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의료체계... 의정 갈등 쟁점 분석

2024.04.08 11:39:58

의대 정원 19년간 동결...‘의료 파업’에 정부 번번이 백기
필수의료 패키지·2,000명 증원 vs 의사 수 부족은 착시
‘공급 늘려 낙수효과 기대’ vs ‘총량보다 배분이 문제’
공론화 과정 통해 의료 공공성 강화 구체적 제시 필요

[시사뉴스 김철우 기자] 의대 정원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병원 이탈’ 44일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대면 만남을 가졌지만 서로 간 입장차만 확인하고 끝났다. 의료 현장은 비상이다.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워온 의대 교수들은 사직서 제출에 이어 지난 1일부터 단축 진료를 하고 있다. 일부 병원은 예정된 외래 진료 일정을 미루거나 주요 진료과의 신규 외래 접수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빠른 시일 내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보건의료 체계 운영 전반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의대 정원 19년간 동결...‘의료 파업’에 정부 번번이 백기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의 해묵은 논란거리다. 역대 정권에서 여러 차례 의대 정원을 늘리려 시도했지만, 의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번번이 실패했다. 단순히 의사 수의 문제만이 아니라 의료의 질, 의료 접근성, 지역 간 의료 불균형 등 복합적인 공공의료 문제와 결부되어 있어서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늘려 장기적인 의료 인력 수급에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의료질 저하 등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합의 도출이 쉽지 않다.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지난 2006년부터 19년간 동결상태다. 1998년 제주대 의대가 신설되며 정원이 3,507명까지 늘었지만 2000년 의약분업에 반대해 의료계가 파업에 나서자 당시 정부가 의료계와 합의해 2003년부터 4년간 351명을 연차별 순차 감원했다. 의대 정원은 이승만 정부 시절 1,040명, 박정희 정부 2,210명, 전두환 정부 2,770명, 노태우 정부 2,880명, 김영삼 정부 3,260명, 김대중 정부 초기 3,300명(이상 정원외 미포함 수치)이었다. 현재 의대 정원은 30년 전인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보다도 적은 인원이다. 

 

정부는 2000년대 들어 급격한 고령화로 의사 부족이 예상되자 2018년과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했다. 보건의료 체계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고령화와 가구별 소득증가로 의료이용이 늘어나는 한편 의료자원의 수도권 쏠림도 심화했다. 그러자 2010년대 중반부터 필수의료 분야 의사 부족 문제가 두드러졌다. 결국 2018년 당시 문재인 정부는 작정하고 의대 증원을 추진한다. 단계적으로 정원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공공의대를 신설하기로 하고, 2023년 개교를 목표로 보건복지부에서 종합대책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반에 ‘공공의대’법은 국회 법안소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 법안은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공공의료인력 확충 필요성에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공공의대 신설과 더불어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총 4,000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 가운데 3천 명은 ‘지역의사’로 육성한다는 계획도 포함됐다. 하지만 ‘무기한 업무중단’을 선언한 전공의들의 반발에 의대 증원은 무산됐다. 당시 정부와 의료계가 코로나 사태가 지나고 원점에서 증원을 재논의하자는 데 합의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필수의료 패키지·2,000명 증원 vs 의사 수 부족은 착시

 

윤석열 정부는 지난 2월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2월 6일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발표했다. 정부의 계획은 지역·필수의료 분야를 살리기 위한 4대 정책(의사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을 추진하고, 2025학년도부터 전국 40곳 의대 정원을 연 3,058명에서 5,058명으로 2천 명 늘려 5년간 유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의협)나 대전협 등은 현재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으며 의료 취약지역이나 일부 진료과목에 대한 기피는 보상이 충분하지 않은 탓에 발생하는 ‘인력 배치 불균형’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쟁점은 크게 세 가지다. 

