냈다고 보고, 지난 14일 오전 9시부터 16일 오후 6시까지 특별 구제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형평성에 대한 불만이 들끓었다.
일부 대학이 마감 시각이었던 오후 6시에 맞춰 모집단위별 최종 경쟁률을 인터넷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마감 연장 수혜자는 이미 드러난 경쟁률을 확인한 뒤 빈자리를 노려 지원할 수 있었다.
정해진 시간 내 지원을 마친 수험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선 “남들은 패를 다 보고 베팅했다”며, 대학입시의 공정성이 무너졌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입 원서 접수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두 민간업체(유웨이, 진학어플라이)에 너무 의존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정치권과 교육계에서는 이번 기회에 국가가 주도해 안전성을 갖춘 대입전형 통합접수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임 대표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문제를 넘어, 우리 교육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를 드러냈다”며, “이제는 공공의 책임 아래 통합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