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뉴스 정춘옥 기자] “사후 20년간 내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으로 100여 년간 미술계에서 사라졌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화가, 독창적이고 신비로운 미술 세계로 21세기 예술계를 뒤흔들고 있는 최초의 추상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일대기와 작품 세계를 담았다.
100년전 그림의 놀라운 세련됨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은 한 번 보면 빠져드는 그림체와 더불어, 100년 전에 그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세련됐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미술 역사상 최초의 추상화를 ‘발명’했다는 사실이다. 그림들의 연도를 보면 최초의 추상화라 알려진 바실리 칸딘스키의 <구성 V>은 힐마가 1906년에 작업한 <원시적 혼돈, No.16>보다 5년 늦게 작업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사각형만으로 구성한 <정사각형에 바친다> 연작으로 유명한 유제프 알베르스 작품보다 55년 먼저 이와 유사한 힐마의 작품이 제작됐으며, 힐마의 발상이 파울 클레, 칸딘스키, 몬드리안보다 앞섰다는 것, 특히나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보다 30년이나 앞서 작업을 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다.
힐마는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작품을 보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 “내가 죽고 20년간 작품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으로 삶을 마쳤다. 그는 후세의 관람객들을 위해 미래를 위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사후 20년 동안 봉인됐던 작품들은 봉인이 해제된 후에도 미술계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기까지 40여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회에서 개관 이래 최대 관객 수인 60만 명을 기록하며 ‘아프 클린트 열풍’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런던 테이트 모던, 스톡홀름, 파리와 베를린 등 전세계를 오가며 수많은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아 마음을 울리고 있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환상적 작품 체험
영화는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과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봉인됐던 천재 화가의 1,500여 점의 작품, 2만 6,000 페이지의 노트를 공개하며, 추상화를 ‘발명’하게 된 사고 과정과 그녀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커다란 스크린으로 보는 힐마의 작품은 환상적이다.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색채에 자연과 사물의 기하학적 표현을 가미한 작품들은 인간을 향한 시각적 연구라 할 수 있다. 보이는 것 이상의 것을 그렸던 힐마 아프 클린트의 작품 세계를 대변하며 21세기인 현재에도 세련된 감각이 느껴진다.
영화는 힐마의 삶과 작품을 향한 미술계의 다양한 시선을 여러 방향으로 관찰하고 이해하면서 작품을 감상하게 한다. 수많은 평론가, 미술 관계자, 학자들은 힐마 아프 클린트만의 독창적이고 신비로운 작품 세계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작품의 탁월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녀가 지금처럼 미술사의 바깥에 있으면 안 된다고 강하게 주장한다
힐마 아프 클린트가 미래를 위한 예술을 하게된 것은 그녀가 시대를 앞서간 천재이기 때문이지만 이것은 바꿔말하면 시대가 그녀를 외면했음을 의미한다. 당대 미술계의 풍토는 시대를 초월한 천재를 아웃사이더로 만들었다. 편견과 폐쇄적 시스템이 어떻게 재능을 묻어버리는지, 세계와 충돌하는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생각하게된다. 그럼에도 그리기를 멈추지 않은 열정은 힐마의 작품만큼이나 감동적이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지만 아름답게 존재하는 세계가 있음을 보여준 힐마의 그림처럼, 미술사의 기록만이 전부가 아님을, 나아가 역사가 역사 책에 등장하는 사람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님을 그 자신이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