 

가장 큰 쟁점은 정말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인가이다. 정부는 현재 연령별 의료 이용량을 전제로 빠른 고령화를 고려하면 2035년 의료 수요에 견줘 의사가 1만5,000명 부족하다고 주장한다. 2,000명 증원과 관련해선 인구 10만명당 의대 정원 OECD 평균이 14명인데 우리는 6명이라는 걸 근거로 든다. OECD 평균값으로 하면 우리나라 의대 정원은 7,000명이어야 하는데 현재 3,058명으로 중간인 5,000명을 목표로 설정했을 때 현재 정원에서 2,000명을 늘리는 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반면 의협은 현재 의대 정원을 유지해도 전년 대비 인구 1천명당 의사 수의 2010~2020년 연 증가폭은 2.8%(2010~2020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고 말한다. 2021년 기준 연간 15.7회로 OECD(평균 5.9회) 가운데 높은 1인당 외래 진료횟수 등 높은 의료 접근성도 의사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로 든다. 차기 의협회장으로 선출된 임현택 당선자는 오히려 의대 정원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급 늘려 낙수효과 기대’ vs ‘총량보다 배분이 문제’

 

한꺼번에 2,000명 증원시 현재 의대 교육 여건이 감당할 수 있을지를 두고서도 맞서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전국 의대가 교육부에 제출한 2025학년도 최소 증원 희망 규모 2,151명을 근거로 2천 명 늘려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교양·기초의학 수업 등을 듣는 예과 2년간 과정이 있어 오는 2027년까지 실습이 필요한 본과 교육 여건을 마련하면 된다고 본다. 하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주로 본과 1~2학년 때 교육하는 기초의학(해부학·생리학·면역학·예방의학처럼 의학의 근간을 이루는 학문) 교수가 충분하지 않다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전국 40개 의대 학장 단체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는 지난 2월 19일 교육 여건을 고려할 때 2천 명 증원 계획은 단기간 수용 불가능한 숫자라며 2025학년도에는 350명만 하자고 주장했다. 하지만 350명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정 합의로 줄였던 351명을 되돌리는 수준으로 정부가 수용하기에는 어려워 보인다. 

 

의사를 늘리면 의료비가 증가할지도 쟁점이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은 필수의료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국민 의료비 증가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사와 환자 간 의료 지식 격차가 크다 보니 늘어난 의사 간 경쟁이 치열해져, 환자에게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유인해 결과적으로 진료비가 증가할 수 있다는 논리다. 또 의대 증원으로 추가 양성한 의사를 필요한 곳에 배분하지 못하고 지금처럼 수도권·인기과목으로 쏠린다면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 총량 보다는 배분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총량이 많으면 배분도 수월해진다는 입장이다. 소위 ‘낙수 효과’다. 예를 들어 피부·성형 분야에 의사가 충분히 공급되면 가격이 내려가 공급이 줄고 의사들이 필수 분야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이렇게 의료 취약지에 의사가 늘어나면 필요한 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여주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본다.  

 

공론화 과정 통해 의료 공공성 강화 구체적 제시 필요 

 

현재 정부는 의대 증원과 관련해 논의 테이블을 열어놓고 의료계의 동참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의료계는 아직 명확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 않다.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추진에 대한 국민 여론은 호의적이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국민 여론을 동력삼아 이번에야 말로 의대 정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다만, 의료계가 우려하는 의대별 교육 여건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대학의 투자 계획을 구체화하고 이를 관리하는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아울러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국민에게 의료 개혁 장기 계획을 알리는 등 활발한 소통을 통해 의제 설정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신창환 경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020년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입안의 실패 요인’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의료 공공성 확립을 위한 장기적 계획을 제시하고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취약한 공공·필수·지역의료 분야 의료인력 양성과 관리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의료인 공급을 늘리고 의료 수요를 보완하는 정도로는 윤석열 정부의 의료 개혁이 성공할지 미지수라는 진단이다.
 

김철우 tallj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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