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최근 남북에서 각각 주목할 만한 장면이 연출됐다. #1. 북한은 15일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 고체연료 엔진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오키나와나 괌에 있는 미군 기지에 대한 기습 타격이 가능한 능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2. 2일 서울 시청에서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본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방안’ 포럼이 개최됐다. 안보전문가들이 모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수도 서울의 안전·방호 대책을 점검했다. 세간의 관심이 크진 않았지만 남북에서 거의 동시에 있었던 이 두 장면은 현재 한반도가 처한 안보위협을 상징한다.
장면 1. 北 “고체연료 엔진 시험”…오키나와 기습 타격 가능
북한은 15일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IRBM·사거리 3천~5천500㎞)에 사용할 고체연료 엔진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북한 미사일총국은 신형 IRBM용 대출력 고체연료 엔진을 개발해 11~14일 1, 2단 엔진의 지상 분출 시험에서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이룩됐다”. ‘화성-12형’ 등 북한이 보유한 기존 IRBM은 액체연료를 사용하고 있다. 액체연료 탄도미사일은 발사 전에 연료 주입이 필요하지만, 고체연료는 연료 주입 단계가 필요 없어 기습 공격이 가능하다. 이번 실험 성공이 사실이다면 오키나와나 괌 등에 있는 미군 기지에 대한 기습 타격능력을 북한이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일본도 북한의 기습 공격 능력 강화라는 점에서 우려를 나타냈다. 15일 산케이신문, 지지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기습적인 공격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관점에서, 고체 연료를 사용한 탄도미사일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정보 수집과 분석, 경계·감시에 전력을 다 하겠다”고 경계했다. 북한은 1·2계단 엔진 시험을 모두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밝힌 만큼, 곧 신형 고체연료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 신형 중거리탄도미사일용 고체연료엔진 시험 성공의 의미와 전망’을 통해 “사거리가 1천~4천km에 달해 주일미군기지과 미국의 괌 등을 위협할 수 있는 북한의 신형 고체연료엔진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가 성공하면 일본의 군사대국화와 한미일 군사협력이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정 실장에 따르면 북한은 신형 고체연료엔진 중거리탄도미사일 개발을 2023년 6월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2023년 2월 당중앙군사위원회 제8기 제4차 확대회의에서 신형 고체연료 ICBM 개발과 함께 ‘중대과업’으로 채택했다. 신형 고체연료엔진 중거리탄도미사일 개발이 올해 북한 국방력 현대화 계획의 ‘중대과업’이라 점과, 1~2단계 엔진 지상분출시험이 ‘대단히 만족스러운 결과’가 이룩되었다고 북한 스스로 평가하는 만큼 북한은 빠른 시일 내에 신형 고체연료엔진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에 나설 수 있다고 정 실장은 내다봤다. 그러면서 “늦어도 연말까지라도 북한은 중거리탄도미사일 시험발사를 이어가면서 올해 국방부문의 중요 성과 중 하나로 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력화를 위해 고체연료 IRBM 개발에 나섰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괌 정도를 타격할 수 있는 지대지 중거리탄도미사일 개발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지만, SLBM 전력화를 위한 것일 개연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체연료 IRBM 엔진이 적용될 SLBM으로 북한이 2020년과 2021년 열병식 때 각각 선보인 ‘북극성-4ㅅ(시옷·수중무기 의미)’과 ‘북극성-5ㅅ’을 꼽았다. 두 SLBM은 열병식이나 전시회에서만 공개됐고, 아직 시험발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번 북한의 고체연료 엔진실험이 만약 신형 SLBM용이라면 신형 잠수함도 모든 설계를 확정하고 개발 완료 단계에 근접한 것일 수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장면 2. 南,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방안’ 포럼…핵 자체 보유해야
지난 2일 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는 군사·안보 전문가들이 모인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본 서울시 핵·미사일 방호 발전방안’ 포럼이 개최됐다. 유사시 수도 서울을 방어하고 시민 안전을 확보할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전시 방호대책 토론회가 열린건 처음이다. 이스라엘-하마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정세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수도 서울에서 테러나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생길 수 있는 가공할 상황을 대비해 지자체 최초로 안보 토론회를 열고 대책을 점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날 토론에서는 현실화한 핵·미사일 위협을 대비해 서울시민 안전보장을 위한 핵·미사일 방호대책을 주제로 유사시 경보 전파, 대피소 실효성 제고 방안 등이 논의됐다. 핵 확장 억제, 핵 공유, 전술핵 배치, 한미 핵 협정 보완 등 다양한 핵 정책 전반에 대한 전문가들의 방안도 공유됐다.
이날 토론회의 관심은 단연 한국의 핵무기 보유 여부였다. 대표적인 핵 자강론자인 정 실장은 이날 기조발제자로 나서 “안보에 소홀하면 경제도 평화도 없다”며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지론을 재차 강조했다. 핵보유 반대론자들의 주요 근거인 미국이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선 핵무장을 용인해야 한다는 미국 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반박하며 미국을 설득할 전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실장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에서 실시한 한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자체 핵보유에 대해 미국인 41.4%가 찬성, 31.5%가 반대했다. 정 실장은 미국 내에서도 찬성 비율이 9.9%p 높게 나온 점을 강조하며 “한국정부가 먼저 일본과 같은 수준의 핵잠재력부터 확보하고 긴 호흡을 갖고 독자적 핵무장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북한 비핵화는 실현 가능한 목표인지에 대해선 “한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정 실장은 “김정은은 지난 2019년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우리는 우리국가의 안전과 존엄 그리고 미래의 안전을 그 무엇과 바꾸지 않을 것임을 더 굳게 결심했다”는 발언을 인용하며 핵무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서는 흥미로운 상황이 눈길을 끌었다. 1세션 기조발제자인 정 실장만이 한국의 자체 핵보유 필요성을 주장했고, 지정 토론패널 3명 중 2명은 자체 핵보유에 반대하며 확장억제 강화를 주장했다. 또 다른 토론자 한 명은 핵잠재력 확보 필요성을 강조했다. 1세션의 발표와 토론이 끝난 후 대부분 안보전문가들로 구성된 청중에게 ▲확장억제 강화 ▲전술핵 재배치와 나토식 핵공유 ▲자체 핵보유 중 어느 옵션을 지지하는지 거수로 의견을 물은 결과, 약 10여명만이 ‘확장억제 강화’를 지지했고, 20여명은 ‘전술핵 재배치와 나토식 핵공유’에 동의했다. 반면 30여명은 ‘자체 핵 보유’ 옵션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남쪽을 겨냥한 핵·미사일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북의 핵공격에 대비한 준비가 거의 되어있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한 목소리로 지적한다. 특히,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에서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한 대피 및 정부 지원 매뉴얼을 만들어 피해를 최소화할 준비가 필요하다고 정 실장은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과 미사일로 미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거의 확보한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핵전쟁까지 감수하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우리의 운명을 지금처럼 계속 미국에 의탁할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국제사회를 설득해 스스로의 힘으로 지킬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