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이용만 논설위원]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찾아왔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추석이면 전국의 도로와 기차역은 고향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 몇 시간이면 갈 길을 두세 배 넘게 걸려서라도 부모가 기다리는 고향집을 찾았다. 부모는 대문 밖을 몇 번이고 내다보며 자식을 기다렸고, 자식들은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고향집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요즘 추석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최근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올해 추석 연휴에 '집에서 휴식하겠다'는 응답은 59.6%, '고향이나 본가를 방문하겠다'는 응답은 40.0%였다. 국내여행이나 취미생활, 지인과의 만남 등 명절을 보내는 방법도 다양해졌다.
이를 두고 요즘 젊은 세대가 가족을 소홀히 한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자녀들은 전국 각지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맞벌이 부부는 생업과 육아를 함께 감당한다. 부모를 명절 전에 미리 찾아뵙기도 하고, 당일 잠시 만나 식사하고 돌아가기도 한다. 직접 가지 못하면 전화나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용돈과 선물로 마음을 전한다.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을 만나는 방법도 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명절의 '형식'보다 '마음'이 아닐까.
오랜 시간 음식을 준비해 차례상을 가득 채워야만 좋은 명절인 것은 아니다. 며느리와 딸들이 명절 음식 준비에 지치고, 자녀들이 친척들의 결혼·직장·소득에 관한 질문을 걱정해야 한다면 즐거워야 할 명절이 오히려 부담스러운 날이 될 수도 있다.
부모도 조금 달라질 필요가 있다.
"왜 이제 왔느냐", "누구네 자식은 잘됐다더라"라는 말보다 "바쁜데 와줘서 고맙다", "건강하게 지내라"는 말 한마디가 자녀의 마음을 더 따뜻하게 한다.
자녀들도 마찬가지다.
값비싼 선물이나 많은 용돈이 효도의 전부는 아니다. 부모가 살아계실 때 한 번 더 찾아뵙고, 손을 잡아드리고, 함께 밥 한 끼 먹는 시간이 어쩌면 가장 귀한 선물일 수 있다.
우리 사회는 이미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가 보편화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부모와 자녀가 한 지역에서 평생 함께 살아가던 시대도 지나가고 있다. 과거의 명절 모습을 오늘날의 자녀들에게 그대로 요구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고향에 가지 않는다고 불효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차례를 지내지 않는다고 조상을 잊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명절이 아니면 부모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고, 용돈을 보내는 것으로 모든 마음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우리가 원하는 가족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부모가 떠난 뒤에는 찾아가고 싶어도 찾아갈 수 없다. 고향집 대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왔느냐"며 반겨주시던 그 목소리도 언젠가는 추억이 된다.
그래서 이번 추석만큼은 부모는 자녀에게 "왜 이제 왔느냐"고 묻기보다 "와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자녀는 부모에게 "용돈 보냈어요"라는 문자 한 줄보다 따뜻한 안부전화 한 통을 더 드렸으면 한다.
추석 풍경은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귀성길은 예전보다 짧아지고 차례상은 간소해질 것이며, 온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모습도 줄어들 수 있다.
그 변화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다.
추석의 모습은 변해도 가족의 정까지 멀어져서는 안 된다.
어쩌면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새로운 추석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